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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ㆍ뮤지컬 함께 만들다 보면 협력하는 법 배우지 않을까… 서울 중학교에 실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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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ㆍ뮤지컬 함께 만들다 보면 협력하는 법 배우지 않을까… 서울 중학교에 실험할 것”

입력
2016.09.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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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역량을 배양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시대에 따라 필요한 역량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시대에는 정답을 잘 파악하고 말하는 능력이 중요하고 어떤 시대에는 질문을 만드는 역량이 더 중요하다. 어떤 시대에는 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역량이 중요하고 어떤 시대에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협력하고 공동으로 노력하는 역량이 중요해진다. 인공지능과 세계화의 시대에 다른 어떤 역량보다 ‘협력적 역량’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지난달 8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문화학자 엄기호씨와 만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내 아이를 최고로 만들기 위한 사투에만 학부모들이 계속 매달릴 경우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파국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문화학자 엄기호씨와 만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내 아이를 최고로 만들기 위한 사투에만 학부모들이 계속 매달릴 경우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파국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지구촌ㆍ알파고 시대에 필요한 건 협력 역량

“교육에는 두 가지 과정이 있다. 하나는 지적으로 성숙한 존재, 다른 하나는 사회적 인격을 갖는 존재로 성숙시키는 과정이다. 전자가 학력이고 후자가 인성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강조하는 미래 역량이란 미래의 학력과 인성으로 구성된다. 이 미래 역량은 미래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미래적 변화는 크게 지구촌으로 통합되는 세계화의 문제가 있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 시대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중요한 역량이 ‘협력’이다. 60년대 이후 추격 산업화 시대의 교육철학, 교육 마인드는 기본적으로 1등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었다. 일종의 일등주의 교육이다. 서양과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1등 인재, 한 명의 천재가 만 명,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관점이다. 이 일등주의 교육이 한계에 와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미래 사회는 고립된 천재를 중심으로 하는 홀로 독창성이 아니라 산재하는 다양한 역량들을 네트워크로 묶어내는 집단적 독창성이 필요하다. 집단적 지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협력하는 능력, 나아가 협력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이미 교육 현장에서는 오래 전부터 강조되어 왔다. 초ㆍ중ㆍ고에서는 수행평가에서 모둠 활동을 강조한다. 대학에서도 과거와는 달리 조별 활동과 발표를 권장한다. 그러나 이런 협력을 강조하는 학습이 협력적 인성이나 역량을 제대로 키워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들에게 이런 협력 학습의 효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더니 사람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느꼈다는 대답보다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무임승차라든가 한 사람이 ‘독박’을 뒤집어쓰는 것 같은 부작용이 더 많다는 것이다. 또한 협력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계적인 분업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결국 협력을 강조하고 협력적 과정을 도입한다고 협력적 역량이 배양되는 게 아니라 보다 더 정교한 교육학적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점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시교육청에서는 ‘협력 종합예술’ 과정을 도입하려고 한다. 곧 발표할 것이다. 서울의 중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이 학급 단위로 협력 종합예술을 집단적으로 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연극, 뮤지컬, 영화 등을 학급 단위로 공동으로 만들어 보게 하는 것이다. 모두가 어떻든 협력 종합예술 속에 협력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을 개발한 것이다. 이걸 준비하기 위해서 지원청별로 한 명의 예술 총감독을 들이려고 한다. 전문적 지도와 관련된 것은 문화예술계 외부 자원을 적극 활용하면서 동시에 국어나 음악, 미술 교과를 중심으로 학교의 교사들과 협력하게 하는 방안이다. 물론 기본적인 조명 시설과 같은 것은 교육청에서 기본적인 예산을 내려 보낸다. 서울시와 협력하여 권역별로 10개 정도 중간 수준의 전문적인 공연 연습장을 마련하려고 하며 곧 그 안을 발표할 것이다.”

공교육을 사교육이 압도하는 한국 사회

사회학자인 그가 ‘협력적 인성’을 고민하고 그것을 ‘종합 예술교육’으로 구현해보려고 하는 데는 한국 사회에 대한 위기의식이 겹쳐 있었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가 일종의 ‘공화주의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권위주의적 국민을 극복하고 민주적 시민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민주적 시민이 자기 이해를 민주주의적 프로세스 속에서 확장한다는 마인드로 흘러가버린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상호 존중과 협력적 소통 역량을 가진 ‘공공적 시민, 협력적 시민’이 필요하고 보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협력적 인성’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여기에 개인의 역량을 넘어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공공성에 대한 감각을 배양하는 곳이 공교육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공교육에서부터 공공성이 기묘하게 배제되어 있다. 교육에서 사교육이 지금 공교육보다 더 중요해져 있다. 공교육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간을 때우는 과정처럼 되어 있다. 이것이 교육에서 공공성이 배제된 첫 번째 과정이다. 두 번째로 국공립과 사립의 위상 문제다. 특히 고등학교 수준으로 가면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상위’ 개념이 된다. 고등학교의 위계를 보면 맨 위에 특목고와 자사고가 있다. 일반학교는 하위 학교처럼 되어 있다. 그러니까 공교육의 어떤 내적 붕괴가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공교육보다 사교육이고, 다른 한편에는 공교육 내에서도 사립학교가 더 상위학교가 되어 있다. 게다가 일부이긴 하지만 사립학교가 공공성을 잃어버리고 ‘비즈니스’가 되어 버린 곳도 있다. 이렇게 교육에서 공공성이 왜곡되어 있다 보니 공공성을 교육기관에서 체득하는 게 힘들다. ”

