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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요지부동에 ‘종전선언 우회로’ 찾는 남ㆍ북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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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요지부동에 ‘종전선언 우회로’ 찾는 남ㆍ북ㆍ중

입력
2018.09.15 11:00
수정
2018.09.1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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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재래식 군축으로 여건 마련하려는 靑

‘北 뒷배’ 中도 일단 후퇴 제스처… 1대3 구도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남북 정상회담 원로 자문단의 조언을 듣기 위해 마련한 청와대 초청 자리에서 18~20일 평양에서 열리는 현 정부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 등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남북 정상회담 원로 자문단의 조언을 듣기 위해 마련한 청와대 초청 자리에서 18~20일 평양에서 열리는 현 정부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 등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종전(終戰)을 선언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이 실제 종전을 앞당기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4ㆍ27 정상회담에서 ‘연내 종전선언’에 합의한 남북이 아무리 설득해도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한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가 다시 전달된 뒤 경직됐던 분위기가 약간 풀린 듯하고, 북미 양측의 의견이 전보다는 다소 접근했음을 미 국무부가 시사하기도 했지만,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 선행을 선언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미 입장이 변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물론 미국을 움직이기 위한 한국 정부의 정공법은 북한에게서 비핵화 관련 양보를 더 받아내 둘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추문들이 겹치면서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현재 교착 중인 대미 협상을 방치하는 게 별 도움이 안 된다. 자국 내 불만을 무마할 적당한 명분이 생기기만 하면 어느 정도 태도 전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마저 만들기 쉽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불신의 골이 워낙 깊어서다.

그래서 청와대가 비핵화 중재안과 더불어 모색 중인 타개책이 남북 간의 재래식 군비 축소다.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원로 자문단을 불러 의견을 듣는 자리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 전쟁 위협을 종식시키는 것”을 닷새 앞으로 다가온 평양 정상회담의 핵심 목표로 언급한 일도 다각도의 종전선언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발로인 것 같다.

아울러 남북 사이의 군사 긴장 완화에 미국이 바라는 북한 비핵화를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는 게 청와대 판단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3일 서울안보대화(ADD) 기조연설에서 “남북 간 긴장 완화가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할 것”이라며 “군사적 긴장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핵 없이도 번영할 수 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핵 전쟁을 막는 데에도 재래식 군축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최근 본보가 마련한 ‘한국아카데미’ 강연 자리에서 “재래식 분야에서 일어난 군사 충돌이 에스컬레이션(확대)될 때 핵 전쟁이 되는 것”이라며 “우발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만 신뢰가 쌓여도 절반의 평화는 이루는 셈”이라고 조언했다.

현재 남북이 정상회담에서 약속하려 하는 일들은 신뢰 구축 단계를 넘어선다. 정 실장은 “6, 7월 두 차례 장성급 군사회담을 통해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화 원칙에 합의하고 경비초소(GP) 철수 등 구체적 조치들을 추진키로 했다”며 “초보적 수준의 운용적 군비통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운용적 군비통제는 군사력 규모를 줄이는 최종 단계인 구조적 군비통제 전(前) 단계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15일 “한반도 위기 구조가 해소되려면 북한 비핵화와 공세적 미 대북 군사정책의 전환, 남북 군비통제가 맞물리며 선순환해야 한다”며 “북미가 서로 상대의 선(先) 전향을 기대하면서 협상이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면 돌파를 위해 결국 치고 들어가줘야 하는 건 남북한의 군비통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만의 고군분투는 아니다. 김 위원장의 세 차례 방중과 6ㆍ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경유하면서 당초 미온적이던 태도를 버리고 북한의 뒷배를 자처하며 종전선언 개입 의지를 확고하게 굳혀 가던 중국도 일단 후퇴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최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은 북한과 한국, 미국”이라며 종전선언 참여 입장 선회 시사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유현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물밑에서 남북을 압박해 한반도에서의 전략적 입지를 유지할지언정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을 취소하며 미국이 거론한 중국 책임론을 겉으로는 의식하는 척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7월 초 폼페이오 장관의 ‘빈손 방북’ 직후 종전선언과 관련해 잠깐 강경 일변도 대미 공세를 취했던 북한 역시 회유 자세로 돌아선 지 오래다. 북한이 쥐어 짠 고육책은 종전선언 의미 축소다. 법적 성격 탓에 미군의 한반도 주둔 근거가 되는 기존 정전(停戰)체제를 흔들 수밖에 없는 평화협정과 달리 종전선언은 상징적 의미뿐인 “한갓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5일 방북했던 우리 대북 특사단에게 김 위원장이 직접 “한미동맹이 약화한다거나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은 종전선언과 상관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견제 대상인 북중의 진정성은 미국이 늘 의심하는 부분이다. 북한의 종전선언 평가절하는 실제 그렇게 여겨서가 아니라 미국의 요구 수준을 낮추려는 의도일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협상력 강화 목적의 전술에 불과한 만큼 막상 목표물인 종전선언을 얻어낸 뒤에는 표정을 바꿔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주한미군은 나가라”고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외교 소식통은 “남ㆍ북ㆍ미 3자 종전선언을 용인한다고 중국이 입장을 바꾼 일은 없는 걸로 안다”고 했다.

우회적 유인책의 한계도 명백하다. 물경 70년째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끝내려면 결국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한결같은 미 입장이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한반도 평화 구축 프로세스의 핵심은 비핵화이고 미국이 바라는 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라며 “4ㆍ27 판문점선언 후속 평양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포함된 재래식 군비통제 방안이 장사정포 후방 배치 정도의 가시적 북한 위협 해소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비핵화 실천 조치도 두루뭉술하게 들어간다면 미국의 종전선언 동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이 원로 자문단 초청 자리를 빌려 “이제 북한이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일은 ‘미래 핵’(핵 능력 고도화에 필요한 실험들)뿐 아니라 현재 보유한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대북 단속’일 수 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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