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장관, 장애아 치료실 찾아 사전동의 없이 사진촬영 등 어수선
엄마들 "당황스럽고 불쾌" 원망
지난달 스웨덴 왕세녀 방문 땐 두 번이나 양해 구하고 행동 조심
"아픔 공감하는 법부터 달라" 지적
“찰칵, 찰칵!” 사방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졌다. 조용히 물리치료를 받던 장애아와 엄마들 얼굴에 당황스럽고 언짢은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 15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강북구 인수동 국립재활원을 방문하면서 생긴 소동이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이날 국립재활원에서 장애체험에 나선 문 장관은 체험에 앞서 본관 2층 소아물리치료실을 찾았다. 대여섯 명의 지체장애아들이 각자 치료기구를 이용해 물리치료사, 엄마와 함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치료실 안으로 들어간 문 장관은 한 여자 아이의 물리치료를 지켜보다 이성재 국립재활원장과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취재진은 치료받는 아이들과 문 장관을 계속 사진과 영상으로 찍었다. 조용히 치료에 집중하던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엄마들은 상당히 불쾌해 보였다. 사진을 찍던 한 취재진의 몸과 가방이 두 돌도 안 돼 보이는 아이의 머리 10cm 정도로 가까이 와 닿으려 하자 엄마는 아이를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진정시켰다. *관련기사 8면
문 장관을 수행한 복지부 대변인실 관계자들에게 “아이들이 치료 중인데 이렇게 들어와서 사진을 찍으며 놀라게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부모들의)사전 동의를 구했고 아이들 얼굴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하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3분 가량 머물던 문 장관이 휠체어 체험을 위해 재활원 내 다른 장소로 떠나면서 금세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문 장관 일행이 떠나자 먼저 발을 동동 구른 이들은 치료실 의료진이었다. 한 관계자는 “엄마들에게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어이없어 했고, 다른 관계자는 “여기에 오는 엄마들이 아이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에 얼마나 예민한 줄 아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결국 잘못도 없는 의료진이 엄마들에게 “이해해 달라”며 사과를 했다. 재활원의 한 인사는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최근 외부인 방문이 많은데, 치료실에 들어올 때 최대한 행동을 주의해 달라고 얘기하면 조용히 보고 금방 나간다”며 “이번에는 주무부처 장관이 오시니까 아무도 그런 얘기를 못했다”고 전했다. 보통 재활원에 방문하려면 재활원의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하며, 아이들 사진촬영은 부모의 별도 허락을 얻어야 한다.
봉변 당한 표정의 엄마들과 의료진은 문 장관 일행과는 많이 달랐던 20일 전 빅토리아 스웨덴 왕세녀의 재활원 방문을 떠올렸다. 스웨덴 차기 왕위 계승자인 빅토리아 왕세녀는 지난달 23일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다음날인 25일 국립재활원을 찾았다. 찾기 전 그는 미리 재활원 측을 통해 엄마들의 동의를 얻은 뒤 현장에서 다시 한번 양해를 구했으며, 허락을 받은 아이들만 사진을 찍었다. 국립재활원 관계자는 “빅토리아 왕세녀와 스웨덴 및 한국 기자 7,8명 정도가 동행했는데 조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치료실을 둘러봤다”고 전했다.
실제로 빅토리아 왕세녀가 소아물리치료실을 방문한 사진에는 왕세녀와 의료진, 아이 엄마 모두 아이의 귀여운 행동에 동시에 웃음이 터진 듯 환한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인권보호를 위해 아이는 뒷모습만 나왔지만, 직접 보지 않아도 아이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짐작되는 따뜻한 사진이었다. 왕세녀는 치마를 입었지만 아이 곁으로 다가와, 눈 높이를 맞추려 무릎을 구부린 채 앉아 있었다. 비록 잠시였지만 이벤트 하듯 찾아와 아이들 사진을 찍도록 한 복지부 장관 일행의 재활원 방문과는 아픔을 공감하는 방법부터 달랐다. 물론 빅토리아 왕세녀는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명예이사회 멤버로 활동할 정도로 평소 장애아에 관심이 많고 재활시설 방문 경험도 많다. 그는 1997년 장애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기금을 설립해 장애아 여가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이번 복지부 장관 일행의 국립재활원 방문은 장애인 주무부처의 인권 감수성이 어떠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애린 연대사업국장은 “정부가 아직 장애인 인권을 고려하지 않던 1970,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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