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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한반도식 통일로 가는 길… 분단체제 무너뜨릴 지혜 구하다

입력
2018.06.11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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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론’ 뜨거운 논쟁 촉발

분단 역사ㆍ현실을 한국적 이론화

코리아 디스카운트ㆍ남남갈등 등

정치ㆍ경제ㆍ사회에 큰 영향 미쳐

통일 방법 ‘과정으로서의 통일론’

남북간 경협 등 다각적 교류하다

어느날 문득 “통일 꽤 됐네” 선포

초보적 수준 한반도식 통일 탐색

실천 전략 ‘변혁적 중도주의’

성찰적 진보ㆍ합리적 보수 힘 합쳐

폭넓고 튼튼한 중도 세력을 형성

정치ㆍ경제 개혁 등 분단과제 극복

북미회담을 앞둔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 백낙청 교수가 오랜 지론이었던 자신의 분단체제론에 대해 설명하면서 웃고 있다. 창비 제공
북미회담을 앞둔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 백낙청 교수가 오랜 지론이었던 자신의 분단체제론에 대해 설명하면서 웃고 있다. 창비 제공

지식인에겐 두 그룹의 독자가 있다. 한 그룹이 대중이라면 다른 한 그룹은 지식인들이다. 어느 사회이건 두 그룹 모두에게 공감을 얻고 영향을 미치는 지식인은 드물다. 나아가 이런 공감력과 영향력을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해온 지식인은 더욱 드물다. 지난 100년 우리 지성사에서 이런 지식인을 찾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백낙청이다.

백낙청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전반 학부 시절이었다. 그때 백낙청은 민족문학론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였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 그는 내게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 과제를 제시한 이론가였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분단체제론, 과정으로서의 통일론, 변혁적 중도주의를 주창한 사상가였다.

백낙청의 활동이 대학사회 안에만 그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 사회 담론을 주도한 ‘창작과 비평’, 그리고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은 ‘원탁회의’를 이끌었다. 1938년 대구에서 태어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한 다음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그는 이론과 실천에서 모두 주목할 업적을 남긴 지식인이다.

백낙청 교수는 이론가이자 실천가이기도 하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내는 등 민족문학 진영의 어른이기도 하다. 분단체제론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시절 인사말하고 있는 백낙청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백낙청 교수는 이론가이자 실천가이기도 하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내는 등 민족문학 진영의 어른이기도 하다. 분단체제론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시절 인사말하고 있는 백낙청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분단체제론자 백낙청 교수는 실천가로서 남북 교섭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사진은 2007년 남측 대표로 북한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을 방문했던 백낙청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분단체제론자 백낙청 교수는 실천가로서 남북 교섭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사진은 2007년 남측 대표로 북한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을 방문했던 백낙청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백낙청의 학문적 기여는 민족문학론, 근대성 담론, 분단체제론의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다. 여기서 이 모든 것을 다루기는 어렵다. 그 가운데 나는 분단과 통일 담론을 주목하려고 한다. 그 까닭은 분단체제론과 이와 연관된 담론들이 인문학은 물론 사회과학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기 때문이다.

분단체제란 무엇인가

분단과 통일에 대한 백낙청의 탐구에서 출발을 이룬 저작은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1994)이었다. 이어 그는 ‘흔들리는 분단체제’(1998),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2006),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2009)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동 저작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2018)를 내놓았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백낙청의 담론은 세 영역으로 이뤄져 있다. 분단의 역사와 현실을 이론화하는 분단체제론, 통일의 방법을 탐색하는 ‘과정으로서의 통일론’,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는 ‘변혁적 중도주의’가 그것이다.

먼저 분단체제론을 구성하는 아이디어는 세 가지다. 첫째, 분단된 남북한의 관계는 한반도 전체, 그리고 남과 북의 역사 및 현실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한다. 둘째, 분단체제는 미국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개념화한 근대 세계체제의 하위 체제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한국사회라는 국민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중범위적 체제로 볼 수 있다. 셋째, 이런 사실을 주목할 때 한국 사회운동은 다른 나라 사회운동과 구별되는 분단체제 변혁운동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분단체제론은 1994년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정치학자 손호철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분단체제론을 비판했다. 첫째, 분단체제는 세계체제처럼 자기 완결성과 내적 분업이 부재하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체제로 보기 어렵다. 둘째, 분단모순을 주요모순으로 볼 경우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소홀히 하는 문제를 갖는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백낙청은 분단의 특수성과 국민국가적 관점의 한계를 다시 한 번 강조했고, 이러한 반비판에 대해 손호철은 분단 변수의 과도한 평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1990년대 당대의 시점에서 분단체제 논쟁은 이론적이자 실천적 논쟁이었다. 이론적 쟁점이 세계체제와 한국사회 사이에 분단체제라는 중범위적 분석 단위 설정이 갖는 타당성에 있다면, 실천적 쟁점은 노동ㆍ시민운동으로 대표되는 사회운동에서 통일운동이 갖는 위상에 대한 평가에 있었다.

