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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입력
2016.05.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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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개봉한 영화 '동주'는 1917년 태어난 시인 윤동주의 삶을 통해 식민지 청춘들의 고뇌를 그린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동주'는 1917년 태어난 시인 윤동주의 삶을 통해 식민지 청춘들의 고뇌를 그린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문제 하나. 1889년 4월 서유럽에서 태어났다. 20세기 인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직사각형 모양의 콧수염을 기른 그를 모르면 외계인일 확률이 99%. 결정적인 힌트 하나 더. ‘독재자’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다. 과연 누구일까.

많은 이들이 아돌프 히틀러라는 답을 댈 것이다. 찰리 채플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둘 다 정답이다. 채플린은 1889년 4월16일 영국에서, 히틀러는 나흘 뒤인 20일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출생했다. 히틀러가 나치 독재자로서 세계에 공포를 심었다면, 채플린은 히틀러를 소재로 삼은 ‘위대한 독재자’ 등 여러 영화로 연민 어린 웃음을 인류에 남겼다. 서유럽이라는 공간 안에서 비슷한 시기 나고 자라 엇비슷한 시대의 공기를 맡았을 두 사람은 상반된 삶을 살았다.

채플린과 히틀러는 극단적인 예다. 서유럽보다 더 작고 균질적인 공동체인 한반도 언저리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인물들 중 각자의 삶을 살다 간 경우도 당연하게 허다하다.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절에도 각자의 욕망과 꿈에 따라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갔다.

1917년 태어난 두 남자도 그랬다. 둘은 공통분모가 꽤 컸다. 식민지 치하 조선인으로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분투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나아갔다. 하지만 두 삶이 다다른 곳은 전혀 달랐다. 한 남자는 시인이라는 꿈을 꿨다. 의사가 되어 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라는 아버지의 지청구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서울 명문 사립대 문과에 진학했고, 영문학 공부를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하지만 시대는 그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모국어로 시를 쓰는 행위조차 일제에게는 저항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다른 남자는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교편을 잡았다가 군문에 들어섰다. 만주에서 군관학교를 졸업했고, 열도의 엘리트 산실에서도 공부했다. 이념이나 신념이라는 본질보다는 실존을 앞세운 삶을 살았다. 남자 덕분에 신생 대한민국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압축성장을 이뤘다.

유고시집으로 등단한 앞의 남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마음 아파했고, 죄책감에 대한 글을 유난히 많이 남겼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며 괴로워했고,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고 자책했다. 일본 유학을 위해 창시개명을 한 것에 대한 회한일 것이다. 남자는 광복을 6개월 앞두고 스물 여덟, 짧은 삶을 마감했다.

그가 동년배의 평균 수명만큼만이라도 살았다면 어떤 인생을 펼쳐 냈을까. 그의 중학교 동창은 통일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그의 이종사촌은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탈출한 뒤 광복군에 합류하는 계획을 짜기도 했다. 장준하가 간 길이었다. 시인이 1960~70년대 한국에서 살았다면 적어도 같은 해 태어난 남자의 철권통치에 고개를 조아리지는 않았을 듯하다. 아름다운 시어와 달리 변절의 삶을 영유했을 지도 모르지만.

역사에서 ‘만약’은 부질없다. 벌어지지 않은 일을 지난 시간에 대입하면 빈약한 판타지가 되기 십상이다. 역사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다. 권력자의 치부를 감춘다고 사라지지 않고, 빛나는 업적을 가린다고 사람들이 외면하지는 않는다. 패배한 역사는 있어도 패배주의적 역사관은 없다. 자학사관을 극복하겠다며 전쟁과 침략을 외면하는 일본의 일부 역사 교과서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대통령이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교육은 이제 올바른 역사관으로 바꾸어야 된다”고 최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의 만남에서 밝혔다. “세계가 참 부러워하는 경제발전이 반노동적이었다며 자라나는 사람 머릿속에 잘못 심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역사는 어느 한 시각에서 단정 지을 수 없다. 국가가 항상 옳다는 식의 도그마도 위험하다. 국정교과서 밀어붙이기에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헤아려보니 내년이 앞에서 언급한 시인과 권력자의 탄생 100주년이다. 이럴 때 오래 전부터 쓰던 말이 있다. “남의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을 고쳐 쓰지 말자.”

라제기 엔터테인먼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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