한국은 교육의 공공적 차원을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 반대로 교육을 사적인 과정이거나 혹은 집단주의적인 목표로 여긴다. 교육이 출세의 도구라고 여기는가 하면 한 편에서는 교육을 사적인 과정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중산층을 중심으로 교육에 모든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한다. 그 결과 부모가 양육을 하고 교사가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에게 양육을 요구하고 교육은 부모가 주도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게다가 교육은 시민이 아니라 ‘국민’을 키우는 집단주의적 목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협력적 공공성’이란 이런 위에서 아래로 복종과 충성을 강조하는 집단주의도 아니고, 모든 자원과 결과를 사적으로 점유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공동의 노력으로 공통의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공공성이며 교육은 이 감각과 역량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개인도 살고 사회도 살아있을 수 있다. 그는 서울시 교육청에서 미래 역량으로 추진하는 ‘협력적 인성’이 바로 이런 ‘민주적 시민성’에 기초한 것이지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지난달 8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조희연(사진 왼쪽) 서울시교육감이 문화학자 엄기호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지난달 8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조희연(사진 왼쪽) 서울시교육감이 문화학자 엄기호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 자치 활동 독려할 터”

“학교가 민주성에 기초한 공공적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과거 권위주의와는 다른, 민주적 공간으로서의 학교가 일단 정립돼야 한다. 그 선도에 혁신학교가 있고 혁신 교육이 있었다. 학교가 민주적 공간을 넘어 공공적 공간이어야 된다. 공공적 교육이 이뤄져야 되고. 그 다음에 관계성 자체가 훨씬 더 공공적이고 협력적인 것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하는 것이 ‘교복 입은 시민 프로젝트’다.

시민이란 말하자면 독자적인 의사 결정 참여 권한을 갖는 존재이며 권리의 주체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으로서 대우 받지 못하고 있는 두 집단이 있다. 군인과 학생이다. 그래서 군인을 군복 입은 시민으로 대우하고 학생을 교복 입은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 구체적인 예로 교육청 단위에서 학생 대표들에게 정책 제안과 예산 심의 권한을 부여해서 학생 의회로서 기능하게 하도록 하려고 한다. 학교 단위에서는 학교의 주체로서 학생 자치 활동을 통해서 학교의 의사 결정, 학교 혁신에 동참하기도 하고 학교의 주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려 한다.

서울시 교육청에 학생참여위원회라는 자문기구가 있는데. 그것을 학생 대표자 회의로 전환하려고 한다. 대표성을 갖는 기구로 전환하는 것이다. 거기서 작지만 학생 직접 예산 5억원 정도를 스스로가 결정하도록 할 생각이다. 학생 자치 활성화를 통해 교복 입은 시민을 함양해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공공성을 가지고 협력적으로 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연구한 사회학자다운 관심이었다. 물론 그도 이런 과정에서 어떤 논란과 난관에 부딪치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은 거대도시이며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욕망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곳이다. 학부모의 이해관계도 다양하며 상호 충돌한다.

그는 단적인 예로 중학교 배정을 둘러싼 갈등을 들었다. 자기 자녀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배제적 접근’이 극심한 곳이 바로 교육이라는 것이다. 교사들도 민원에 시달리면서 냉소적으로 바뀌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학부모를 비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배제적 방식’으로 가면 공도동망한다는 것이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파국적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교육을 다양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트랙이 만들어지고, 패자부활전이 가능해야 하며 입시에서 승리한 것이 평생을 관통하는 특권적 혜택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 모든 공립학교가 갈만한 곳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문화학자

▦조희연 교육감은

1956년 전북 정읍 출생. 전주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상경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부 4학년 때인 78년 유신헌법 및 긴급조치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죄로 복역했지만, 2013년 서울고법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민사회복지대학원장과 민주주의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박원순 현 서울시장(당시 변호사) 등과 함께 94년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했고 정책위원장, 사무처장,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4년 제20대 서울시교육감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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