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원전반대그룹’이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빼낸 원전 관련 자료들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원전 3곳의 가동 중단 등을 요구한 지 2주일이 지났다. 다행히 이들이 ‘2차 공격’을 예고한 성탄절 이후 원전 가동과 관련한 이상징후는 나타나지 않았고 추가 자료공개도 없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어서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북한의 연계 가능성이 일찌감치 제기됐으나, 수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정부합동수사단은 9일부터 나흘 간 퇴직자 명의 이메일을 통해 한수원 전 직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3,571명에게 악성코드가 담긴 이메일이 발송된 사실 정도만 밝혀냈을 뿐이다. 문제의 악성코드는 파일 파괴와 트래픽 유발, 디스크 파괴 기능만 있었는데, 한수원측의 메일 삭제 조치로 PC 4대만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합수단은 이 악성코드에 자료 유출 기능이 없었던 점 등으로 미뤄 공개된 자료들은 그 이전에 유출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출 시점은 특정하지 못했다. 유출 경로도 본사 시스템에 대한 직접 해킹, 이메일 악성코드 활용, 내부자 공모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해커의 추가 공격 가능성도 여전하다. 조석 한수원 사장은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회사 내부망에 침투하려는 시도가 감지되고 있지만 방어 조치를 취해 원전 운영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전 안전은 100% 장담한다”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불안감 확산을 막으려는 의도겠지만,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숱한 사건사고가 그렇거니와 특히 원전은 사소한 실수가 끔찍한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섣부르고 부적절한 언사다.
이 와중에 26일 오후 울산 신고리원전 3호기 건설공사 현장에서 질소가스 누출로 근로자 3명이 질식해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신고리 3호기는 지난해 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 사실이 드러난 뒤 전량 교체 작업을 하느라 준공이 내년 5월로 미뤄졌다. 원전 가동 전인데다 해킹 사태와는 무관한 사고라지만, 평상시도 아니고 모든 원전시설에 대한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인명사고가 난 것은 한수원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이러고도 원전 안전을 100% 장담한다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그 동안 한수원은 원전과 관련한 각종 비리와 잦은 고장ㆍ사고로 줄곧 도마에 올랐고, 번번이 축소ㆍ은폐 시도로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더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유출된 자료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위험성을 낮추기에 급급했고, 조석 사장은 어제야 공개석상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수사당국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범인을 잡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한수원의 무사안일주의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국가안보 차원에서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상황”(박근혜 대통령)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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