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민승 기자

등록 : 2017.07.12 13:47
수정 : 2017.07.12 23:34

[짜오! 베트남]오토바이 천국 베트남…거부할 수 없는 편리함

등록 : 2017.07.12 13:47
수정 : 2017.07.12 23:34

출근길 오토바이 물결 속에

노점 도시락ㆍ커피 사 먹는 풍경

밤 거리엔 연인들 사랑의 질주

광고 찍힌 헬멧ㆍ비옷 나눠주기도

소득 늘며 자동차도 많아졌지만

대부분 오토바이도 함께 소유

포기 못할 편리성ㆍ기동성ㆍ경제성

판매 다시 증가…4500만대 보유

우버 오토바이택시를 탄 한 여성 승객이 이동 중에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아찔해 보이지만 베트남에서 종종 목격되는 장면이다. 오토바이에서 먹는 것까지는 좋지만 이후 쓰레기를 길거리에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때무에 오토바이에서 취식을 금지하는 지역도 있다.

베트남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시내에 ‘걸어 다니는 것’은 외국인 관광객 아니면 개다.” 과장된 측면이 없진 않지만, 베트남에서 걸어 다니는 베트남 사람 구경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그 이유에 대해선 걷는 습관이 안 들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는 더운 날씨 때문이라는 이들도 있다. 부실한 대중교통 체계나 좁은 인도 등 도심의 열악한 보행 여건을 들먹이는 경우도 있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배경에는 모두 ‘오토바이’가 있다. 베트남의 오토바이를 알면 베트남 사회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토바이 판매 다시 증가세

지난 10일 베트남 오토바이생산자협회(VAMM)는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152만7,288대의 오토바이를 판매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6% 늘어난 규모로, 오토바이 판매가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수입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하와 소득 증가로 승용차 보급이 빠르게 늘면서 세간에는 ‘오토바이 천국’ 시대도 곧 저물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최근 오토바이 판매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오토바이가 베트남의 ‘핵심 아이콘’ 지위를 당분간 더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오토바이 연간 판매 대수는 2011년 330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15년 270만대 수준까지 떨어졌었다.

베트남에 보급된 오토바이 대수는 4,500만대. 인구 2명당 1대꼴로 포화 상태다. 오토바이를 소유할 수 있는 18세 이상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4명당 3대에 이른다. 국영 석유기업에 다니는 담 반 뚜엔(40)씨는 “작년에 기아 피칸토(모닝)를 구입한 뒤에도 가볍게 시내에 나갈 때엔 오토바이를 탄다”라며 “좁은 도로, 부족한 주차공간, 점점 늘어나는 자동차를 감안하면 시간이 지나도 오토바이는 모든 사람의 필수품 지위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담 반 뚜엔(가운데)씨가 딸과 아내를 태우고 시내에 볼일을 마친 뒤 돌아가고 있다. 뚜엔씨는 승용차가 있지만 복잡한 시내에 나올 때에는 항상 오토바이를 끌고 나온다. 무엇보다 신속하게 목적지에 닿고, 주차도 쉽게 할 수 있는 게 오토바이의 매력이다. 저렴한 유지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승용차가 많아질 수록 오토바이 인기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토바이 판매 증가세 이유는 비교를 불허하는 주차의 편리성과 기동성, 경제성으로 요약된다. 대중교통 수단으로는 버스가 있지만 정거장 인근에 집과 직장을 두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 하노이와 호찌민에서 진행 중인 전철 공사에 큰 기대를 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현지 은행직원 응우옌 푸엉(33)씨는 “전철이 생겨도 집에서 역까지, 역에서 사무실까지 결국 택시를 타든지 해야 한다”라며 “차라리 오토바이로 움직이는 게 편리하다”고 말했다. 출근길에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아내를 직장에 내려준 뒤 사무실로 향하는 그는 “오토바이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석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3,800만동(약 190만원)을 주고 구입한 오토바이에는 월 주차료 55만동(약 2만7,500원), 연료비 40만동(약 2만원)이 들어간다. 새 제품의 경우 최소 1,600만동(약 80만원), 중고 800만동(약 40만원) 정도의 초기 비용만 감당한다면 이후 큰 부담이 없는 셈이다.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에 못 싣는 게 없다. 한 운전자가 냉장고를 싣고 가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도 거뜬히 옮기는 오토바이

