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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넘치고 윤리 무너진 한국”…센 ‘미드’의 이유 있는 안방 습격

입력
2016.09.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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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BS에서 방송된 '굿와이프'(위)와 국내 tvN이 리메이크한 '굿와이프'. 각 방송 캡처
미국 CBS에서 방송된 '굿와이프'(위)와 국내 tvN이 리메이크한 '굿와이프'. 각 방송 캡처

‘전도연의 불륜’보다 파격적인 얘기는 따로 있었다. 지난달 종방한 tvN 드라마 ‘굿와이프’에서 흥미로운 건 법조인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극중 변호사인 김혜경(전도연)은 약물 피해 보상 소송을 진행하며 동물실험 부작용 결과를 부풀린다. 예전 사건 의뢰인이 자신의 로펌을 상대로 피해 보상 소송을 걸자, 승소를 위해 서류 위조를 묵인한다. 동명 미국 드라마(CBS)가 원작인 ‘굿와이프’는 법조인에 대한 ‘신화’를 철저히 깨부순다. 법조인은 ‘영웅’이 아니다. ‘직장인’ 변호사에게 ‘선’(善)은 사치다. 사건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다. 법조인을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로 부각한 영화 ‘변호인’(2013) ‘소수의견’(2015) 등 국내 대중문화 콘텐츠와는 180도 다른 접근이다.

미국 HBO에서 방송된 드라마 '안투라지'의 주연배우들(위)과 한국 tvN에서 리메이크할 동명 드라마의 주인공들. HBO·tvN 제공
미국 HBO에서 방송된 드라마 '안투라지'의 주연배우들(위)과 한국 tvN에서 리메이크할 동명 드라마의 주인공들. HBO·tvN 제공

0편→4편…봇물 터진 영ㆍ미 드라마 리메이크

파격을 앞세운 미국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줄을 잇고 있다. tvN은 ‘굿와이프’에 이어 오는 11월 미국 방송사 HBO의 ‘안투라지’를 리메이크한 동명 드라마를 방송한다. 영화사 NEW는 내년 방송을 목표로 CBS에서 방송된 범죄 수사물 ‘크리미널 마인드’ 리메이크 작업에 한창이다. 드라마 작가가 아닌 영화 작가를 섭외해 시리즈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17년에는 영국 드라마 리메이크작도 국내에 처음으로 안방극장에 소개된다. 국내 한 유명 드라마 제작사는 BBC에서 방송된 ‘미스트리스’ 리메이크 작업에 착수했다. 배우 김윤진이 출연한 동명 미국 드라마의 원작이다. 제작사 관계자는 “BBC에서 판권을 샀다”며 “내년 상반기 방송을 염두에 두고 현재 대본 각색 작업을 하고 있고 한 방송사와 편성을 심도 있게 논의 중”이라고 귀띔했다.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미국과 영국 드라마의 리메이크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풍경이다.

각박해진 삶…‘일드’ 지고 ‘미드’ 오고

영ㆍ미 드라마 리메이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건 케이블 및 종합편성채널이다. 지상파와 비교해 드라마 소재와 표현의 수위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불륜과 살인 등을 노골적이고 강도 높게 다루는 것에 대한 시청자들의 거부감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영ㆍ미 드라마를 꾸준히 접해 이 같은 문법에 익숙한 시청자층이 폭넓게 형성돼 있다. 여기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도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미국 수사물을 보면 시청자들이 ‘범죄의 천국’이라 부를 정도로 우리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의 얘기로 받아들였다”며 “하지만 이젠 평범한 한국 시청자들도 현실에서 치안이나 안전 문제에 대해 극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어 미국 드라마 속 범죄 소재가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고 봤다.

센 소재를 다룬 미국 드라마가 각광받으면서 엉뚱한 로맨스가 장점인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다. 지상파에선 2013년부터 작년까지 ‘내일도 칸타빌레’ 등 매해 한 편 이상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해 내보냈으나, 올해는 편성이 확정된 작품이 한 편도 없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내부자들’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인데도 이례적으로 흥행한 것과 영ㆍ미 드라마 리메이크 유행은 비슷한 맥락”이라며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대중문화에서 폭력적이고 센 소재를 찾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스트리스’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정신과 의사가 그의 장례식에서 만난 아들과 하룻밤을 보내는 등 소위 막장 이야기와 안락사 이슈 등 자극적인 소재가 넘친다.

올 초 tvN에서 방송돼 시청률 10%를 웃돈 드라마 ‘시그널’의 성공으로 범죄 수사와 추리에 집중하는 장르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영ㆍ미 드라마 리메이크 바람의 기폭제가 됐다. ‘크리미널 마인드’는 범죄 프로파일러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다.

리메이크 작이 방송됐거나 방송 예정인 영ㆍ미 드라마. '굿와이프'(맨 위부터), '안투라지', '크리미널 마인드'는 미국, '미스트리스'는 영국 드라마다. 미국 CBS·HBO, 영국 BBC 등 제공
리메이크 작이 방송됐거나 방송 예정인 영ㆍ미 드라마. '굿와이프'(맨 위부터), '안투라지', '크리미널 마인드'는 미국, '미스트리스'는 영국 드라마다. 미국 CBS·HBO, 영국 BBC 등 제공

판권료만 4억 원 이상…비싼 ‘미드’ 리메이크하는 이유

영ㆍ미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려면 창작 드라마보다 제작비가 더 든다. 드라마 판권료에다 한국적 각색을 위한 국내 작가 원고료가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방송 관계자들에 따르면 영ㆍ미 드라마의 판권료는 4억~5억원(16회 기준)에 달한다. 여기에 회당 1,000만~2000만원 선인 각색 작가 원고료를 더하면 대본에만 최소 6억원 이상이 투입된다.

제작사들이 “창작 드라마와 비교해 제작비로는 마이너스”라면서도 영ㆍ미 드라마 리메이크에 열을 올리는 것은 방송사 편성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미 검증된 콘텐츠인데다, 원작에 대한 팬덤까지 안고 갈 수 있어 실패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기존의 틀을 벗어난 신선한 역할과 이야기 전개로 드라마에 좀처럼 출연하지 않는 스타 배우 섭외에 유리한 것도 장점이다. 전도연이 ‘굿와이프’로 무려 11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영ㆍ미 드라마 리메이크를 준비중인 제작사 관계자는 “국내에선 장르물을 쓸 수 있는 인지도 있는 작가가 김은희, 송재정 작가 정도여서 밖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며 “원작에 대한 인지도를 활용해 일본과 중국 등에 수출 활로를 뚫기 쉬운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굿와이프’와 ‘안투라지’의 제작을 총괄하는 김영규 CJ E&M 책임프로듀서는 잇단 리메이크 기획 배경에 대해 “미국드라마는 한국드라마와 비교해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서사가 뛰어나다”며 “한국적인 각색을 통한 정서적인 해석을 덧붙이면 색다른 드라마적 재미를 줄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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