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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누른국수,납작만두...10000원으로 누리는 '정감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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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누른국수,납작만두...10000원으로 누리는 '정감 뷔페'

입력
2015.10.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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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고 짜다.’ 이 두 마디면 맛 평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대구는 오랫동안 ‘맛없는 도시’의 오명을 써왔다. 250만 시민의 다양한 입맛을 단 두 단어로 뭉뚱그렸으니 억울할 만도 하다. 간(소금) 없는 요리가 어디 있으며, 고춧가루 없는 한국 음식이 얼마나 될까? 매운 맛도 ‘매콤하다’고 하면 입맛이 당기고, 짠 맛도 ‘짭조름하다’라고 표현하면 느낌이 180°달라진다. ‘매콤 짭조름한 도시’ 대구로 맛 기행을 떠났다.

서문시장 노점식당은 모르는 사람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식사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정감 넘치는 구조다. 대구=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서문시장 노점식당은 모르는 사람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식사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정감 넘치는 구조다. 대구=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시장만한 곳이 없다. 대구 서문시장은 평양, 강경시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시장이라는 명성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6개 지구에 4,000여 상가가 입주해 있고 노점만도 5,000여 개에 이른다. 여전히 전국 최대 규모다. 포목 직물 의류 등 섬유관련 품목이 주종을 이루는데, 특히 한복 유행은 서울에 비해서도 2~3년은 빠르다고 자부하고 있다.

서문시장 맛 기행에 나섰다면 시장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는 노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점이라고 도로변에 서서 때우는 길거리 음식만 떠올리면 곤란하다. 버젓이 점포 번호와 상호까지 갖췄으니 간이식당이라고 보는 게 맞다. 대부분 점포 테두리에 긴 나무의자를 설치해 함께 온 지인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시장통의 정감을 나눌 수 있는 구조다. 대형 상가와 상가 사이 큰 골목이 각각 분식거리, 보리밥거리, 칼국수거리, 콩나물비빔밥골목, 식당골목으로 구분돼 있다. 투명 아크릴로 높은 천정을 설치해 노점 자체가 대형 아케이드라 해도 손색없다.

서문시장 노점의 최대 매력은 한끼식사에부터 소소한 간식과 주전부리까지 싼값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식사로는 보리(비빔)밥과 칼국수가 대표적이다. 주차빌딩 뒤편 전체가 보리밥거리다. 가게마다 유리상자에 그날 비빔밥에 들어갈 재료를 진열해 놓아서 식성에 따라 골라잡을 수 있다. 버섯 숙주 호박 볶음에 무생채와 김 가루까지 갖출 것은 다 갖췄다. 여기에 숭늉과 콩 비지, 된장, 김치까지 곁들인 보리밥상이 4,000원이다.

가장 큰 먹거리 장터는 1지구와 4지구 사이 칼국수거리다. 수 십 개의 노점이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 칼국수 잔치국수 수제비 등 분식을 팔고 있다. 노점의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이 시킨 음식을 보고 가게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조리과정을 직접 볼 수 있고, 상호 아래 메뉴가 나열돼 있는 것도 서문시장의 장점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옹기종기 앉아 식사해도 스스럼없고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시장통의 시끌벅적한 정겨움이 절로 묻어난다.

당면 가득 납작만두
당면 가득 납작만두

견과류 빼곡 찹쌀씨앗호떡
견과류 빼곡 찹쌀씨앗호떡
얼큰덜큰 매콤한양념오뎅
얼큰덜큰 매콤한양념오뎅
식성따라 골라 넣어 먹는 보리밥
식성따라 골라 넣어 먹는 보리밥
밥도둑 찜갈비 양념
밥도둑 찜갈비 양념
반죽에서 삶는 과정까지 바로해서 먹는 누른국수
반죽에서 삶는 과정까지 바로해서 먹는 누른국수

이런 자리가 불편한 이들에겐 명품프라자 상가 식당골목이 있다. 칼국수 찜갈비 돈까스 등 웬만한 대구의 맛은 다 모였다. 삼미식당(이하 지역번호 053, 255-3123)은 여름철 찜통더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한 음식으로 시작했다는 찜갈비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매콤한 양념을 듬뿍 넣고 갈비와 목살을 6:4 비율로 섞은 찜갈비를 양푼에 담아낸다. 고기만 먹기보다 밥 반찬으로 먹어야 제격이다. 진한 갈비 양념을 밥에 비벼 채소에 싸먹는 게 정석이다.