저렴한 비용으로 끌 수 있는 오토바이지만 베트남에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화물 운송 수단으로도 쓰이는데, 웬만한 냉장고 등 가전제품들도 척척 소화해 낸다. 가전제품 전문 매장 응우옌 킴 관계자는 “트럭이 들어가기 어려운 골목을 지나 배달할 경우가 많다"며 “부피가 큰 일부 세탁기와 냉장고를 제외한 대부분 제품은 오토바이로 배송된다”고 말했다. 큰 짐을 실은 탓에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주변 오토바이들은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지나갈 정도로 오토바이를 통한 화물운송은 일반화 돼 있다. 짐이 아니더라도 4명의 가족이 한 오토바이에 타고 이동하는 장면, 만삭의 임신부는 물론 갓난 아기를 태우고 가는 일도 일상화돼 있다.

한 어머니가 오토바이 뒤에 앉은 아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아기띠를 두른 채 달리고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오토바이가 데이트 장소 또는 구실로도 이용된다. 운전자와 동승자의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탓이다. 호찌민 시내의 경우 중앙우체국, 노트르담 성당 등 관광 명소 주변 대로에는 늦은 밤까지 연인들을 태운 오토바이들의 질주가 이어진다. 대학생 응우옌 안나 녹(20)씨는 “티켓값이 싼 날을 골라 영화관을 찾기도 하지만 가난한 학생들은 저렴한 오토바이 데이트를 선호하다”고 말했다. 이 외에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뒷자리에선 책을 읽기도 한다. 한낮 그늘에 주차된 오토바이는 침대로도 이용된다.

호찌민 시내 한 노점상 풍경. 엄마를 따라온 듯한 어린 아이가 오토바이 안장에 누워 놀고 있다.

오토바이 유발 경제효과 산정 어려워

오토바이가 일상과 밀접하다 보니 오토바이와 연계된 소비문화도 독특하다. 시내로 이어지는,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에는 아침마다 어김없이 노점들이 줄을 지어 문을 연다. 잠깐 오토바이를 멈추고 아침 식사 혹은 점심 도시락을 구입하려는 직장인들을 겨냥한 이동 상점들이다. 오토바이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걸 수 있는 고리가 있고, 커피점에서는 그 고리에 컵을 걸거나 들고 다니면서 마실 수 있는 손잡이 달린 비닐링을 함께 내놓는다. 커피 전문점 하이랜드 사이공무역센터점 관계자는 “차뿐만 아니라 반미(베트남의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도 운전하면서 먹을 수 있도록 포장해서 낸다”고 말했다.

눈만 뜨면 보이는 게 오토바이다 보니 운전자, 동승자가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헬멧은 기업들의 훌륭한 홍보 매체로 이용된다. 통신사, 케이블방송사, 제과업체 등이 판촉용 무료 헬멧을 나눠주는가 하면, 우기를 앞두고 자사 로고가 적힌 오토바이 전용 비옷을 배포하기도 한다. 코트라 호찌민무역관 관계자는 “오토바이가 유발하는 경제 효과는 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라며 “베트남시장에 파고들려면 무엇보다 이들의 생활과 뗄 수 없는 오토바이 문화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한 학생이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동안 책을 읽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 위에서 다양한 일들이 이뤄진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출근길 길가에 차려진 노점에서 아침이나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구입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에는 노점상들이 다양한 음식을 미리 포장해 놓고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기다린다. 주문해서 물건을 받고 값을 치르는데 15초가 안 걸린다.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 오토바이. 기업들은 이들 운전자들이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헬멧에 자신들의 로고를 세겨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움직이는 훌륭한 광고판이다.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 오토바이. 기업들은 이들 운전자들이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헬멧에 자신들의 로고를 세겨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움직이는 훌륭한 광고판이다.

호찌민 시내 출근길 풍경. 베트남 도심에서 '걸어다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외국인 관광객 또는 개일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에서 걸어다니는 베트남 사람을 구경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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