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공공기관 꼼수 고용…프로젝트 계약직의 눈물

알림

공공기관 꼼수 고용…프로젝트 계약직의 눈물

입력
2017.02.06 20:00
0 0

ITㆍ연구 등 특정사업 위해 채용

일은 정규직처럼 부려먹고

사업 종료 전에도 해고 다반사

기간제법 예외 신분이라

2년 넘어도 무기계약 전환 안돼

인건비 아닌 사업비 예산 분류

정부 평가 잘 받으려 악용 잦아

공학 분야 대학원을 졸업한 20대 A씨는 ‘정보기술(IT) 시스템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 계약직을 뽑는다’는 공공기관 채용공고를 보고 전공을 살리려 지원했다. 그러나 A씨는 입사 후 IT 업무 외에도 다른 사원들이 담당하는 행정지원 업무까지 맡았다. 밤샘 업무에 시달리는데 월급은 200만원이 안 됐다. 더구나 원래 프로젝트 종료까지 보장돼야 할 근로계약을 매년 갱신해야 한다는 얘기에 분통이 터졌다. A씨는 “일은 똑같이 하면서 해고는 언제든 당할 수 있고 평생 정규직이 될 수 없는 게 프로젝트 계약직의 신세”라고 푸념했다. 그는 회사관계자가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해고되는 기간제 계약직보다는 행복한 줄 알라”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한 국책연구소의 20년짜리 연구 프로젝트에 지원해 5년 넘게 근무한 박사 B씨는 지난해 초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당초 프로젝트가 완료될 때까지 일하는 것으로 계약을 맺었건만 연구소는 “프로젝트 중 1단계 사업 기간이 끝났으니 나가라”는 식이었다. B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한 끝에 남은 사업을 몇 년 더 수행하는 조건으로 복직에 성공했다. “내용이 동일한 사업을 중도에 임의로 기간을 설정하며 해고해선 안 된다”는 게 지방노동위원회 설명이다. B씨는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고용이 보장된다는 말을 믿고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고생을 겪은 게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공공기관 ‘프로젝트 계약직’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상시 업무와 달리 기간과 분야(IT 구축, 연구 등)가 특정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이들은 2년 이상 일해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 않는(기간제법 4조 예외조항) 대신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은 고용이 보장된다. 그런데 최근 공공기관들이 프로젝트 계약직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박지나 노무사는 “공공기관 등에서 프로젝트 계약직을 뽑아놓고 상시적인 업무를 시키거나 1년씩 계약을 갱신하다 중도에 해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요즘엔 프로젝트 계약직을 모집한다면서 ‘1년 단위로 평가해 재계약 여부를 묻겠다’는 규정을 넣는 곳들이 생기고 있다.

상시 업무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곳도 있다. 기타 공공기관인 정동극장은 지난해 말 일부 프로젝트 계약직원을 해고했다. 공연예술가 C씨는 “8년 넘게 1년 단위로 갱신해오던 계약이 갑자기 만료돼 실업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극장 측은 “작품을 올릴 때마다 오디션을 통해 출연진을 (프로젝트 계약직으로) 뽑아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C씨의 경우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공연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문화를 살린 공연을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상연하는 정동극장이 특정 공연을 프로젝트라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들이 정해진 예산과 정원 내에서 인력을 더 부릴 목적으로 프로젝트 계약직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건비를 늘리면 정부가 방만경영이라고 압박하는 상황이라, 공공기관은 비용 처리가 사업비로 분류되는 프로젝트에서 인력을 뽑아 인건비를 충당하는 꼼수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프로젝트 계약직은 ‘예외’라는 단서 탓에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비정규직종합대책을 실시해왔으나 예외 대상인 프로젝트 계약직 등이 80%를 넘어 실질적인 개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상시 업무를 하는 이들이 많은데도 정규직 전환 대상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공공기관 전체 비정규직 비율은 2013년 11.38%에서 2015년 10.13%로 1.25%포인트 감소하는데 그쳤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사실상 상시 업무를 하는 프로젝트 계약직들이야말로 정규직 전환의 1차 대상이 돼야 한다”라며 “우선 정확한 고용 실태를 조사한 뒤 쉬운 해고부터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