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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틈’을 제대로 이용하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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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틈’을 제대로 이용하는 동물들

입력
2017.07.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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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염소들이 운동장을 함께 쓰는 다른 큰 동물들과 어울리고 있다.
새끼 염소들이 운동장을 함께 쓰는 다른 큰 동물들과 어울리고 있다.

염소가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3일 만에 죽고 말았다. 그 죽은 녀석은 태어난 직후부터 다른 녀석과는 완전히 달랐다. 어미에게 찾아가 젖을 빨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어미가 적극적으로 챙겨주지도 않았다. ‘선택과 집중’이란 말을 살아있는 동물에게 대입하긴 뭐하지만 아무튼 어미는 그 쪽을 택했다.

남은 새끼 한 마리는 적극적으로 어미를 따라다녔고 운동장을 함께 쓰는 다른 큰 동물들을 잘도 피해 다녔다. 이 새끼염소의 행동을 보며 이따금 놀랄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아침 회진을 도는데, 그 새끼 염소가 낮은 문턱 위에 올라앉아서 느긋이 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야말로 안성맞춤 명당자리라 할 수 있었다. 그 시간에 유일하게 그늘이 져 있고, 새끼 염소가 아니면 올라 앉을 수도 없는 좁다란 곳이어서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곳이었다. 둘 중 하나만 충족되어도 충분히 좋은 장소라 할 수 있는 데 그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니 새끼 염소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을 찾아낸 것이었다.

녀석이 어떻게 하고 있는 지 자꾸 궁금해 오후에 다시 가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아침에 있었던 곳에 새끼 염소가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이 또 어디 갔나?’ 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더니 바로 문 틈새를 이용해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아침에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았는데, 새끼 염소는 앉아 쉬는 곳까지 햇빛이 들자 아예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감탄사가 절로 튀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지만 모름지기 동물원 수의사인 나로서는 동물 한 마리라도 자기 삶에 충실해 보일 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틈을 이용할 줄 아는 동물들은 종을 망라하고 상당히 많다. 물새장 안에 흰 비둘기 무리가 사는 데 어느 날 그물이 찢어져 작은 틈이 생겼다. 날 줄은 알아도 귀소본능이 강한 비둘기들은 좀처럼 도망가지 않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그 곳으로 조심스레 빠져 나오는 걸 우연히 옥상에서 보게 되었다. 그 비둘기는 한 이틀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찢어진 그물 위에서 며칠을 홀로 앉아있었다. ‘자유와 본능’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역력해 보였다. 그러다 다시 집 안으로 돌아왔다.

흰비둘기가 '다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듯 창문 밖으로 나와있다.
흰비둘기가 '다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듯 창문 밖으로 나와있다.

원숭이 새끼 한 마리도 자꾸 철창 밖으로 손발을 내미는 장난을 하는가 싶더니 결국 그 틈으로 몸까지 빠져 나오고 말았다. 처음에는 주변만 맴돌다 사람이 다가가면 화들짝 놀라 철창 안으로 내빼던 것이 이젠 아예 뻔뻔스럽게 관람객들과 장난도 칠 줄 안다. 다른 원숭이 새끼들도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리생활이 강한 원숭이 집단에서 집단의 금기에 따라 본능적으로 안 나오는 것이다. 그런 터부를 이 녀석은 과감히 극복해냈다.

하지만 그 보상은 엄청났다. 무한한 자유는 물론 주변의 모든 과자 부스러기를 독차지 했고, 그뿐만 아니라 지루한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스타가 되었다. 동물원의 동물은 아니지만 우리 사무실 처마 밑의 참새들도 옥상 지붕의 기왓장 틈새를 교묘히 이용해 몇 백 마리가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다. 때론 그 틈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도 벌이고 땅으로 낙하하는 전사자까지 나온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 한 마리가 과감하게 철창 틈새로 나왔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 한 마리가 과감하게 철창 틈새로 나왔다.

틈을 이용하는 동물들의 특성은 생명과도 연결 된다. 쥐나 바퀴벌레는 틈을 이용하는 특성 때문에 그 틈새에 퇴치약을 제대로 놓으면 그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 너구리나 오소리 같은 야생동물들은 항상 다니는 길(오솔길, 오소리가 다니는 길)이나 틈새를 이용하기 때문에 그 길목에 놓인 덫에 잡힌다.

비단 이런 공간적인 틈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이 가진 틈이 많아질수록 삶의 희열과 여유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글·사진=최종욱 수의사(광주우치동물원 진료팀장,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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