바로 옆 합천할매손칼국수(252-2596)에선 칼질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골목에 큰 도마를 꺼내놓고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 늘리고 빠른 손놀림으로 썰어 내는 모습도 볼거리다. 상호는 칼국수지만 대구에서는 ‘누른국수’라 부른다. 도구보다는 반죽을 펴는 방식에 무게를 둔 이름이다. 즉석에서 썬 면발을 삶아낸 국수 한 그릇이 3,500원이다. 바로 다음 골목에는 간판도 식탁도 없이 간이의자에 쟁반을 올려놓고 후루룩 간편하게 한끼 때우는 2,500원짜리 잔치국수집도 있다.

서문시장에서 꼭 먹어봐야 할 주전부리도 다양하다. 당면만 넣고 밀가루를 얇게 펴서 만든 ‘납작만두’는 한 접시 3,000원, 갓 튀겨낸 도톰한 찹쌀 빵에 해바라기 씨와 땅콩 등 견과류를 듬뿍 넣은 ‘찹쌀씨앗호떡’은 1개 1,000원, 진한 해산물 국물에 고춧가루를 풀고 콩나물을 푸짐하게 올려내는 ‘매콤한양념오뎅’은 1접시 3,000원이다.

팥고물 터질 듯 적두병
팥고물 터질 듯 적두병
차지고 담백한 뭉티기
차지고 담백한 뭉티기

서문시장에서 멀지 않은 달성공원 정문 부근엔 작지만 소문난 과자점 ‘적두병(赤豆餠)’이 인기다. 붉은 콩 즉, 팥떡이라는 일반명사를 상호로 사용했다. 팥고물이 밖으로 터져나올 만큼 속이 꽉 찬 적두병이 4개 2,000원이다. 공갈빵과 구운찰떡은 1개, 밤빵과 밤과자는 1봉지에 각 1,500원이다.

서문시장이 처음부터 지금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엔 경상감영(경상도를 관할하는 관청, 중앙로역 인근) 가까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걸 우려한 일제가 천왕당지(天王堂池)라는 연못을 메워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서문(西門)시장은 경상감영을 둘러싼 대구읍성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대구의 명동이라 부르는 동성로를 비롯해 북성로 서성로도 경상감영을 기준으로 한 지명이다.

경상감영 인근 중앙로와 동성로 사이에는 대구 10미(味)에 포함된 ‘뭉티기’와 ‘야끼우동(볶음우동)’을 잘하는 식당이 있다. 뭉티기는 뭉텅이의 사투리로 뭉텅뭉텅 썰어낸 생고기를 말한다. 그렇다고 대충 썰어 담는 건 아니다. 소 엉덩이 살(우둔살)에서 힘줄과 기름기를 세세하게 발라냈기 때문에 차지고 담백하다. 양념과 버무리는 육회와 달리 생고기를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식당마다 양념장에 차이가 있는데 안동한우를 쓰는 송학구이(424-3889)는 성글게 빻은 마른 고추와 고추씨, 통마늘이 들어간 기름 장을 내놓는다. 인근 중화반점(425-6839)은 매콤한 야끼우동으로 유명하다. 고춧가루와 마늘이 들어간 양념에 새우와 오징어, 숙주나물과 목이버섯 등을 넣고 볶아 얼핏 국물 없는 짬뽕과 흡사하다. 중국 산둥성 출신의 주인장이 1970년대부터 대를 잇고 있다.

대구시는 2006년부터 육개장(따로국밥), 막창구이, 뭉티기, 찜갈비, 논메기매운탕, 복어불고기, 누른국수, 무침회, 야끼우동, 납작만두를 대구 10미로 정하고 대구의 맛을 알리고 있다. 막창구이 음식점은 안지랑 곱창골목과 수성못 일대에 밀집해 있고, 논메기매운탕은 달성군 다사읍이 본고장이다. 나머지는 서문시장과 동성로 일대에서 대부분 맛볼 수 있다.

대구=최흥수기자 choissoo@hank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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