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관계 5억 빚져…"돈 안 갚으면 낙선" 협박에
친구 끌어들여 살인 교사 1년6개월간 치밀하게 준비
범행 후 중국 도주한 친구 체포당하자 자살 권유도
지난 3월 발생한 서울 강서구 ‘60대 재력가 살인 사건’은 빚 독촉 압박에 시달린 현역 서울시의원의 사주에 의한 범죄로 밝혀졌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채무 관계에 있는 수천억대 재력가 송모(67)씨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혐의(살인교사)로 서울시의회 의원 김형식(44)씨를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은 김씨의 사주를 받아 송씨를 살해한 팽모(44)씨도 함께 구속했다. 송씨는 앞서 3월 3일 오전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건물 관리사무실에서 둔기에 머리를 수차례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한신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씨는 1998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뒤 2000년쯤 지인의 소개로 송씨와 친분을 쌓아 일종의 스폰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김씨는 2010~2011년 송씨로부터 총 5억여원을 빌리게 됐고, 2012년 말부터 “빨리 돈을 갚으라”는 송씨의 압박을 받았다. 특히 송씨가 “(채무를 변제하지 않으면) 6ㆍ4지방선거에서 낙선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하자 불안감이 극에 달한 김씨는 송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10년 간 친구처럼 지낸 팽씨를 끌어들였다. 팽씨는 김씨에게 사업을 한다며 빌린 7,000만원의 빚도 있어 범행 모의 상대로 안성맞춤이었다.
김씨는 1년 6개월간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송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던 그는 팽씨에게 송씨의 일정과 시간대별 동선, 살해 후 도주 경로 등을 상세히 일러 줬다. 팽씨와의 연락 수단도 선불폰(일명 대포폰)만 이용했다. 올해 1월에는 팽씨에게 범행에 쓰일 전기충격기와 손도끼를 직접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팽씨가 번번이 주저하자 범행 일주일 전인 2월 27일 그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다. 더 이상은 못 기다린다”며 최후 통첩을 날렸고, 팽씨는 결국 김씨 강요에 못 이겨 송씨를 죽였다.
김씨의 범행 모의가 워낙 용의주도했던 탓에 경찰도 범인 추적에 애를 먹어야 했다. 팽씨는 범행 후 택시를 네 차례나 갈아타며 인천의 한 사우나로 도주했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다시 인근 야산으로 이동해 증거물을 불태워 없앴다. 경찰이 보름간의 탐문 수사 끝에 팽씨를 피의자로 특정했으나, 그는 사건 발생 3일 뒤 중국으로 도주한 후였다. 경찰은 중국 공안과 공조 수사를 통해 칭다오(靑島)-광저우(廣州)-선양(瀋陽)으로 도피 행각을 벌이던 팽씨를 지난달 중순에야 검거할 수 있었다. 지난 24일 팽씨의 신병을 인계받은 뒤에는 그의 자백과 송씨 사무실에서 찾아낸 차용증을 근거로 김씨의 살인 교사 혐의도 확인됐다.
김씨는 팽씨가 중국에서 체포된 후 연락해 오자 “채무를 모두 면제해 주고 가족의 생계도 책임지겠다”며 자살을 권유하는 파렴치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팽씨는 실제로 구치소에서 4차례 자살을 기도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 와중에 김씨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지방선거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김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탈당해 현재 무소속상태다.
그러나 김씨는 “팽씨가 나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강도짓을 한 것이고, 5억원 차용증은 술에 취해 써줬을 뿐 송씨에게 돈을 빌린 적도 없다”며 범행 일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빌린 5억원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는지,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는지 등에 대해선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김씨가 송씨에게 일반 토지를 상업지구로 바꿔 땅값을 올려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씨는 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 구치소에서 김씨가 계속 ‘목숨을 끊으라’고만 하자 팽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 같다”며 “팽씨 진술이 일관된데다 김씨 도장이 찍힌 차용증이 발견돼 혐의 입증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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