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국민적 공감대’ 발언 이틀만에 뒤집어
추경도 “필요 없다”→”필요하다면 가능” 선회
양적완화ㆍ경기진단ㆍ해운 구조조정 때도 발언 뒤집혀
경제정책 사령탑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안과 관련 매번 엇갈린 진단과 해법을 내놓고 있다. 며칠 새 말을 180도 뒤집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가경제의 동력이 갈수록 식어가고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중차대한 시기에 강한 추진력으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경제부총리가 되레 경제주체들에게 혼란스러운 신호만 주고 있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유 부총리는 2~5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 등을 위해 독일을 방문하는 중 본인의 발언을 불과 하루 이틀 만에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 유 부총리는 2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행의 국책은행 자본확충과 관련, “국민적 공감대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직전에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가 정부의 자본확충 참여 요구에 대해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한 것을 에둘러 비판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4일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국회에 설명하고 국민에게 설명할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도록 하겠다”며 본인 스스로 ‘국민적 공감대’란 표현을 꺼내 들었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문제에서도 입장이 달라졌다. 2일까지만 해도 줄곧 “구조조정만으로는 추경 요건이 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4일에는 “필요하다면 그렇게 (추경을) 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추경 가능성을 처음 시사한 발언이었지만,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 검토된 바 없다”고 했다.
유 부총리의 오락가락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해운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지난달 15일 “제일 걱정되는 회사가 현대상선”이라고 회사명을 콕 찍어 언급했다가, 며칠 뒤에는 “현대상선은 용선료 협상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원론에서 벗어난 발언이 아니다”며 물러섰다. 경기진단과 관련해서도 2월에는 “수출 부진이 가장 위험요소”라며 심각성을 강조하다가 3월부터 “가장 큰 위험요인은 근거없는 위기ㆍ불안감 조성”이라며 낙관론으로 돌아섰다.
이런 널뛰기 발언에 대해, 기재부 안팎에서는 학자 출신인 그의 대화 스타일 때문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경제현상 양면성을 두루 감안해야 한다는 학자로서의 특성 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인데, 한쪽만 부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경제의 운명이 달린 중대 현안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경제부총리가 시장에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혼선을 부추기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더구나 정작 기업 구조조정에서 유 부총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관료는 “향후 한국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 임종룡 금융위원장만 보일 뿐, 유 부총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며 “상황 인식이 지나치게 안일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쓴 소리를 했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 역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부총리가 구조개혁에 대한 근본적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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