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진하 기자

등록 : 2017.06.17 04:40

넌 배우 난 관객! 에이~ 옛날 얘기

[문화산책]

등록 : 2017.06.17 04:40

추임새 넣거나 콜백·떼춤을 넘어서

정해진 극본없이 관객이 이끌어가기도

소통형 공연 속속 등장하며 진화 중

완성도 들쑥날쑥해도 관객들 모험 즐겨

뮤지컬 '찌질의 역사'는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즉석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달라는 이벤트로 관객을 공연에 참여시킨다. 에이콤 제공

무대 위에서 여자 주인공 윤설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남자친구 서민기와 설하의 친구 2명.

이들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뒤 기념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어주는 이는 객석에 앉은 관객이다. 배우는 관객을 무작위로 지정해 즉석카메라를 건네고, 현상돼 나온 사진은 관객이 갖는다.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관객도 사진을 찍어주고는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찌질의 역사’는 관객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하는 이 이벤트로 관객을 공연에 참여시킨다.

공연에서 무대와 객석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관객 역시 객석에 가만히 앉아있지 않는다. 무대 위 배우가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고 호흡하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관객의 참여에 따라 뮤지컬 작품이 만들어지는 등 더 적극적인 ‘관객참여형’ 공연들이 제작되고 있다.

관객을 공연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

관객을 공연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관객이 작품에 더 몰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다. 내달 11일부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캣츠’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고양이들의 축제 ‘젤리클 볼’에 관객들이 실제로 와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객석을 활용한다. ‘캣츠’의 홍보를 담당하는 클립서비스의 관계자는 “인터미션 시간에도 배우들이 나와 객석 위를 기어 다니는 등 고양이처럼 행동한다”며 “이 시간을 즐기기 위해 관객들도 고양이 장난감을 준비해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통 무대를 바라보기 편한 객석 중앙부터 표가 먼저 팔리지만 ‘캣츠’에서는 고양이들을 가장 가까운 데서 볼 수 있는 통로 좌석인 ‘젤리클석’이 가장 인기가 많다.

뮤지컬 ‘록키호러쇼’은 이보다 더 적극적이다. 관객들이 극중 대사나 가사에 반응하며 추임새를 넣거나 배우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콜백’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극중 인물인 자넷과 브래드가 폭우 속에서 길을 잃고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 비를 피하는 장면에서 앙상블인 팬텀들은 객석에 물을 뿌리고, 관객들 역시 신문을 꺼내 들고 비를 피한다. 두 사람이 불빛을 찾을 때 관객들은 뮤지컬의 팬텀들과 함께 손전등을 비춰준다. ‘록키호러쇼’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타임워프 댄스’가 시작되면 모든 관객이 기립해 배우들과 함께 춤을 춘다.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위 스크린에는 콜백 참여 방법과 타임워프 댄스 강습 영상이 재생돼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관객들이 극중 배우들의 행동을 따라하고 대사에 반응하며 추임새를 넣는 '콜백'으로 유명하다. 공연 중 관객들이 배우들과 함께 춤을 추는 '타임 워프'를 위해 제작된 영상. 클립서비스 제공

관객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공연

관객의 참여로 공연 내용이 달라지는 더욱 적극적인 관객참여형 공연들도 등장하고 있다. 대학로에서 폐막일을 정하지 않고 공연 중인 연극 ‘쉬어매드니스’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 관객과 함께 추리한다. 현장에서 관객과 나누는 대화에 따라 용의자 4명 중 범인이 달라지도록 4가지 결말의 극본이 짜여 있다.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그날 공연을 보러 온 100여명의 관객들이 낸 아이디어를 칠판에 적은 뒤 즉흥적으로 뮤지컬을 만들어나간다. 스토리피 제공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이나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등은 관객이 생산자의 역할을 겸하며 공연의 완성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작품들이다. 지난 4월 초연한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정해진 극본이 없는 즉흥극 형식을 띤다. 공연은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는 연습실’이라는 상황만 주어진 상태로 시작한다. 100여명의 관객들이 공연의 주인공과 이름, 장소, 장르 등을 결정해 배우와 연출이 즉흥적으로 뮤지컬을 완성해간다. 넘버들은 작곡 돼 있지만 그날 그날의 내용에 따라 가사를 만들어 바로 부른다. 영국에서 시작된 뮤지컬 ‘쇼스타퍼’는 그 자리에 있는 관객들의 아이디어에 따라 음악까지도 밴드가 즉흥 연주로 선보인다. 전세계적으로 800회가 넘게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22일 개막하는 공연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관객들이 마치 역할게임(RPG)에 참여하는 것처럼 공연을 이어 나간다. 관객과 배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된다. 스토리피 제공

22일부터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보여주는 극장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극장’을 표방한다. 공연을 제작하는 이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겠다는 취지다. 이 공연의 관객들은 공연을 하루 앞두고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스태프들의 의견을 한 데 모아야 한다는, 일종의 미션을 받는다. 회당 최대 120명으로 정해진 관객들은 4명의 조연출을 따라 사무실, 분장실, 연습실 등 이곳 저곳에서 미션을 수행하며 직접 공연에 참여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역할게임(RPG) 형식을 가져와 관객과 배우의 경계 없이 서로가 캐릭터를 수행하며 공연을 만들어 간다.

결국 연출 역할 중요… 대극장에선 힘들어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해지면서 관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공연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관객참여형 공연일수록 관객과 제작자 모두에게 위험이 뒤따른다. 관객 입장에서는 자신이 어떤 공연을 보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표를 구입해야 하는 모험을 각오해야 한다. 제작자들은 그 만큼 공연의 완성도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혜원 공연평론가는 “관객참여형 공연에서는 관객의 참여도, 창의성 등에 따라 공연 내용과 완성도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연출가와 배우들의 현장 수행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고 분석했다.

지 평론가는 공연 자체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 갈수록 관객참여형 공연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관객들은 스스로도 콘텐츠 생산에 흥미를 느끼는데, 공연은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영역에 비해 현장에서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참여형 공연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참여형 공연이 아직까지 일반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고 대극장 무대에 올리기엔 부담감이 커 소극장 위주 작은 형태에서 발전해나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