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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피디아] 공연의 ‘현장성’을 극대화... 예측 어려워 더 감동

입력
2017.03.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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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소통하며 연주

‘바흐풍’ ‘쇼팽풍’ 연주하거나

관객이 단초가 될 멜로디 제시

악보 없어 딱히 연습방법도 없어

*무용ㆍ뮤지컬도 즉흥공연

무용은 상대 동작에 반응이 중요

뮤지컬, 내달 14일 국내 첫 공연

관객이 주인공 등 현장에서 선택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연 오르간 연주자 웨인 마샬은 '아리랑', '고향의 봄'을 주제로 12분 동안 즉흥연주를 선보였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연 오르간 연주자 웨인 마샬은 '아리랑', '고향의 봄'을 주제로 12분 동안 즉흥연주를 선보였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5,000여개의 파이프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압도적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연 오르간 연주자 웨인 마샬은 한국 첫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아리랑’과 ‘고향의 봄’ 멜로디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12분 간 파이프오르간 즉흥연주를 펼쳤다. 파이프오르간은 파이프로 들어가는 바람의 입구를 여닫는 장치인 ‘스탑’을 통해 관악기와 현악기 등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마샬이 연주한 롯데콘서트홀 오르간은 68개 스탑을 가졌다. 특정 멜로디를 변주하는 것을 넘어 스탑을 통한 음색 조정이 가능해 즉흥연주는 파이프오르간 연주자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 중 하나로 여겨진다. 롯데콘서트홀 관계자는 “마샬은 ‘아리랑’과 ‘고향의 봄’의 주 멜로디를 한 번 연주해 본 것이 연습의 전부였다”고 전했다.

무대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성이다. 공연의 내용이 같을지라도 그날의 공연은 딱 한 번뿐이다. 즉흥공연은 공연의, 이러한 일회성을 극대화한다.

지난해 롯데콘서트홀에서 파이프오르간 독주회를 연 장 기유의 연습용 메모. 악보도 없이 파이프오르간의 스탑 메모만 적은 쪽지 하나를 두고 즉흥연주를 준비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지난해 롯데콘서트홀에서 파이프오르간 독주회를 연 장 기유의 연습용 메모. 악보도 없이 파이프오르간의 스탑 메모만 적은 쪽지 하나를 두고 즉흥연주를 준비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연주자 개성 살리고, 관객과 소통하는 즉흥연주

즉흥연주 하면 재즈를 떠올리기 쉽지만 클래식 음악사에서도 즉흥연주를 빼놓을 수 없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등 유명 작곡가들은 당대 뛰어난 즉흥 연주가로도 이름을 드높였다. 바로크 시대에는 악보에 표기된 반복적인 왼손 저음부 위에, 즉흥으로 오른손 파트의 화음을 만들면서 연주하는 ‘바소 콘티누오’ 양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즉흥연주는 작곡가와 연주자의 역할이 분리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부터 점차 사라졌다.

정해진 악보가 있는 클래식에서 즉흥연주가 들어설 여지는 매우 좁지만 최근 젊은 연주자들이 즉흥연주를 다시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달 30일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박종해(27)는 연주회의 2부를 온전히 즉흥연주로 꾸민다. 그는 “예전에 조지 거슈인은 ‘서머 타임’을 관객 요청에 따라 ‘바흐풍’이나 ‘쇼팽풍’으로 연주한 적은 있지만 정식 연주회에서 즉흥곡을 선보이는 건 처음”이라며 “기본적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 연주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히 구상된 건 없다.”

예측이 어려운 즉흥연주의 매력은 관객들과의 소통에 있다. 다음달 21일엔 즉흥연주로 세계에서 자신만의 차별화한 색깔을 선보이고 있는 가브리엘라 몬테로(47)가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연다. 1995년 쇼팽국제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할 만큼 클래식 음악의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몬테로는 즉흥연주에도 능수능란하다. 그의 즉흥연주는 관객들이 그 자리에서 불러주는 멜로디로 만들어지는데 영화 ‘해리포터’ 주제곡이나 각국 민요, 휴대폰 벨소리마저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 탈바꿈한다. 몬테로는 “관객들은 사소한 멜로디가 거대한 작품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한 적이 없다. 그래서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놀라움의 웃음을 들으면 나도 같이 미소 짓게 된다”고 즉흥연주의 매력을 설명했다.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기교와 적재적소에 화음을 배열하는 연주력은 기본이지만 즉흥연주는 딱히 ‘정해진’ 연습 방법이 없다. 박종해 역시 “즉흥연주는 악보가 없기 때문에 사실 연습을 할 수가 없다”며 “그저 기존 작품들을 연습하다 갑자기 떠오르는 악상이 있으면 그 영감으로 즉흥연주를 해 본다”고 말했다.

내달 21일 첫 내한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가 한 공연에서 관객에게 신청곡을 받은 뒤 즉흥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유투브 영상 캡쳐
내달 21일 첫 내한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가 한 공연에서 관객에게 신청곡을 받은 뒤 즉흥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유투브 영상 캡쳐

단 한 번뿐인 공연의 현장성 강조

즉흥무용은 무용수의 더 깊은 내면에서부터 동작을 꺼내는 방법이다. 안무가 있는 무용만큼이나 자주 공연되는 작품 형식이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덕기(40) 수석은 17일 즉흥을 주제로 한 ‘기시적 충돌’ 무대를 꾸몄다. 그는 “안무가 정해진 춤은 안무가가 자신의 동작과 리듬을 무용수에게 전달하는 것인 반면 즉흥 춤은 안무가와 무용수가 함께 에너지를 뽑아낸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즉흥무용은 어느 정도 사전 연습이 필요하다. 음악에 따른 춤의 템포가 정해져 있고, 공연의 전체 구성은 미리 짜인 채로 무대에 올린다. 안 수석은 “어떤 감정을 갖고 춤을 출 것인지, 어떤 움직임이 에너지가 더 좋은지 무용수들끼리도 맞춰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연 당일 처음 만나 정해진 주제 없이 서로의 움직임을 보며 춤을 이어가는 형식의 즉흥무용도 있다. 이를 위해선 상대방의 동작에 반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내달 18~23일 서울아르코예술극장 등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이런 즉흥무용과 마주할 수 있는 자리다.

일회성이라는 무대공연의 특징을 극대화한 즉흥뮤지컬도 내달 14일부터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오른다. 배우들은 훈련방법의 하나로 즉흥연기를 즐겨 하지만 상업극 형태로 즉흥극을 올리는 건 흔치 않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이라는 공연 제목처럼 매일 ‘처음’ 만들어지는 뮤지컬이 무대에 오른다. 완결된 희곡 없이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는 연습실’이라는 상황만 존재한다. 매회 100여명의 관객이 주인공, 상황, 장면을 선택한다. 음악은 정해져 있지만 현장 상황에 따라 그 자리에서 가사를 바로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 연출을 맡은 김태형 연출가는 “매 공연 주인공이 바뀌고, 주인공이 부르는 첫 솔로도 달라져 배우마다 여러 곡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며 “준비한대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우리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연출가가 무대에서 직접 ‘연출 역할’을 맡아 뮤지컬 문법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고 정리한다. 다만 이 역할은 ‘최후의 안전장치’일 뿐이다. 김 연출가는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며 “관객의 한마디로 공연이 제작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건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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