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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文 대통령이 미국 가서 들러야 할 곳

입력
2017.06.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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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여기서 가까우니까 빨리 가서 내일 행사 준비하시면 되겠네요.”

지난달 17일 오후 4시쯤 춘추관 브리핑룸. 청와대는 피우진 보훈처장 발탁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다음날 오전 광주에서 열릴 5ㆍ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밤샘 준비해도 모자랄 판에, 주무부처인 보훈처의 수장을 전격 발표한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하긴 피 처장은 부랴부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외웠지만 워낙 가사가 길다 보니 정작 현장에서는 기억이 가물거려 끝까지 씩씩하게 부르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보훈처가 청와대와 가깝다니. 여의도에서 세종시로 옮긴 지 벌써 3년을 훌쩍 넘겼는데 말이다. 청와대는 보훈처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는 얘기다. 단단한 유리 천장을 뚫고 여성 최초로 보훈처장에 등용된 피우진이라는 인물의 감동 스토리에 환호하면서도, 청와대가 선보인 파격인사의 속뜻을 놓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보훈처는 이명박ㆍ박근혜정부에서 세간의 뭇매를 맞았다. 2008년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위상이 추락하더니, 박승춘 전 처장이 임명된 2011년 이후에는 왜곡된 보수와 적폐의 상징으로 지탄받으며 끊임없는 잡음에 시달렸다. 국방부 관계자는 “청와대는 보훈처가 더 이상 쓸데없이 사고나 치지 말고 얌전히 있기를 바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뒤늦게 장관급으로 다시 격을 올렸지만, 피 처장 인선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오는 이유다.

관심은 줄고, 시선마저 삐딱한 와중에도 보훈처는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지난달 4일 미국 버지니아에서 열린 장진호 전투 기념비 제막식이다. 6ㆍ25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과 영화 국제시장으로 널리 알려진 전투다. 영어로는 Chosin Few Battle로 부른다. Chosin은 장진의 일본식 표기, Few는 미 해병대 생존자가 거의 없었다는 의미다.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이 간다.

1950년 이후 무려 67년 만에 기념비를 세우는 감격적인 행사건만, 대선 닷새 전이라 국내에서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와 달리 현지에서는 현역 서열 1위인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이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부친과 함께 등장해 우리 정부에 감사를 전하면서 미 주류사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갔다. 보훈외교가 왜 필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나설 때다. 문 대통령은 부모가 흥남철수작전 때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장진호 전투와 인연이 남다르다. 당시 함정에 피난민을 태우도록 미군을 설득한 현봉학 박사 동상 제막식이 지난해 12월 열렸다. 문 대통령은 행사에 초청을 받기도 전에 먼저 달려가 자리를 지키며 고마움을 표시할 정도로 열성을 보인 전례가 있다.

이달 정상회담 차 미국을 방문할 때도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그간 워싱턴 D.C를 찾는 정부 인사들의 단골코스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는 이곳에서 차로 40분 거리다. 해외순방의 빡빡한 일정을 감안하면 멀 수도 있지만, 문 대통령이 조금만 관심을 보인다면 한미가 모처럼 뜻을 모아 이뤄낸 값진 성과는 동맹의 새로운 이정표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할 것이다.

트럼프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는 가뜩이나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군사외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논란으로 삐걱대고, 경제외교는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앞둔 폭풍전야다. 철저하게 국익을 따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보훈외교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때다.

더구나 미국은 우리와 달리 군인이 존경 받고 보훈가족이 대접받는 곳이다. 그래서 6월 호국보훈의 달에 치러질 한미 정상회담은 정부의 보훈정책을 되짚어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친밀감을 느끼는 훈훈한 장면을 기대한다.

김광수 정치부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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