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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태어난 날도 ‘굿모닝 에브리원’ 인사하며 방송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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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태어난 날도 ‘굿모닝 에브리원’ 인사하며 방송했죠”

입력
2018.03.09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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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라디오 프로 ‘굿모닝 팝스’

초대 DJ 곽영일 세종사이버대 교수

“영화ㆍ팝송으로 영어 공부 파격적”

30주년 맞아 ‘굿이브닝 팝스’ 행사

지난 1월 두 차례 ‘굿 이브닝 팝스’ 특강을 열었던 곽영일 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는 “노승영번역가부터 책방 주변 가게 주인까지 각계각층의 동네주민이 다 오더라. 어설프게 가르치면 안 되는 자리라서 저 자신에게 도전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두 차례 ‘굿 이브닝 팝스’ 특강을 열었던 곽영일 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는 “노승영번역가부터 책방 주변 가게 주인까지 각계각층의 동네주민이 다 오더라. 어설프게 가르치면 안 되는 자리라서 저 자신에게 도전이 된다”고 말했다.

“굿모닝 에브리원.”

매일 아침 6시, 라디오 DJ의 인사는 1988년 이후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영화와 팝송을 통해 영어를 배운다’는, 당시로서는 신개념의 콘셉트로 청취자를 사로잡은 KBS 해피 FM ‘굿모닝 팝스’ 얘기다. 1대 DJ 곽영일(1988~1990)을 시작으로 오성식(1990~2000), 이지영(2000~2007), 이근철(2007~2017), 레이나(2017~현재)까지 프로그램 진행자가 5명에 불과하다. 지난달 19일 방송 30주년을 맞았다.

“어떻게 그날을 잊겠어요, 외동딸 태어난 날인데.” 7일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만난 곽영일(61) 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는 “첫 방송했던 날 태어난 딸이 지난달 결혼했다. ‘굿모닝 팝스’ 진행할 때가 생각나면서 만감이 교차하더라”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생방송으로 진행했거든요. 19일 새벽 아내는 병원으로, 저는 방송국으로 갔는데 프로그램 끝나고 가니 벌써 딸이 태어났더라고요.”

사실 곽 교수가 방송을 시작한 건 ‘굿모닝 팝스’를 통해서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잘 나가던 영어학원 강사였던 그의 수업을 방송국 PD가 들었고 1985년 MBC라디오 ‘생활영어’ 패널로 섭외해 3분씩 영어표현을 소개했다. 2015년 작고한 김광한 DJ가 ‘영어 과외’를 의뢰했고, 곽 교수는 김 DJ를 가르치며 한 일간지에 함께 팝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KBS에 1987년 가을 매주 일요일 한 시간씩 팝송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생겼어요. 일종의 테스트였는데 그 프로그램 DJ를 맡고 나서 이듬해 봄 ‘굿모닝 팝스’를 선보였죠.”

팝송 가사를 해석하고 영화 한 편을 정해서 한 달 동안 해설하는 “학원에서 했던” 포맷을 ‘굿모닝 팝스’에 적용시켰다. 곽 교수는 “교재가 따로 없어 제가 직접 스크립트를 썼는데 우표를 보내 주면 스크립트를 보내 줬다. 스크립트 달라는 요청이 한 달에 3,000통쯤 와서 아르바이트 학생까지 고용해서 부쳤다”고 말했다. 그렇게 3년을 이어가다 “라이벌이자 동료인” 오성식 강사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같은 방송사의 ‘달리는 FM’ DJ를 본 게 1990년이다. 이후에도 2004년까지 3개 방송국을 다니며 라디오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했다. 곽 교수는 “2004년 한 번 쉬었는데, 이후 개편 때부터 방송사에서 연락이 없어 좀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방송 쉬는 김에” 대학원에 진학해 이론 공부를 시작했다. 영화와 팝송을 통해 같은 뜻이라도 “세련되고 우아하고 깊이 있는” 영어 존칭법을 소개했던 그의 박사 논문 제목은 ‘영화대사의 화행(話行) 분석과 활용방안 연구’. ‘화행’은 듣는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이끌어 내는 언어 행위를 말한다. 논문은 “공손한 영어의 이론적 근거”를 밝히고, 한국인이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표현법을 알려 준다. “제가 영어를 이렇게 배웠어요. 그때는(방송할 때는) 몰랐죠. 인기 얻고 나서 제가 가르치는 영어 표현의 이론, 그 뿌리를 고민하다 대학원에서 ‘화행’이란 개념을 알았어요.”

2015년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세종사이버대와 단국대에서 겸임교수를 하면서 6년째 KBS한민족 FM ‘팝스프리덤’ DJ를 맡고 있다. “지금도 한번씩 특강 하면 그때 방송 들으며 영어 공부했다고 반가워하세요. 방송 듣고 자란 40~50대가 사이버대 학생으로 제 강의를 다시 들을 때도 있고요. 한번은 미국에서 세탁소 하는 교포가 제 강의 때 알게 된 표현을 써서 고객한테 케이크 선물 받았다고 연락하셨더라고요. 미국에서도 오랜만에 듣는 고급 표현이라고.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

곽 교수는 ‘굿모닝 팝스’ 30주년을 기념해 ‘셀프 이벤트’를 선보인다. 그가 사는 경기 고양시 일산의 동네서점 ‘책방이듬’에서 9일 저녁 특강 ‘굿 이브닝 팝스’를 연다. 동네주민 30여명을 대상으로 ‘팝송에 나타난 표절현상’을 소개하고 관련 질문도 받는다. 곽 교수가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 전문가에게도 낯선 ‘화행’ 개념을 알고 있던 “책방 김 사장(김이듬 시인)”이 반가워 강연을 먼저 제안했다.

참가비는 다과를 포함해 5,000원. 시인이 출연하는 이 책방 낭독회 참가비의 절반 가격이다. 곽 교수는 “제 돈 더 쓰며 맛있는 음식 대접할 계획이다. 저를 기억해 주는 팬들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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