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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불타는 갑판에서 뛰어내릴 때다

입력
2016.10.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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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 ‘퍼펙트 스톰’ 전야인데

정부와 정치권에서 위기의식 실종

제도 개혁 없이는 생존도 불가능해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모두 일어나 춤을 출 수밖에 없다.” 시티그룹 CEO였던 척 프린스가 금융위기 징후가 나타났던 2007년 중순 ‘파이낸셜 타임스’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위기가 코앞에 닥쳤는데 대부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의미겠다.

우리 경제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전야다. 동시 다발로 초대형 악재가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 용어로 말하자면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 하겠다. 중생 세계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집과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상하리만치 느긋하다.

당장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전대미문의 위기는 발등의 불이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단종으로 스마트폰 수출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노조 파업과 리콜 사태 등으로 생산과 수출 모두 바닥을 기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의 위기는 국가적 위기로 번질 소지가 농후하다. 중공업과 해운, 철강 등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대표 업종들도 모조리 구조조정의 늪에 빠져 있다. 이 바람에 청년 실업률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소비심리는 느닷없이 꽁꽁 얼어붙어 서민경제를 유린하고 있다.

금융부문에도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가계부채 급증 때문이다. 전셋값 상승을 못 견뎌 무리하게 집을 사는 가계가 폭증했다. 원리금을 갚다가 소비까지 위축되는 양상이 확연하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 부동산에는 국지적 거품까지 발생해 가계부채 규모를 키우고 있다. 정부는 이 ‘뜨거운 감자’에 속수무책이다. 바늘이라도 찔렀다가 풍선이 터질까 걱정인가 보다. 가계 빚은 사상 처음 국내총생산(GDP)의 90%를 기록했다. 올해 2분기 말 현재 가계신용이 1,453조원에 이른 것이다. 12월 중순으로 예정된 미국의 금리인상은 가계부채에 핵폭탄만큼이나 두려운 존재다. 금리인상은 가계부담 증가, 부동산가격 하락, 금융부실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연쇄반응을 촉발한다.

그런데도 폭풍전야처럼 분위기가 차분한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오인한 탓이 아닐까.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오히려 나 홀로 춤을 춘다. 연주가 막바지인 줄 모르는 듯하다. 비상경제체제를 가동해야 할 판이지만, 정부와 정치권에서 위기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기력한 정부는 한진해운ㆍ대우조선 문제에 무한정 시간만 끌고 있을 뿐 제대로 해결한 것이 없다. 게다가 경제학자 이정전의 표현대로 정치권은 ‘염치없는 보수와 눈치 없는 진보’ 사이의 비생산적 이념 논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대권에만 눈이 멀어 정치 혐오증을 키우고 있다.

내년이면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아야 했던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20년이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외환위기 때보다 더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때는 금융의 위기였을 뿐, 펀더멘털(실물)은 튼튼하다는 자위라도 했다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실물부터 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저서 ‘위기는 다시 온다’에서 “희망과 바람 속에 늘린 부채가 점점 무겁게 느껴지고 결국 그것에 짓눌려 사지를 자유롭게 놀릴 수 없게 되면 위기는 이미 깊어져 있는 것이다. 위기는 늘 사람들의 탐욕과 희망 섞인 기대가 예상치 못한 정치ㆍ경제적 기류의 변화를 만나 일어났다”고 했다. 우리 경제가 백척간두에 처한 근본 원인은 ‘제도의 실패’라는 것이 조 교수의 지적이다. 시장과 제도의 괴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도 빠른 시장의 변화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해 발생했다. 지금은 정부가 추진해 온 4대 개혁이 절벽에 부딪치면서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는 상황이다. 제도 개혁 없이는 생존도 없는데도 말이다. 개혁과 혁신에 관해 ‘불타는 갑판’(Burning Platform)이란 비유가 있다. 불타는 시추선의 갑판에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상어가 득실거리는 바다로 뛰어들면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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