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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류만 범람... 여성 예능에 봄은 없는가

입력
2017.03.2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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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열린 ‘언니들의 슬램덩크2’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자들이 각자 개성 있는 포즈를 취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KBS 제공
지난달 열린 ‘언니들의 슬램덩크2’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자들이 각자 개성 있는 포즈를 취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KBS 제공

‘남초 현상’이 극심한 예능가에 야심 차게 도전장을 냈던 여성 예능프로그램들이 시작부터 부진의 늪에 빠졌다. 여성 예능의 희박한 생존율에도 새 시즌으로 돌아온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2’(슬램덩크)와 예능판 ‘여배우들’로 주목 받았던 ‘하숙집 딸들’은 방송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청률 3%와 2%에 각각 머물러 있다. 여성 예능의 부흥은커녕 여성 예능의 한계만 재확인하게 하는 성적표다.

다른 프로그램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케이블채널 MBC에브리원의 ‘비디오스타’는 시청률 1%에도 못 미치고, 온스타일 ‘겟잇뷰티 2017’은 매 시즌 겪었던 간접광고(PPL) 논란을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다.

여성 예능은 왜 번번이 실패하는 걸까. 2000년대 초중반 방영된 KBS2 ‘여걸파이브’와 ‘여걸식스’부터 2010년 전후의 SBS ‘영웅호걸’, KBS2 ‘청춘불패’ ‘맘마미아’, MBC에브리원 ‘무한걸스’ 등 많은 프로그램들이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장수예능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번에도 과거의 전철을 똑같이 밟게 될까. 한국일보 엔터테인먼트팀 기자들이 여성 예능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언니들의 슬램덩크2’는 시즌1에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출연자들의 걸그룹 도전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왜 뜬금없이 걸그룹이 돼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게 한다. KBS 제공
‘언니들의 슬램덩크2’는 시즌1에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출연자들의 걸그룹 도전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왜 뜬금없이 걸그룹이 돼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게 한다. KBS 제공

강은영 기자(강)=“여성 예능을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갖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존재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여성 예능은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슬램덩크’는 시즌1에서 재미를 봤던 걸그룹 도전기를 또 하고 있어 신선도가 떨어진다. ‘하숙집 딸들’은 ‘여걸식스’와 포맷이 똑같더라. 기획이 안이하다. 여성 출연자를 모아놓기만 하면 여성 예능인가?”

양승준 기자(양)=“‘슬램덩크’가 주목 받은 건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잃어버렸던 꿈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성장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자신을 이입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낀 거다. 그런데 시즌2에선 목표만 남고 주제의식이 사라졌다.”

김표향 기자(김)=“멤버 구성만 봐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공민지는 최정상에 올랐던 투에니원 출신이고, 전소미는 국민이 뽑은 아이오아이 멤버다. 이미 걸그룹으로 한 획을 그었던 이들이 또 걸그룹으로 데뷔한다는 설정부터 어불성설이다. 시즌1에서 걸그룹 데뷔는 민효린이 가슴에 미련을 품고 있던 꿈이었다. 하지만 시즌2에선 누구를 위한 걸그룹인지 주체가 사라졌다.”

이소라 기자(이)=“시즌1의 걸그룹은 예상하지 못했던 도전이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즌2는 전체적인 그림이 한눈에 보인다. 우여곡절을 거친 뒤 음악방송 출연과 음원 발표로 마무리하지 않겠나. 결과가 정해져 있으니 과정도 흥미롭지 않다.”

강=“여성 예능에서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출연자의 민낯 공개다. ‘슬램덩크’의 합숙 장면에도 나오더라. 연예인들이 피부관리에 많은 투자를 하는 걸 요즘 시청자들은 다 안다. 호기심도 재미도 주지 못한다. 또 민낯 공개를 멤버간 유대감을 쌓는 과정으로 묘사하는 것도 문제다. 여성에 대한 편견만 강화한다.”

‘하숙집 딸들’은 방송 5회 만에 멤버와 포맷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KBS 제공
‘하숙집 딸들’은 방송 5회 만에 멤버와 포맷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KBS 제공
‘하숙집 딸들’에서 출연자가 긴 젓가락으로 자장면을 먹는 모습. KBS 화면 캡처
‘하숙집 딸들’에서 출연자가 긴 젓가락으로 자장면을 먹는 모습. KBS 화면 캡처

양=“여성 출연자의 ‘망가짐’도 필수요소다. ‘하숙집 딸들’에선 하숙생 입주 테스트를 한다면서 긴 젓가락으로 자장면을 먹다가 얼굴이 양념 범벅이 되고 콧바람으로 촛불 끄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미가 없다. 여배우들이 ‘왜’ 망가져야 하는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KBS2 ‘1박2일’만 해도 한끼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 확보라는 강력한 동기가 존재하지 않나.”

강=“여배우를 망가뜨려야 인간미가 드러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제작진이 여배우에 대한 환상을 과장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이다.”

양=“결국 ‘하숙집 딸들’은 21일에 결방하고 포맷과 멤버 구성을 바꾸는 대수술에 들어갔다. 실제 하숙집에 들어가 하숙생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콘셉트라고 한다.”

이=“기존의 여성 예능에도 문제가 많아 보인다. 최근 ‘겟잇뷰티 2017’에선 모바일 메신저의 보정 프로필 사진과 똑같이 화장하는 법을 알려주더라. 남자 초대손님에게 마음에 드는 프로필 사진을 고르게 한 뒤 스튜디오에 출연한 여성들을 카메라로 훑듯이 보여주면서 사진 속 얼굴을 찾아보라는 장면도 있었다. 여성 콘텐츠조차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불쾌했다.”

강=“제작진이 남성적 시선에서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작진 대다수가 남성이기도 하다. 요즘 여성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연구한 흔적이 없다.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러니 여성 시청자에게도 외면 당하는 거다.”

이=“태생적인 이유도 있다고 본다. ‘무한걸스’와 ‘비디오스타’는 각각 MBC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를 변형한 프로그램들이다. 출연진 성별만 바꾼 아류라는 인상이 짙다. 원조가 있는데 굳이 아류를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김=“재미있는 콘텐츠는 성별 관계 없이 사랑 받는다. ‘무한도전’처럼 말이다. 최근의 여성 예능들은 ‘여성 예능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위해 졸속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같다. 여성 예능을 꼭 만들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감까지 든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겟잇뷰티 2017’에서 남성 초대손님이 프로필 사진 속 여성을 찾는 장면. 온스타일 화면 캡처
‘겟잇뷰티 2017’에서 남성 초대손님이 프로필 사진 속 여성을 찾는 장면. 온스타일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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