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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표적이 됐을 법한 '김정남 발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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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표적이 됐을 법한 '김정남 발언 3'

입력
2017.02.1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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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같은 물건은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말하기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갑작스레 피살당하면서 그의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김정남이 한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했다거나 김정은 체제를 흔들기 위한 모종의 움직임을 계획하다 발각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김정남의 죽음이 일정 부분 예견됐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버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뒤를 잇는 후계구도가 김정남의 이복동생인 김정은으로 굳혀지면서 김정남은 줄곧 김정은의 표적이 돼 왔기 때문이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그의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로, 사실상 가장 유력한 후계자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학하며 자본주의 사회에 눈 떠 줄곧 개혁과 개방을 주장했고, 이 때문에 김정일과 대립하며 후계구도에서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후계구도가 확실해지면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체제와 김정은을 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실제 그의 발언들을 모아보면 김정은에게 그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가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김정남 일본 tv아사히 인터뷰화면 캡처
김정남 일본 tv아사히 인터뷰화면 캡처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2010년)

김정남은 2010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일본 TV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세습체계를 정면 비판했다. 이 때는 사실상 김일성-김정일에 이은 후계구도가 김정은으로 굳혀진 때였다. 당시 북한이 김정은을 공식 후계자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이미 김정은은 국방위 등 주요 요직에서 다양한 정책결정과 인사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김정남은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것은 부친의 결단이며 김정은이 북한 주민의 윤택한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라면서도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라며 북한 체제를 비판했다.

김정남은 김일성-김정일 등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으로, 그가 북한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3대 세습 비판과 함께 그의 발언에서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북한’이란 표현이다. 북한 내부에선 ‘북조선’이나 ‘공화국’이라 통용되는 데다, “북한이라는 단어는 김정일이 가장 싫어하는 표현”(김정일 전속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김정남 이한영(성혜랑 아들) 이남옥(성혜랑 딸) 성혜랑(김정남 모친인 성혜림의 언니).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정일(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김정남 이한영(성혜랑 아들) 이남옥(성혜랑 딸) 성혜랑(김정남 모친인 성혜림의 언니).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의 마오쪄둥 주석조차 세습은 하지 않았다”(2011년)

김정남의 발언은 시간이 지나면서 강도를 더했다. 그는 2011년 1월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근래의 권력 세습은 희대의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라며 또 한 번 북한의 3대 세습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정남은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조차 세습은 하지 않았다”라며 “3대 세습은 과거 봉건왕조 시기를 제외하고는 전례가 없는 일로 사회주의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아버지는 세습에 반대였지만, 국가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당시 김정남을 인터뷰했던 도쿄신문의 고미요지 기자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정남이 “아버지도 원래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억지로 세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를 많이 했다며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북한 주민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고, 북한 주민에게 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정남은 핵무기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핵무기 같은,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갈 수 있는 물건은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핵을 이용해 자국의 힘을 과시하고, ‘핵보유국’임을 헌법에까지 명시하며 핵무기에 집착하고 있는 김정은을 정면으로 비난한 것이다. 하지만 2011년 12월17일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남은 언론에 “신변에 위험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 기본적으로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라며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마카오에서 출국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2007년 김정남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마카오에서 출국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2007년 김정남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37년 절대권력을 젊은 후계자가 어떻게 이어나갈지 의문”(2012년)

위축된 것도 잠시. 그는 이듬해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위를 한층 높여 또 다시 김정은을 공격했다. 김정남은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면 3대 세습을 용인하기 어렵다”라며 “(부친에 의한) 37년 절대권력을 (후계자 교육이) 2년 정도인 젊은 후계자가 어떻게 이어나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3대 세습’ ‘핵무기’ 반대 등으로 에둘러 표현한 예전 인터뷰와는 달리 완전히 김정은을 저격한 것이다.

이는 ‘서자 콤플렉스’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체제 안정에 힘쓰던 김정은의 인내심을 폭발시켰다. 김정은은 2012년 초 북한 노동당 정치국에서 김정남에게 보내는 돈줄을 막았고, 김정은 체제와 갈등하는 것을 꺼린 중국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러시아 주간지 ‘아르구멘티 이 팍티’). 당시 김정남은 마카오의 한 고급호텔에 머무르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자금의 출처는 중국의 정보기관과 북한 노동당 정치국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주간지는 호텔 관계자의 말을 빌어 “김정남이 밀린 호텔비 1만5,000달러를 내지 못해 얼마 전 17층 객실에서 쫓겨났다”라고 보도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김정남과 가장 가까운 고위직이라 할 수 있는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남에게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을 자제할 것”을 충고(2012년 7월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김정남은 언론 인터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김정은의 보복은 멈추지 않았고, 김정남 암살을 줄기차게 시도했다. 실제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2012년에 김정남 암살을 본격적으로 시도했고, 이에 김정남이 김정은에 ‘저와 제 가족을 살려달라’는 서신을 발송하기도 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살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15일 쿠알라룸푸르의 병원 영안실을 떠나고 있는 북한 관계자(오른쪽 첫번째). 쿠알라룸프르=로이터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살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15일 쿠알라룸푸르의 병원 영안실을 떠나고 있는 북한 관계자(오른쪽 첫번째). 쿠알라룸프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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