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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대통령이 그림책을 읽어 준다면

입력
2017.08.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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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기 둥글고 길쭉하고 크고 작고 굽었고 배 불룩하고 험상궂은 고구마들. 티격태격하면서도 신나는 잔치를 함께 벌이는 고구마들이 딱 우리 아이들 같다. 반달 제공
제각기 둥글고 길쭉하고 크고 작고 굽었고 배 불룩하고 험상궂은 고구마들. 티격태격하면서도 신나는 잔치를 함께 벌이는 고구마들이 딱 우리 아이들 같다. 반달 제공

고구마구마

사이다 글ㆍ그림

반달 발행ㆍ40쪽ㆍ1만3,000원

이 책의 표지에는 고구마 그림과 함께, ‘고구마구마’라는 제목과 ‘사이다’라는 지은이의 이름이 쓰여 있다. 고구마와 사이다? 퍽 어울리는 조합이라 생각하며 책장을 열어 본다.

화면 가득한 고구마 밭, 캘 때가 되어 보이는 고구마 줄기에 이어 고구마를 쑥 뽑아 올리는 손. 그리고 말과 그림의 잔치가 벌어진다. 구수한 종결어미 ‘-구마.’로 맺는 말들이 고구마의 갖은 형상을 제시하고, 익살스러운 그림들이 그러한 고구마들을 푸짐하게 보여준다. “둥글구마.” “길쭉하구마.” “크구마.” “작구마.” “굽었구마.” “배 불룩하구마.” “털났구마.” “험상궂구마.” “참 다르게 생겼구마.”…

이어지는 조리법. 푹푹 쪄 내니 말캉말캉 찐 고구마. 불에 구워 내니 구수한 군고구마. 기름에 튀기니 고소하고 바삭한 튀긴 고구마… 맛과 형태는 조금씩 달라도, 똑같은 한 가지는 모두모두 속이 노랗게 빛난다는 것. 이제 먹을 차례다. “고구마 잔치 열렸구마!” “그럼 맛있게 먹자꾸마!” “목메구마!” “탄 것도 맛나구마!” “배가 빵빵하구마.” 빵빵하게 먹었으니 배 속에 가스도 빵빵. 마침내 “빵! 뀌었구마!” “독하구마!” “쓰러지는구마.”

쓰러진 녀석들은 정신을 못 차리는데, 뀐 녀석은 태연히 콧구멍을 후비며 말한다. “미안하구마. 덕분에 속은 편안하구마!” 책 속엔 여전히 방귀냄새 풀풀 날리니, 장면마다 등장해 “신나구마” “불타는구마!” “아팠겠구마” 하고 추임새를 넣어 오던 가장 작은 꼬마 고구마가 “못 참겠구마” 투덜대며 그릇에 담긴 물 속으로 잠겨 들어 숨는다. “이제 끝났구마.” 과연 그럴까? 한 장을 더 넘기니 물에 잠겼던 녀석의 머리꼭대기에 쏙! 싹이 나 있다. “싹났구마!” 그 싹을 키워 봄에 심으면 뜨거운 여름 지난 뒤 선선할 무렵, 다시 고구마 잔치 벌어지리라.

가지런히 고른 게 아니라, 제각기 둥글고 길쭉하고 크고 작고 굽었고 배 불룩하고 험상궂은 고구마들. 티격태격하면서도 신나는 잔치를 함께 벌이는 고구마들이 딱 우리 아이들 같다. 아니, 때로 너니 나니 탓을 하며 쌈질을 하다가도 의와 정을 나누며 함께 살아갈 줄 아는 딱 우리네 장삼이사들이다. 아무렴 어떠랴, 어쨌든 모두모두 속은 반짝반짝 빛날 것이니.

모처럼 ‘다양한 주체들이 시끌시끌하게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면서도 나누고 베풀며 어우러지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는 상식을 국정의 기조로 삼는 정부가 들어섰다. 그 상식이 지켜지려면 책 읽는 문화가 상식을 받쳐주는 든든한 한 기둥이 되어야 하리라. 그래서 출판계와 독서문화계가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책 읽는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아가 책 ‘읽어 주는’ 대통령은 어떤가. 어느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쯤 청와대를 견학하는 아이들 앞에 나와 그림책 읽어 주는 풍경을 볼 수 있다면….

그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지면, 도서목록에 이 그림책이 꼭 포함되기를 바란다. 한 때 ‘고구마’라 불리기도 했으나 취임 후 시원한 ‘사이다’를 수시로 선물하는 대통령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 이 그림책을 경남말로 읽어 주었을 때 참 맛나게 들은 기억이 있어서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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