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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靑 블랙리스트 지시 44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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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靑 블랙리스트 지시 444건”

입력
2017.06.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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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를 기획ㆍ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기획ㆍ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지시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적용한 사실이 13일 감사원을 통해 확인됐다. 문화체육비서관실이 심사위원, 예술가 중 특정인을 ‘지원 배제’ 명단으로 추려 직접 하달하면 문체부가 산하기관에 지원 대상에서 이들 명단을 빼라고 압력을 넣는 방식으로 블랙리스트 업무가 이뤄졌다. 특검은 모두 374건으로 파악했으나, 감사원은 444건으로 확정했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문화체육관광부 기관운영감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등 문체부 산하 총 10개 기관은 2014년 3월부터 2016년 하반기까지 문화예술 417건, 출판 22건, 영화 5건 등 총 444개의 블랙리스트를 따로 작성해 심의위원 후보자나 지원사업에서 배제하는 불이익을 줬다. 정광춘 감사원 대변인은 “당초 특검 조사 결과보다 블랙리스트 수가 늘어난 것은 조사 단체가 기존 3개에서 10개로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블랙리스트가 ‘대통령비서실→문체부→산하기관’ 방식으로 지시가 전달됐다고 파악했다. 블랙리스트 업무의 지시자는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으로 명시됐다. 2013년 9∼11월 문화예술계의 반(反)정부 성격 작품에 대한 정부지원이 이슈화되자 비서관실은 문체부에 문제점을 지적했고, 문체부는 2014년 6월부터 특정 문화예술인·단체 지원배제 지시 이행실적 등을 관리하고 이를 청와대에 보고하기 위해 ‘건전 콘텐츠 활성화 TF’를 운영했다. 같은 해 10월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로 문체부에서 특정인 지원 배제 세부전략이 담긴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방안’ 보고서가 작성됐다. 담당 국·실장, 산하기관장들은 지시가 부당한 줄 알았음에도, 또한 부하 직원들이 부당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블랙리스트 업무를 거부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심의위원부터 솎아냈다. 2014년 3월 비서관실이 문체부에 예술위 분야별 책임심의위원 105명 중 19명을 배제하라고 지시했고, 문체부는 다시 예술위 사무처에 이들 19명을 책임심의위원에 선정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예술위는 19명 모두를 2014년도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선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등 2016년까지 모두 66명(책임심의위원 19명, 심의위원 47명)을 예술위 지원사업 심사에서 배제했다.

이후 블랙리스트 작업은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문체부는 2015년 9월 예술위의 ‘공연예술발표공간 지원사업’에 신청한 96개 단체 중 22개 단체를 배제하라고 예술위 사무처에 통보했다. 예술위는 같은 해 10월 친정부 성향의 심의위원에게 지원 배제 명단을 알려줬고, 그 결과 22개 단체 모두 지원에서 배제됐다.

영화기금 지원사업에서는 특정 영화를 상영한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원대상에서 배제되게끔 하기 위해 일부 평가항목의 배점을 조정한 후 심사에서 탈락시켰고, 부산국제영화제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것을 이유로 이듬해, 전년도보다 6억6,000만원 삭감된 8억원만 지원받았다. 출판 분야에서는 공공도서관에 배포하는 도서를 선정하는 세종도서사업 선정 과정에서 22개 도서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으로 감사원은 결론 내렸다.

이번 감사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한문연)의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에도 블랙리스트가 적용된 사실이 새로 확인됐다. 문체부는 2015년 1월, 2015년도 문화공감사업 신청자 839개 공연단체 명단을 청와대에 송부한 후 22개 공연단체 지원 배제 명단을 전달받아 한문연에 위 명단의 단체를 지원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한문연은 심사위원들에게 단체 명단을 알려줬고, 결격사유 없는 19개 단체가 지원에서 배제됐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예술인 복지재단도 예술인들의 활동증명을 심의하는 심의위원 선정에 블랙리스트를 적용해 2014~2015년 2년간 10명이 배제됐다. 심지어 어버이날을 기념해 훌륭한 예술가를 키워낸 어머니에게 주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선정 과정에도 블랙리스트를 적용해 2015년 결격사유 없는 5명이 심사에서 탈락했다.

감사원은 2014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예술진흥 정책 수립, 예술위등 산하기관을 지도감독 한 문체부 담당관 등 현직 실·국장 등 28명 이상에 대해 징계를 요청했다. ‘블랙리스트’로 3명이 징계, 6명이 주의 요청을 받은 문체부 안팎에선 감사원의 이번 징계 요구가 묵은 악재를 털어낸다는 점에서 조직에 약이 될 것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문체부 한 간부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대규모 징계라 내부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라며 “조직을 쇄신할 수 있는 발판이라 여기고 엄중히 받아들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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