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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상상된 공동체’는 민족주의 비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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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상상된 공동체’는 민족주의 비판 아니다

입력
2018.07.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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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을 널리 알린 베네딕트 앤더슨. 그는 제목 때문에 자신의 논의가 심하게 오해 받고 있다고 불평했다. 도서출판 길 제공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을 널리 알린 베네딕트 앤더슨. 그는 제목 때문에 자신의 논의가 심하게 오해 받고 있다고 불평했다. 도서출판 길 제공

“‘IC’는 줄임말의 편의성뿐만 아니라 상투성의 뱀파이어들이 이제 피를 거의 다 빨아먹어 버린 단어 한 쌍을 평온하게 가리는 효과도 있다.”

널리 알려진 ‘Imagined Communities(상상된 공동체)’라는 표현을 ‘IC’라 줄여 쓴데 따른 설명이다. 책 제목이 만들어낸 오해가 너무 싫어서 ‘Imagined Communities’라는 단어를 쓰기조차 싫다는 얘기다. 골치 아프긴 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제 새끼 같은 표현일 텐데 ‘상투성의 뱀파이어들이 피를 다 빨아먹어 버린 단어 한 쌍’이라니. 웃음이 빵 터진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말하는 바람에, 굳이 안 읽어도 무슨 소린지 다 아는 책이 있다. 이런 책은 너무 단순하게 소비되는데, 그 소비 방식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오해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꼭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 빠지지 않아 ‘현대의 고전’이라 불리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도 그 중 하나다. “상상된 공동체, 그거? 민족주의 비판한 책이잖아!”라는 오해다.

한 단락을 뽑자면 이렇다. 앤더슨은 또 다른 민족주의 이론가 어네스트 겔너를 비판하면서 이리 써놨다. “겔너는 민족주의가 허구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안달이 난 나머지, (민족주의의) ‘발명’을 ‘상상/창조’가 아니라 ‘허위/날조’로 받아들인다. (중략) 공동체는 가짜냐 진짜냐가 아니라 어떠한 스타일로 상상되었는가를 기준으로 구별해야 한다.” 이것만 봐도 앤더슨은 민족주의가 허위, 혹은 날조라 주장하지 않았다.

1983년 처음 이 책을 선보인 앤더슨은 1991년판 서문에다 이런 푸념을 늘어놨다. 이 책을 쓸 때 의도는 “민족주의가 신세계에서 기원했음을 강조하는 것이 나의 본래 계획”이었다. 그 계획의 핵심을 4장 ‘크리올 선구자들’에 담아놨는데, 정작 “아메리카를 (민족주의의) 시조로 잡는 중대한 장”인 이 4장이 “대대적으로 무시당한다는 데에 기겁”했다고 썼다.

앤더슨이 그린 그림은 뭐였을까. “근대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나 다 유럽에서 기원했다는 자만심”을 비웃고 싶었다. 그래서 민족주의라 하면 혈통, 언어, 문화 같은 걸 따져대는 유럽식 말고 다른 방식의 민족주의도 가능하며, 그게 바로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생겨났다는 얘기다. 신대륙으로 이주한 스페인 사람과 그 혼혈을 일컫는 ‘크리올’이 대표적이다.

이런 주장이 가능한 건 앤더슨이 스스로를 “지구적인 체 하는 시늉”을 하고 싶지 않은, “훈련에서나 직업에서나 동남아시아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변방의 강렬한 민족주의는 곧 좌파적인 그 무엇으로 오인되던 엄혹한 냉전시기에, 앤더슨은 그 변방의 민족주의에 우리가 오해하는 민족주의와는 다른 민족주의가 있다고 외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제목만 딱 보고는 “민족주의는 상상된 거라는데?” “그럼 민족주의는 뻥이란 얘기네?” “그러면 민족주의가 잘못했네!”라는 3단 논법으로만 치달아갔다. “상투성의 뱀파이어”, “기겁했다”는 표현은 그래서 나왔다.

상상된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ㆍ서지원 옮김

도서출판 길 발행ㆍ376쪽ㆍ2만8,000원

일정 규모 이상 집단에서 서로를 대면하고 알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집단은 애초부터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상상의 방식에는 계급, 성별, 종교, 연령대 등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민족’이란 키워드 또한 아주 강력한 방법이다. 오늘날 우리는 ‘민족주의가 인종, 젠더, 불평등 등 다른 문제를 덮어버리는 거대한 가림막 혹은 속임수’라고 즐겨 말하지만, 앤더슨 또한 그 위험성을 인정하지만, 굳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상상의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민족주의 또한 가능하다는 얘기다. 소외된 자들이 뭉쳐 스스로를 하나의 민족으로 선언한다는 것, 그건 때에 따라 사랑의 기획, 앤더슨식 표현에 따르면 ‘동등한 형제애(Fraternity)의 기획’일 수 있다. 이런 민족주의는 낡은 게 아니라 미래지향적일 수 있다.

번역을 맡은 서지원 창원대 교수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학자들조차도 의외로 앤더슨이 ‘민족주의는 허위로 날조됐다’라 주장했다라고 만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아서 번역 작업을 했다”면서 “민족주의 비판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왜 민족주의를 하는가를 들여다보라고 촉구하는, 1980년대 서구학계에 널리 퍼진 민족주의 비판에 대한 역비판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이번 번역본에서 ‘상상된 공동체’라는, 이미 널리 알려져 굳어진 표현이 된 ‘상상의 공동체’와 다른 제목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서 교수는 “기존 ‘상상의’라는 표현은 형용사 ‘Imaginary’ 느낌이 나서 ‘Imagined’의 어감을 살리기 위해 ‘상상된’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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