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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16 10:38

[장정일 칼럼]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

등록 : 2015.10.16 10:38

오스카 와일드는 자기 생애의 절정을 맞이했던 1895년(41세), 남성들과 외설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법적 최고형인 2년간의 강제 노역형을 선고 받았다.

페터 풍케의 평전 ‘오스카 와일드’(한길사, 1999년)에 따르면 그는 옥스퍼드에 다닐 때만 해도 엄격한 이성애주의자였으며, 미모의 여성을 숱하게 쫓아다녔다. 그런 끝에 ‘달의 여신’이라는 찬미를 바치기도 했던 콘스턴스와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았다. 결혼 생활의 권태와 아내와의 성격 차이가 그를 동성애로 인도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와일드의 삶과 문학에 내재한 이중성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와일드가 스무 살 된 옥스퍼드 대학생이자 동성연애자인 앨프리드 더글러스를 처음 만난 것은, 결혼생활 7년째에 접어든 서른일곱 살 무렵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 챈 더글러스의 아버지 퀸즈베리 후작은 와일드가 다니는 클럽에 ‘당신은 남색가’라는 쪽지를 붙여 공개적인 모욕을 했고, 와일드는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때 와일드의 친구들이 당장 소송을 취하하고 영국을 떠나 있으라고 강력히 권고했던 것처럼, 영국과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와일드의 재판은 그가 조금이라도 현명했다면 얼마든지 감옥행을 피할 수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하나같이 와일드의 무모한 만용을 비웃으며 그가 어리석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정은 그의 허세에 있지 않다.

얼마 전에 출간된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문학동네, 2015년)는 그 동안 ‘옥중기’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발췌본을 완역하고 원제까지 찾아주었다. 보통 이 책은 와일드의 참회록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느 모로나 참회와는 별 연관이 없다. 와일드가 레딩 감옥에서 더글러스에게 보낸 옥중 서신을 모은 이 책은, 와일드가 퀸즈베리 후작을 고소하게 된 배경을 또렷이 드러낸다. 와일드를 만나기 전부터 더글러스는 아버지를 증오했고, 퀸즈베리 후작이 와일드를 모욕하는 쪽지를 클럽에 게시하자 아들은 와일드를 부추겨 아버지를 감옥에 보내려고 했다. 와일드는 자신이 부자 사이의 역겨운 전쟁에 끼어든 것을 알았지만, 더글러스를 사랑한 때문에 그의 무기가 되어 주었다. 그 결과 영원할 것 같은 명성을 누리다가 영원한 불명예를 얻었다.

이순구의 ‘오스카 와일드: 데카당스와 섹슈얼러티’(도서출판 동인, 2012년)는 ‘심연으로부터’가 더글러스를 비난하면서, 그를 자신의 품으로 다시 부르려는 고도의 전략 아래 집필된 교묘한 연애편지로 해석한다. 매우 흥미롭게도 와일드는 더글러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매번 자신의 옛 동성 연인인 로버트 로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이 편지는 더글러스에게 직접 부친 게 아니라, 로스를 거쳐 더글러스에게 가도록 되어 있었다. 와일드는 로스에 대한 칭찬과 두 사람 모두에게 공개된 형식을 통해 더글러스의 질투를 조장하고, 옛 연인의 환심도 사는 이중의 연애편지를 쓴 것이다.

‘심연으로부터’의 후반부에 이르러 와일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길게 언급하면서, 예수를 자신과 같은 낭만주의 예술가로 간주한다. 그가 추앙하는 예수는 보편적 정의가 아닌 시적인 정의를 설파하는 예수다. 예수가 간음한 막달라 마리아를 살려낸 것은, 세상의 정의가 다 똑같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법칙이란 것은 없었어. 오직 예외만이 있을 뿐이었지.” 이순구의 해석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의 예를 경유한 예수는 “죄인으로 취급 당하는 고통 받는 동성애자들의 대변자”가 된다.

페터 풍케는 와일드 재판은 그가 원인을 제공하긴 했지만, 그것이 와일드가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 원인은 아니라고 한다.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동시대 전체의 타락을 단죄하는 본보기식 재판”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사위가 마약을 상습 투여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듯이, 막강한 귀족 집안의 아들이었던 더글러스는 기소조차 당하지 않았다. 사족이다. 이 책 권말에는 앙드레 지드가 와일드에게 바친 두 편의 에세이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글항아리, 2004년)가 고스란히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 이게 ‘냄비’를 끼워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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