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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 사전] 미국

입력
2016.02.1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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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미국 상원은 ‘북한 제재 강화 법’을 96:0이라는 표결로 통과시켰다. 민주당 대선 후보 중의 한 명인 샌더스 상원의원은 표결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 일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굴욕적이고도 졸속적인 합의, 북한의 핵 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개성 공단 폐쇄, 한국의 사드 배치 논란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대체 어느 나라가 의도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촉발하고 있는가 또 결국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는가에 관해서 쉽게 통찰할 수 있게 해주는 실마리가 된다.

잘 알다시피, 미국을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콜럼버스다. 하지만 그 미지의 대륙은 이탈리아 사람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16세기 초 독일의 지도 제작자인 발트제뮐러는 ‘우주지 입문’이라는 책에서 아메리고의 이름을 Americus라고 라틴어로 표기하면서 그렇게 명명했다. 그 말을 여성 명사 형태로 만든 게 바로 아메리카인 것이다. 이탈리아 말에서 남성 명사는 o로 끝나고 여성명사는 a로 끝난다. 대륙 이름에 여성 명사를 쓴다는 게 이채롭기는 하지만, 유럽이란 말도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페니키아 공주 이름에서 따왔다는 걸 알고 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서세동점의 시기에 미국의 이름은 동아시아에서 한자어로 음역되었는데 청나라 초기에는 미리견(?唎堅)이라고 했다. ?의 뜻은 양의 울음 소리고, 唎는 가늘고 작은 소리다. ‘견’에 해당하는 경우는 좀 복잡한데, 원래는 굳을 견(堅) 자 왼쪽에 입구 변이 붙어 있는 글자였다.

서세동점 초기에 중국은 미국을 미이(?夷), 즉 ‘미국 오랑캐’라고 불렀다. 오랑캐에 대한 국가 정책과 업무인 이무(夷務)가 양무(洋務)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은 19세기 후반 무렵이었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에 중국이 미국과 맺은 조약들에서 미국은 ‘미리견합중국(美利堅合衆國)’이라고 표기되었다. 합중국은 united states의 번역어인데 제대로 번역한다면 합주국(合州國)이 되었어야 했다.

양 울음 소리가 아름다울 미(美)로 바뀐 것은 전적으로 중국에 와 있던 미국 선교사 브리지먼(Bridgman) 덕분이다. 그는 18세기 중반 중국어로 미국을 소개한 책 ‘대미연방지략(大美聯邦志略)’에서 아름다울 미 자를 썼다. 또 그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맺어진 조약들의 문서 작성에도 관여하면서 아메리카의 ‘메’를 美로 표기했다. 선교사는 본디 제국주의의 척후병이라는 걸 잘 알려준다.

일본의 경우, 에도 막부 중기의 정치가 시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저서 ‘서양기문’(1709)에 아묵리가(亞墨利加)라는 음역 표현이 있다. 19세기 중반의 책 ‘곤여도식’에는 “아묵리가는 아메리고(亞墨利屈)의 이름을 본따서 만들어졌다”고 설명되어 있다. 일본이 1854년에 미국과 맺은 불평등조약인 카나가와 조약에는 미국이 ‘미리견(米利堅)합중국’으로 표기되어 있다.

미국은 유럽 백인들이 인디언들의 땅에 와서 수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나서 세운 나라다. 또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다 썼다. 미국은 건국 이래 계속된 전쟁들로 커 온 나라이며, 미국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할 때 다른 나라들로부터 전혀 ‘제재’를 받지 않았다.

미국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해서 민간인 수 만 명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 최근에 벌인 큰 전쟁인 이라크 전쟁에서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했지만 그 무기의 존재를 결코 입증해낼 수 없었다. 다만, IS라는 괴물을 만들어냈을 뿐.

사드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무기다. 미국이란 나라가 군산복합체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고 폭로한 이는 육군 원수 출신 대통령 아이젠하워다. 6ㆍ25 때 중국 땅에 핵무기를 쓰려고 했던 것도 미국이며 1960년대에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했을 때 핵 전쟁 불사를 외친 쪽도 미국이다.

그러니, 더티한 무기인 사드가 배치되고 나서 중국이 곧바로 남한의 사드 기지를 공격한다 하더라도 영구 전쟁국가 미국은 반발할 명분이 없다. 지금 도리어 양 울음 소리를 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단지 하루 빨리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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