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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같은 묘지에서 눈 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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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같은 묘지에서 눈 감다

입력
2017.07.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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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ㆍ일본 등 '동반 장묘’ 허용 눈길

반려동물의 죽음을 기리며 사후에 함께 묻히고자 하는 반려인이 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일부 행정구역에서는 반려동물 동반 장묘가 허용됐다. 장례업체 하기노야 홈페이지 캡처
반려동물의 죽음을 기리며 사후에 함께 묻히고자 하는 반려인이 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일부 행정구역에서는 반려동물 동반 장묘가 허용됐다. 장례업체 하기노야 홈페이지 캡처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 반려동물과 언젠가 영원히 이별해야 합니다. 국내에선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 명에 접어들면서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상실감을 일컫는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사람도 늘었는데요.

최근 일본 장례문화 전문 온라인매체 '이이소기'에 따르면, 일본에선 사후에 반려동물과 함께 묻힐 수 있는 민간 공원묘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먼저 떠난 반려동물과 같은 무덤에 잠들기를 바라는 반려인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공원묘지는 "반려동물과 함께 묻힐 수 있다"는 규약을 정했습니다. 비석에 반려동물의 이름과 사진, 메시지를 새겨 넣을 수 있으며 반려동물의 형태를 딴 묘비 제작도 가능합니다. 유골함에 들어 있는 상태라면 어떤 반려동물이든 종에 대한 제약이 없고, 다른 납골당에서 가져온 유골함도 비치할 수 있으며 반려동물의 유골만 먼저 납골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동물과 같은 묘지를 쓰는 것이 불쾌한 다른 이용자를 배려해 공원묘지의 일부 구역만 ‘반려동물 가능 구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일본에선 종교관이나 위생 관념상 사람과 동물의 유골을 함께 매장하기 위해서는 묘지 관리자인 절이나 지역자치단체의 승인이 필요한데요. 현재 도쿄, 오사카, 홋카이도, 후쿠오카 등 10개 도와 현에 반려동물과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묘지가 마련돼 있습니다.

트럭을 개조해 만든 화장차. 장례를 치르는 '세리머니실'과 화장 소각로가 마련돼 있다. 장례업체 아스트로펫메모리얼 홈페이지 캡처
트럭을 개조해 만든 화장차. 장례를 치르는 '세리머니실'과 화장 소각로가 마련돼 있다. 장례업체 아스트로펫메모리얼 홈페이지 캡처

또 반려동물과 함께 잠들 수 있는 수목장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구획에 유골을 매장하고 묘비 대신 나무를 심는 방식의 수목장은 혼인이나 혈연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정한 사람과 함께 잠들 수 있으므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제격입니다. 또 돌로 만든 묘지보다 약 5분의 1 정도로 저렴해 인기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오래 전부터 반려동물 장례문화가 발달한 일본에는 반려동물 장묘 및 장례문화 관련 업체와 상품들이 많습니다. 직접 장례식장에 가지 않고도 2톤 트럭을 개조한 이동식 화장차가 방문해 사망한 반려동물의 화장 및 장례의식을 치르기도 하는데요. 차체 뒷부분에 마련된 세리머니실에선 장례의식을 거행하며 반려동물과 작별인사를 하고, 앞부분에 장착된 화장 소각로에서는 화장을 진행합니다.

나가노 현에 있는 유리공방 '라 폼'에서는 반려동물의 유골로 목걸이나 귀걸이를 제작하거나 유전자(DNA)를 추출하고 구슬에 넣어 펜던트를 만듭니다. 오사카 시의 '레이세키' 공방에서는 반려동물의 모습 그대로 본떠 도자기 유골함을 만들어 줍니다.

반려동물 장례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반려동물의 모습을 본 뜬 유골함이나 반려동물의 유골로 제작한 장신구가 제작 및 판매되고 있다. 레이세키공방 홈페이지 캡처
반려동물 장례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반려동물의 모습을 본 뜬 유골함이나 반려동물의 유골로 제작한 장신구가 제작 및 판매되고 있다. 레이세키공방 홈페이지 캡처

한편 62%의 가정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미국에서도 반려동물과 함께 묻히기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뉴욕 주의 동물보호단체들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뉴욕 주에서는 지난해 9월 반려동물과 사람의 공동매장을 인정하는 조례가 성립됐습니다.

이로써 반려동물이 묘지에 묻히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던 조치가 사라지고 묘지 운영자의 허락이 있다면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함께 묻힐 수 있게 됐습니다. ▦반려동물은 반드시 화장할 것 ▦반려동물만 이용 가능하며 야생동물 매장은 불가함 ▦사람과 반려동물 모두 자연사했을 것이라는 규정이 포함됐습니다.

반려동물 친화적 문화가 조성된 미국에서도 아직 사람의 묘지에 반려동물도 매장하는 행위를 정식으로 허가하는 주는 거의 없는데요. 그만큼 뉴욕 주에서 반려동물의 공동 매장을 허가하는 조례가 통과된 것은 이례적입니다.

조례에 서명한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많은 뉴욕 시민들에게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라며 "사후에 반려동물과 함께 매장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고 반려인들의 마지막 소원을 존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뉴욕 웨스트체스터카운티에 있는 반려동물 묘지 '하츠데일'의 책임자 에드워드 마틴 씨에 따르면 매년 5명 이상의 반려인이 반려동물 묘지에 매장되는 것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공동 매장을 원하는 목소리는 결코 기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려인들의 바람과 사회적 이해를 바탕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려동물과 공동매장을 허락한 일본과 미국의 일부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반려동물 친화적 장묘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데요. 최근엔 국내에서도 반려동물 사체처리 방식의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는 동물의 사체 처리를 기존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버려 소각하는 방식이 아닌 냉동보관 후 위생적인 전문과정을 거쳐 처리하는 방식으로 변경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려동물 사체를 일반폐기물과 같이 쓰레기 봉투에 넣어 소각하는 방식에서 냉동고에 1차 보관 후 전문 소각처리업체에 맡겨 소각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구는 "반려동물 장묘문화가 미국·일본처럼 일반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관련 민원도 신속히 처리하고, 청결한 도시 이미지 구축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성숙한 장묘 문화와 함께 반려동물과 인간이 사후에도 공존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합니다.

한희숙 번역가 pullkkott@naver.com

김서로 인턴기자 (이화여대 행정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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