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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성장ㆍ노화에 관련된 질문, 예쁜꼬마선충에 물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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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성장ㆍ노화에 관련된 질문, 예쁜꼬마선충에 물어보다

입력
2017.03.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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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m 크기 꼬마선충의 유전자

40%가 인간에 보존되어 있어

서울대 젊은 생명과학자 5명

‘모델’을 통해 생명현상 다뤄

'모델 생명체'라 불리는 예쁜꼬마선충에 대한 연구결과는 인간에 적용할 수 있다. 사진은 노화 연구를 위해 염색체 말단인 텔로미어의 길이를 인위적으로 늘린 예쁜꼬마선충. 한국일보 자료사진
'모델 생명체'라 불리는 예쁜꼬마선충에 대한 연구결과는 인간에 적용할 수 있다. 사진은 노화 연구를 위해 염색체 말단인 텔로미어의 길이를 인위적으로 늘린 예쁜꼬마선충.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걸음 더 들어가보겠습니다.”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 방송의 손석희 앵커가 방송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 감추어진 진실이 얼마나 많은가. 기자의 리포팅, 앵커의 멘트로 이어지는 기존 뉴스를 뛰어넘어 기자를 대담자로 불러내 심층보도하는 방식은 그래서 나왔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만 모호하고 알기 힘든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해외의 한 연구자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논문의 해석’이라는 글을 올렸다. 예를 들어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던 대로"라는 말은 "원전을 찾아보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런 의문점들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구한다는 것에 어려움이 따르지만”이라는 말은 “실험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논문으로 내야겠다”라는 말이며, "데이터 중에서 입수 가능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분석해 보면"이라는 말은 “맥주를 엎지르는 바람에 데이터를 적은 노트 3장을 날려먹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된단다. 그렇다. 과학 논문도 누군가의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2013∼2014년 두 해에 걸쳐 서울대 '유전과 발생' 연구실 소속의 젊은 생명과학자 5명(김천아·서범석·성상현·이대한·최명규)은 손석희 앵커처럼 생명과학계에 쏟아져 나오는 논문들에 대해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작업을 벌여왔다.

벌레의 마음

김천아 등 지음ㆍ바다출판사 발행

368쪽ㆍ1만5,000원

이번에 ‘벌레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된 이 책은 생명과학 연구의 모델 생명체인 ‘예쁜꼬마선충’을 매개로 신경작용, 행동, 성장, 노화 등 생명현상의 거의 모든 측면을 다루고 있다.

생명 과학자들은 예쁜꼬마선충을 비롯해 대장균, 효모, 초파리, 개구리, 생쥐 등을 '모델 생명체'라고 부른다. 생물들은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 그래서 대사 회로와 발생생물학적 기초, 그리고 유전체 등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프랑수아 자콥과 함께 196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과학자 자크 모노의 말을 빌자면 “대장균에서 진실인 것은 코끼리에서도 진실”이라는 것이다. 모노는 모델 생명체인 대장균(E. coli)을 이용해 오페론(operon)을 발견하고 세포 내 유전자 조절에 관한 메커니즘을 밝혀냄으로써 자신의 말을 입증했다. 20세기 이전의 생물학이 주로 자연을 '관찰'하는 박물학 수준에 머물렀다면, 현미경과 염색법이 발달한 20세기 들어와서 생물학은 이런 모델 생명체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는 단계로 도약한 것이다.

예쁜꼬마선충은 겨우 1㎜ 크기 밖에 안되며, 몸은 투명하고 주로 토양에 사는 아주 작은 벌레다. “꼬마선충의 유전자 중 거의 40%가 인간에게 보존되어 있고, 세포 사멸, 노화, 신경 발생 등과 관련된 수많은 생물학적 기작이 꼬마선충에서 먼저 밝혀지고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이 알려졌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에 예쁜꼬마선충을 생물학 실험실에 도입할 생각을 처음 해낸 공로자는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시드니 브래너다. 그는 예쁜꼬마선충이 장차 현대 유전학, 발생학, 특히 신경생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예감했다. 현재 예쁜꼬마선충 연구자는 전 세계 수천 명에 이르며, 생명 현상에 대한 엄청난 지적 성과를 가져다 주어 노벨상을 쏟아내는 메달 박스이기도 하다.

예쁜꼬마선충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단순성일 것이다. 900여개의 체세포와 300여개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으며, 2만여개의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학 연구실에서의 유전자 관련 실험은 특정 유전자를 망가뜨리거나 인위적으로 발현시켜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단순한 구성을 가진 생물이 실험에 얼마나 유리할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예쁜꼬마선충은 정상적인 조건에서 사멸 주기가 3주 정도로 매우 짧고 실험실의 대장균 배양액에서 쉽게 배양이 가능하므로 유지비가 적게 든다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세 번째 장점은 몸체가 투명해서 신경 시각화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신경생리학 기법은, 정교하지만 신경에 전극을 꽂아야만 하는 전기생리학의 ‘침습성’(invasiveness)과 비침습적이지만 ‘해상도’가 떨어지는 뇌파나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투명한 몸체 덕에 예쁜꼬마선충에서는 칼슘영상기법(Cacium imaging) 가능하다. 이 기술은 침습성과 해상도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원하는 대상에 빛 감지 센서를 달고 빛을 이용해 조작하는 광유전학(optogenetics) 기술이 개발되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신경세포와 신경회로를 조작할 수 있게 되면서 예쁜꼬마선충 연구는 신경생물학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총 3부로 나뉘어진 이 책은 1부는 신경과 행동을, 2부에서는 생명의 보편성을, 3부에서는 번식과 수명 그리고 노화에 대해서 다룬다. 소식과 간헐적 단식, 어느 쪽이 더 건강에 좋을까? 또 텔로미어 검사(노화 진행 정도를 측정하는 검사)로 우리에게 남은 수명을 측정할 수 있을까? 생명현상과 관련된 질문은 이제 예쁜꼬마선충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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