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은경 기자

등록 : 2017.06.13 14:34

“우리 달걀은...” 덴마크에서 온 편지

등록 : 2017.06.13 14:34

[고은경의 반려배려]

덴마크의 한 동물복지형 케이지 양계장에서 병아리들이 다친 병아리의 상처를 쪼고 있다.

얼마 전 덴마크에서 밀집 사육으로 고통 받는 닭들을 구조해 보호하는 소규모 생크추어리(보호소) 운영자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한국 소비자들이 덴마크 내 밀집사육 실태에 대해 알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자국 내 대형 양계 기업들이 밀집 사육으로 생산된 달걀 소비가 줄면서 한국 등 대체 시장 확보를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우리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산란계와 산란계의 어미 닭들이 대량 도살되면서 달걀 값이 급등했고, 달걀을 수입하던 미국에서마저 AI가 발생하면서 3월 중순부터 수입을 중단했다. 치솟는 달걀 값에 급기야 지난달 중순 덴마크의 달걀 수입을 허용한 상황이다.

워낙 동물복지에 관해서는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다고 알려진 유럽국가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가 직접 자국의 대형 양계 농장을 방문해 촬영해 온 영상 속 닭들의 모습은 참혹했다. 2012년 유럽연합 국가들이 좁은 철장으로 만들어진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를 폐지하고 도입한 동물복지형 케이지(enriched cage) 농장이었지만 그곳 닭들의 현실은 나아진 게 없어 보였다.

형식적인 횃대, 좁은 모래 목욕상자는 있으나마나 한 물건들이었다. 병아리들은 발이 빠지는 뜬장 위에서 죽은 병아리 사체와 병들어 죽어가는 병아리의 상처를 쪼고 있었다. 산란계들은 털이 심하게 빠지거나 항문이 부풀어 올랐고, 언제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말라 버린 사체가 방치되어 있었다. 달걀 생산 능력이 떨어진 닭들은 죽을 때마저도 철저히 경제적 논리에 의해 처리됐다. 한 남성은 입에 담배를 문 채 한 손에 다섯 마리씩 닭들을 잡아 속도감 있게 분쇄기 안으로 처넣었고, 공포에 질린 닭들은 기계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런 농장이 배터리 케이지보다 낫다고 해서 동물복지형이나 ‘풍부화’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덴마크의 한 농장 직원이 달걀 생산 능력이 떨어진 닭들을 분쇄기 안으로 넣고 있다(오른쪽). 분쇄기 안 닭들이 몸이 구겨진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리나 린드 크리스텐슨 제공

우리나라는 동물복지형 농장도 아니고 여전히 배터리 케이지 사육을 하고 있는데 2015년 기준 그 비율이 98.5%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국내 닭들은 마리당 A4용지 한 장의 면적인 0.06㎡보다 좁은 0.05㎡에서 살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이 면적을 0.075㎡로 늘리는 걸 검토 중이지만 전문가들과 동물보호단체들은 이로는 부족하며 공간을 넓히든지 아예 개방형 사육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 위의 덴마크 사례는 공간을 조금 넓힌다고 해서 닭들의 처지가 나아지지 않음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지금 전국을 다시 휩쓸고 있는 AI의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는 건 바로 밀집 사육이다. 지난 1월 미국산 달걀 수입 당시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상품의 안전성 측면에서라도 생산 과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비슷한 환경에 키워진 미국 닭들도 2개월 만에 AI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문제는 지금 정부가 달걀 수급을 위해 수입 빗장을 풀고 있는 덴마크, 태국 등의 가금류 사육방식도 다르지 않다는 데에 있다.

당장 급하다고 밀집 사육이라는 똑 같은 방식으로 키워진 닭이 낳은 달걀을 수입해 먹는 게 방도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정부는 수입이라는 미봉책보다 이제라도 동물 복지뿐 아니라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서라도 농장 동물의 사육환경 개선을 우선시 해야 한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덴마크의 한 양계농장에서 죽은 이후 방치된 닭 옆에 달걀들이 놓여 있다. 리나 린드 크리슨텐슨 제공

▶덴마크 동물복지형 케이지 농장 영상보기

리나 린드 크리스텐슨 덴마크 아니마(ANIMA) 캠페인 매니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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