현재의 시점에서 분단체제론은 분단이 우리나라 정치ㆍ경제ㆍ사회에 미친 영향을 계몽하는 데 작지 않게 기여해온 것으로 보인다. 보수로 기울어진 이념ㆍ정치구조, 남북 대치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남북갈등에 짝하는 남남갈등은 그 구체적 사례들이다. 분단의 영향을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단의 프리즘을 통과하지 않고서 우리 사회 현실을 제대로 판독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변혁적 중도주의

그렇다면 분단체제의 극복은 어떻게 가능할까. 백낙청은 그 실천적 방법으로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을, 실천적 사상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시한다.

먼저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세 단계로 이뤄진다. 첫째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분단 극복이라는 대원칙에 합의하면서, 둘째 쌍방 정권이 결코 합의할 수 없고 민중으로서는 지금 저들끼리 합의하는 게 달가울 바도 없는 통일국가의 최종 형태나 주도층의 문제를 열어둔 채, 셋째 통일국가 형성의 잠정적이고 가장 초보적 형태에 동의하는 수순을 백낙청은 제안한다.

백낙청이 쏟아낸 분단체제론 관련 책들. 창비 제공
백낙청이 쏟아낸 분단체제론 관련 책들. 창비 제공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은 분단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한 한국적 해법이다. 우리에게 통일은 흡수 통일의 독일, 무력 통일의 베트남, 담합 통일의 예멘 사례와 달라야 한다는 게 백낙청의 생각이다.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에서 그는 말한다.

“무엇이 통일이고 언제 통일할 거냐를 두고 다툴 것 없이 남북 간의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다각적으로 진행해 나가다가 어느 날 문득,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리 만나서 통일됐다고 선포해 버리세’라고 합의하면 그게 우리 식 통일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것이 통일 작업의 완성은 아닙니다. (...)무엇이 2단계, 3단계 통일에 해당할 지도 그때 가서 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변혁적 중도주의는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실천 사상이자 전략이다. 여기서 변혁은 분단체제의 변혁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분단체제의 영향을 고려해서 정치적 차원의 현실적 개혁노선과 경제적 차원의 한국경제 발전 및 한반도 경제권 구축을 추구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만나 폭넓고 튼튼한 중도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는 게 변혁적 중도주의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는 이러한 과정에서 백낙청은 무엇보다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강조한다.

그 동안 백낙청의 이론적 구상과 실천적 해법에 대해 문제제기가 없지 않았다. 이론적 측면에선 사회과학적 엄밀성에 대한 요구가, 실천적 측면에선 통일보다 평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논리가 제시됐다.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분단체제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했다.

분단 시대를 올바로 분석하고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선 과학적 엄밀성 못지않게 현실적 설명력과 규범적 지향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평화와 통일의 불가분성(不可分性)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점에서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분단 상황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을 이론화한 사상으로서의 의의를 갖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분단체제의 미래

지난 4월의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본 백낙청은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시민참여형 통일과정과 남한사회의 실천노선으로서의 변혁적 중도주의, 그리고 어떤 남북연합을 만들고 어떤 사회를 한반도에 건설할 것인가를 한층 구체적으로 검토할 시기인데 현존하는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은 그런 노력의 기본일 터이다.”

정치학자 이남주가 지적하듯, 수십 년에 걸쳐 남과 북의 사회 내부에 뿌리 내려온 분단체제가 하루 아침에 물러난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분단체제의 극복을 희망하더라도 분단체제의 관습에 따르는 발상과 태도가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가져야 할 궁극적 목표가 통일이라는 점이다. 통일을 고려하지 않은 평화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면, 평화를 전제하지 않은 통일은 소망스럽지 않다. 분단에서 평화로, 그리고 통일로 가는 길은 여러 과정들을 거칠 수밖에 없다. 특히 통일은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과 주변 국가들에 대한 외교적 노력이 요구된다.

2018년 올해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광복 이후 우리 사회를 규정해온 분단체제가 크게 변화할 수 있는 중대한 계기가 주어지고 있다. 분단체제 극복은 분단으로 치러지는 대가를 고려한 사실판단의 관점에서 현실적 과제이지만, 분단된 민족이 하나 되는 규범판단의 관점에서도 역사적 과제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통일 시대를 여는 실천적 지혜가 더없이 중요한 시점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김우창의 ‘정치와 삶의 세계’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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