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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청산’과 ‘연대’

입력
2017.03.2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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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정당, 후보자, 정국 상황, 지역구도, 공천 방식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승패가 갈린다. 그러나 이러한 변수를 압도하는 요인이 바로 선거 프레임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천안함 사태를 이용한 안보 담론과 무상급식을 내세운 복지 담론이 대립했다. 야당의 복지담론의 승리였다. 2012년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이슈를 선점한 새누리당이 프레임 전쟁에서 우위에 섬으로써 승리를 낚았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의 예상을 뒤엎은 야당 승리는 ‘야당 바람’ 때문이었다. 이번 대선은 아직까지 정책적 이슈가 갈등축이나 대립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음으로써, 5당 체제에서의 합종연횡과 연대 여부가 선거를 관통하는 프레임이 되고 있다.

냉전논리와 반공의식이라는 퇴행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는 강성 친박이 자유한국당에서 지배력을 강화한다면 이번 선거는 ‘적폐청산’과 ‘협치’ 중 어느 것도 얻어낼 수 없는 선거가 될 것이다. 자유한국당에서 강성 친박 주자가 후보가 되면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과 범보수 후보 단일화의 명분을 잃게 된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과의 후보단일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다자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 전 개헌의 성사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러나 대선과정에서 개헌 공약이 대선 후 정당연합의 매개변수가 된다면 ‘개헌’과 ‘비개헌’의 프레임이 선거구도를 양자구도로 재편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에서 비박 인사가 후보로 선출되고,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연대를 거쳐 다시 자유한국당과 연합하는 단계별 연대론이 힘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현재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항하는 ‘반문 연대’의 성사와 양자구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각자 셈법이 다르고 지향이 다른 주자와 정당들의 대연합의 성사 가능성은 역시 불투명하다.

탄핵정국의 연장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다. 그러나 역대 선거의 경우처럼 보수 대 진보의 진영 대결 양상으로 전개된다면 박빙의 승부가 되리라는 전망도 경험칙에 미루어볼 때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다.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결국 다자구도와 양자구도 중 어느 쪽의 구도가 되느냐에 따라 선거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본질은 박정희 시대부터 누적된 정경유착과 산업화 시대부터 응축되어 왔던 부정부패의 고리다. 또한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해도 된다는 민주주의 인식의 결여에 기인하는 권력의 사유화가 국기문란의 원인이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에서 과거의 불의와 부정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과거청산 논리가 이번 대선의 어젠다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연합과 연대 등 정치공학에 입각한 구도가 지배적 구도로 부상한다면 ‘적폐청산’은 과거지향적 프레임으로 치부될 수 있다. 이번 대선은 ‘청산 담론’과 ‘연대 담론’이 대결 구도로 가는 양상이다. ‘과거 청산’ 대 ‘협치’의 선거구도는 비교의 층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배적 프레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공학적 연대 여부가 큰 변수가 될 이번 선거에서 사회경제적 갈등이 쟁점축으로 등장하지 못한다면 촛불민심이 요구했던 한국사회의 혁파는 요원해진다. ‘청산’ 없는 ‘협치’는 단순한 정권교체에 불과할 뿐이다. 반면 혁명적 상황을 상정하지 않는 한 선거 후 ‘협치’가 부재한 ‘청산’은 가능하지 않다. 극단적 대립구도의 연장일 뿐이다.

정권 초기부터 여야의 갈등이 또 다시 정당체제를 지배한다면 개혁입법을 통한 공정, 격차와 양극화 해소를 둘러 싼 대립은 강고한 기득 보수와 진보의 지지층을 결집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적폐청산은 물 건너 가고, 편향성의 동원을 통한 진영의 강화라는 ‘적대적 공생’의 데자뷔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청산’과 ‘연대’는 동전의 양면이다. 선거공학의 희생양이 되어서도 안되고, 상호갈등적이어선 안 되는 이유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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