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환희 기자

등록 : 2017.08.18 04:40
수정 : 2017.08.18 07:42

[당신이 히든 히어로] 학교로 간 ‘돈키호테’ 최향남

등록 : 2017.08.18 04:40
수정 : 2017.08.18 07:42

지난 14일 서울 신월구장에서 열린 제4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최향남 글로벌선진학교 감독. 신상순 선임기자

“지금이라도 다시 몸 좀 만들어 볼까.” 그 유명한 ‘엘롯기(LGㆍ롯데ㆍKIA)’를 모두 거친 사나이.

그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던 건 최향남(46)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또 다른 무대에서 마운드에 설 것만 같은 최향남을 다시 만난 곳은 서울 양천구 신월구장이었다. 제4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그는 경북 문경에 있는 글로벌선진학교의 야구감독으로 학생들을 이끌고 왔다.

최향남은 프로야구 해태에서 출발해 LG로 갔고 KIA와 롯데를 거쳐 다시 KIA로, KBO리그에서만 4차례 이적했다. LG에서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경험했고, 팬들이 ‘향운장’이란 별명을 붙여준 롯데에선 마무리로 활약했으며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선동열 전 KIA 감독의 러브콜로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미국도 두 번 건너갔다. 클리블랜드 트리플A, LA 다저스 트리플A에서 빅리그를 노크했다. 일본 독립리그와 남미의 도미니카리그, 유럽의 오스트리아 리그까지 두루 경험했다. 마운드만 밟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날아갔다. 누가 권하지도 않았고, 팀에서 쫓겨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잘 나갈 때 돌연 해외 무대에 도전하겠다는 ‘폭탄 선언’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비록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최향남은 “도전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런 최향남이 어느 순간 ‘은퇴’라는 말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1월 경북 문경으로 갔다. 친구가 감독으로 있는 글로벌선진학교에서 재능기부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선수 생활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몸을 만들면서 후배들을 지도하던 중 감독과 코치가 동시에 팀을 떠나게 됐다. 도전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던 최향남은 처음으로 고민에 빠졌다. 자신까지 떠나면 남겨질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그리고 학교에 남기로 결정한 뒤 감독대행을 맡아 처음 참가한 대회가 바로 지난해 44회 봉황대기였다.

1회전에서 청각장애 학생들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를 만나 9-3으로 승리했다. 대회를 마친 뒤 그는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고, 이번에 두 번째 봉황대기에 참가했다.

최향남의 삶은 남들과 사뭇 달랐다. 글로벌선진학교 감독직을 받아들인 것도 이 학교의 이념이 그의 인생 철학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야구단 창단 6년째를 맞는 글로벌선진학교는 공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화 대안학교다. 개인의 잠재력과 다양성에 초점을 둔 곳이다. 그 결과 올해 졸업생 40% 이상이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미국 50위권 명문대학에 진학했으며 아시아권 일류 대학과 독일 영국 등 유럽 대학에도 대거 진학했다. 영어 의무화 사용 구역을 캠퍼스에 설치했을 만큼 이 곳 학생들에게 영어는 필수다.

최향남 감독과 글로벌선진학교 선수들의 다정한 셀카 사진. 최향남 감독 제공

이 같은 교육은 운동 선수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된다. 글로벌 스포츠 인재 육성을 위해 언어 교육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최향남은 “우리 선수들은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영어 수업을 듣는다. 공부를 하면서 야구를 하는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고교야구 주말리그제 도입 후 모든 학교 선수들이 수업에 참가는 하고 있지만 이 곳 야구 선수들이 받는 수업은 차원이 다르다. 야구부원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닷새 동안 수업에 의무적으로 참석한다. 수업은 원어민 교사에 의해 영어로 진행되며 수학 시간에도 영어로 설명을 한다. 야구 기량은 다른 학교에 뒤질 수밖에 없다.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라기 보다 직업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학생들은 애초에 이 학교에 오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서울대 야구부 같은 느낌이다. 최향남은 “매년 전국에서 야구부 고3학생 1,000명 가량이 배출되는데 프로지명은 100명뿐이다. 일부는 특기생으로 대학을 간다. 프로에 가도 100명 가운데 2~3명만 스타가 된다”고 대안학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콜드게임 패하기 바빴던 야구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올해 전반기 주말리그에서 2월에 창단한 영문고를 3-2로 제압하더니 후반기엔 대구의 강호 상원고를 격파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지난 14일 열린 45회 봉황대기 1회전에서도 군산상고를 상대로 1회 2점을 선취하는 등 선전하다가 3-4, 1점 차로 아깝게 졌다. 최향남은 “작년까지만 해도 엘리트라기보다 클럽 야구 같은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봤다면 이제는 아무도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프로 무대까지 꿈꾸는 선수들도 있다. 공부와 운동, 두 가지 옵션이 생긴 셈이다. 최향남은 “야구는 삶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구만을 위해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으려는 학생들 중 야구로 성공하고 싶은 선수를 돕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현역 생활의 미련은 더 이상 없을까.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고만 답했던 최향남은 “미국에 갈 때도 그랬고, 지금도 (감독을 계속 맡기를)모두가 원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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