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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귀띔해준 지하철 성추행, 항소심서 무죄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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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귀띔해준 지하철 성추행, 항소심서 무죄된 까닭은

입력
2018.08.08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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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 “피해자 진술에 영향 가능성 

 제출 동영상 고의성 입증 안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대 남성 A씨는 퇴근시간 무렵 서울의 지하철 9호선에 탑승했다 성추행 혐의로 경찰서에 연행됐다. 단속 중이던 지하철수사대 소속 경찰관은 현장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증거로 제시했다. A씨가 승객이 많은 틈을 타 10대 여성인 피해자 B씨 뒤에 바짝 붙어 팔을 어깨 부위에 댄 후 8분간 B씨 허리에 성기를 밀착시켰다는 것이다. B씨 역시 “A씨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몸을 밀착시키는 느낌을 받아 당황스러웠으며 수치심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전동차 안에서의 신체 접촉은 ‘만원 지하철’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로 추행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검찰 측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부(부장 이수영)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고의로 피해자 몸에 밀착하는 등의 신체 접촉을 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 보기 어렵다”라며 원심을 파기하고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피해자 B씨 진술의 증거능력이 떨어진다고 봤다. B씨가 자발적으로 추행 사실을 신고한 게 아니라 지하철에 내린 후 피해자를 따라온 경찰관으로부터 ‘당신이 성범죄 표적이 됐다’는 설명을 들은 후 진술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한 데에는 경찰관 설명이나 평가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이 촬영한 4분 가량의 동영상에도 혐의를 입증할 내용이 없다고 봤다. 쟁점이 된 부분은 환승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차한 후 A씨가 취한 행동이었다. B씨는 “사람들이 하차해 공간이 생겼는데도 A씨가 계속 밀착해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동영상을 본 재판부는 “일부가 하차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공간이 생겼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곧바로 많은 사람이 탑승해 지하철 안이 다시 붐비는 상황이 됐다”고 판단했다. 일부 사람이 빠져나가는 사이 A씨가 자리를 옮기거나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추행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A씨는 줄곧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B씨 역시 A씨를 의식하는 듯한 태도나 몸을 다소라도 움직여 피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확신을 갖게 하는 증거가 없다면 유죄 의심이 들어도 피고인(A씨) 이익으로 판단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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