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변경 금지는 자기결정권 침해"
2017년 말까지 법 조항 개정해야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현행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2017년 12월 31일까지 주민등록법 관련 조항을 개정토록 시한을 정했다. 정부와 국회도 변경 필요에 대해 공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변경 요건을 두고 큰 입장 차를 보여 입법까지 난항도 예상된다.
헌재는 23일 강모씨 등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주민등록법 제7조에 대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주민등록법 7조는 시장ㆍ군수 또는 구청장이 주민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해야 하고 그 방법은 대통령령이 정한다고만 돼 있을 뿐 변경과 관련한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법의 공백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법 개정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포털사이트나 온라인 장터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피해자인 강씨 등은 2011년 11월 서울 성북구청장 등에게 주민등록번호 변경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하자 법원에 소송을 내고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 또한 각각 기각ㆍ각하 판결을 받자 2013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주민등록번호가 불법 유출 또는 오ㆍ남용 되는 경우 개인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생명?신체?재산까지 침해될 소지가 크고, 실제 유출된 주민등록번호가 범죄에 악용되는 등 해악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등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일률적으로 허용하지 않은 것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일정한 요건을 구비한 경우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기관의 심사를 거쳐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면, 주민번호 변경절차를 악용하는 경우를 차단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을 것”이라며, 주민등록법 개정을 주문했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주민등록법 변경 허용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지난 해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등 대형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잇따르면서 피해자들의 주민등록번호 변경 허용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경 허용 범위를 놓고 정부와 국회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안은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생명ㆍ신체에 위해 및 재산상 중대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신분 노출에 따라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는 성폭력 범죄 피해자 등에 한해서만 변경을 신청할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관할 지자체에 신설된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에서 과반수 찬성이 있을 때 변경하도록 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번호변경을 요구할 경우 사회적 혼란과 상당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행정자치부는 이번 결정에 대해서도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행정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 우려된다”는 반응을 했다.
반면 19대 국회에 제출된 의원입법 발의안은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모두 변경(이상규 전 의원),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된 경우 변경(민병두 의원) 등 정부안에 비해 변경 가능 대상자의 폭이 훨씬 넓다. 해당 법안들은 대부분 지난해 2~8월에 발의됐지만 정부와 국회가 큰 의견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지난 달 처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 상정됐을 뿐 본격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 동안은 주민번호 견경은 행정기관의 착오 또는 가족관계등록부 변경에 한해서만 가능했다. 예외적으로 하나원 출신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신변 보호 차원에서 주민번호 변경이 허용됐다. 또 지난 2012년에는 일부 세종시 출생 여자아이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4444’로 시작되자 “죽을 사(死)자를 연상시킨다”는 부모의 항의에 따라 변경 요청 민원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주민등록번호 뒷 7자리가 성별(2000년 이후 출생 남자 3ㆍ여자4)과 세종시의 지역번호(44) 등이 조합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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