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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북한의 도널드 트럼프

입력
2016.06.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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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대를 모았던 북한의 7차 노동당 대회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행사였다. 35여년 만에 처음 열린 북한 최고 조직의 행사가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미쳤다면, 걸핏하면 화를 내는 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경제 개혁에 관심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북한의 혼란한 경제에 관한 논의를 피하던 시절 김정은은 북한의 자긍심이 핵개발에 있다는 걸 지나칠 정도로 자주 말했다. 과거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북한 정부는 신기술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선언하길 바라는 듯 새로운 연구를 최근에도 계속 진행 중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대부분의 나라는 자유시장 체제를 택했다. 하지만 북한은 고립을 유지해왔다. 종교집단 같은 북한 정권은 과도한 민족주의적 세계관을 조장해왔다. 이런 세계관에 따라 북한은 국제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나라와 체계적인 협력을 하게 되면 자국의 통치권이 위협받을 거라 생각했다. 최근 당 대회에서 분명히 했듯 이런 상황이 금세 바뀌진 않을 것이다.

세계는 최근 민족주의, 자급경제주의, 권위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추세에서 선두주자처럼 보인다. 세계적 추세에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와 다른 민간기관들이 판단하듯 세계적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보이지 않았던 독재 정권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쟁지역부터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민주주의 국가까지 사실상 모든 곳에서 민족주의 세력이 등장하고 있다. 지구상에 또 다른 북한이 나타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민족주의와 반자유주의가 점점 가속화돼 문제가 된다는 건 전혀 과장이 아니다.

구조적 문제가 없는 나라는 없다. 특히 중앙 정부가 과중한 부담을 지거나, 자원이 고갈됐거나, 부패하기 쉽다면 더욱 그렇다. 소수 집단마다 선호하는 것이 다르고 지역들은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지방 단체들은 나름의 권한을 갖고 있다. 중앙정부가 이런 것들과 균형을 맞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수년간 이러한 내부의 불균형과 충돌을 완화시키려는 해결책들이 등장했다. 한 가지 해결책은 유럽연합(EU)처럼 더 광범위한 조직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칸 지역의 갈등은 EU 회원 자격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해결됐다. 공동의 이익을 인지하고 발전시키도록 국가들을 도와주는 다른 초국가적인 조직과 동맹들도 유사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불행히도 그러한 모델은 예전 같지 않다. 오늘날 여론조사에 따르면 초국가 단체는 점점 호소력을 잃어가고 있다. 두드러진 예로는 이달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을지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있을 것이다. EU에 회의적인 정당들이 유럽 전역에서 생겨나고 있으며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그런 정당이 정부와 연립하기도 한다.

반면 터키처럼 유럽 통합에서 빠진 국가들은 EU 가입 기회를 놓친 걸 다행으로 여기는 것 같다. 외부의 이해관계나 책임감 때문에 제약이 생기는 일도 없으니 자국의 나아갈(또는 뒤로 돌아갈) 방향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동 지역 사안에 관여하려 드는 터키는 탄탄한 민족국가라기보다 교훈을 얻으려 하지도 않고 잊어버리는 것도 적은, 건방진 지역 강국처럼 보인다.

계속되는 중동의 혼란은 당연히 터키뿐만 아니라 세계가 직면한 주요 문제들 중 하나다. 아랍의 봄이 민주주의와 참여적 통치의 새 시대를 아랍 세계에서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자칭 ‘이슬람 국가’처럼 퇴행적 세력이 그 지역에 원시적인 형태의 부족적, 종파적 충성을 강요하게 될 거라곤 결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군대가 의지를 밀어붙일 수 있는 유일한 단체로 떠오르면서 비종교적인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온 국가들조차 익숙한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이집트는 아랍의 봄 혁명 후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듯했으나 전형적으로 이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민주주의가 약해지면 또 다른 혼란이 따른다. 경쟁하기보다 협력을 했다면 훨씬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국가들이 서로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 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통치하는 러시아는 주요 수정주의 국가가 됐고 소련 해체의 조건이나 심지어 소련 국력이 한창일 때 내렸던 결정(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로 합병한 것)마저 무력으로 변경하려 하고 있다.

중국 역시 일방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에서 그렇다. 이는 중국의 번영을 점점 더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동남아시아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이들 중 여러 국가와 협정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도 곤란하게 하고 있다.

미국도 나름의 문제가 있다. 대선 후보 예비 선거, 특히 사실상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도널드 트럼프의 상승세를 보면 어수선한 시기에 세상을 이끄는 데 기여해야 할 미국의 능력에 회의가 든다.

트럼프의 선거운동은 호전적 민족주의와 반이민 공약이 특징이다. 트럼프는 이민자들의 유입을 막는 거대한 장벽을 세우겠다고 하고 모든 무슬림들이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말한다. 우방 국가에게나 적대적 국가에게나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관계를 비난하는 무모함도 트럼프의 특징이다. 그가 선거에서 성공할 수도 있다. 사실 그를 추종하는 이들은 꽤 많은 데다 적의에 차 있기까지 하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내부의 정치적 압박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동시에 이를 더욱 강화시킨다. 또 오늘날 세계 질서가 얼마나 취약한지도 정확히 알려준다.

요란하고 무모한 스타일을 지닌 트럼프는 꾸준한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오늘날 세계가 필요로 하는 지식, 지혜, 기질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한 의미에서 트럼프는 풋내기 지도자 김정은과 많이 닮아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북한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국가를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조세프 코벨 국제대 학장ㆍ국무부 전 차관보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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