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청진옥 가족들의 회고
임기 초엔 환경미화원들과 식사
깍두기에 국밥 한 그릇 뚝딱
방문 때 경호원들 맨홀까지 검사
청와대에 종종 포장해 가기도
“경호원들이 두 시간 전부터 와서 옥상까지 지키고 있는 와중에도 식사를 끝마친 대통령은 직원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돌아간 소탈한 분이었다.”
1937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 89번지에 문을 연 해장국집 ‘청진옥.’ 1993년 2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 해 4월 이 곳을 찾아 환경미화원들과 식사를 해 화제가 됐다. 청진옥에서 30년 이상 일해 온 직원들은 김 전 대통령을 “깍두기에 국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운” 소탈한 대통령으로 기억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로도 종종 경호원들을 시켜 청진옥에서 해장국을 사다가 관저에서 먹었다. 그럴 때면 경호원들이 직접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담는 것까지 확인한 뒤 해장국을 들고 청와대로 돌아갔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1997년 추석 즈음에도 이곳을 찾아 노란 봉투에 ‘금일봉’을 넣어 주고 돌아갔다. 올해로 청진옥에서 지배인으로 일한 지 45년째를 맞은 이상주(72)씨는 24일 “정확한 금액은 기억 나지 않지만 그 당시 40명 이상이었던 직원들이 대통령께서 주신 돈으로 다같이 회식을 했다”며 “‘맛있게 잘 먹었다’고 웃으면서 직접 손에 봉투를 쥐어주시던 게 잊히질 않는다”고 회고했다.
71년간 청진동을 지켜온 청진옥은 2008년 8월 재개발 사업으로 종로1가동 르메이에르빌딩으로 터를 옮겼다. 그래도 이씨의 눈에는 당시 2층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며 모든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던 김 전 대통령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씨는 “많이 웃으셨고 소탈했다”며 “사람이 깐깐하면 그렇게 금일봉을 주진 않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1969년부터 이곳에서 요리와 서빙을 해온 박춘금(63ㆍ여)씨도 김 전 대통령을 반찬 타박 하나 없었던 어른으로 기억했다. 박씨는 “일반 손님들과 똑같이 해장국에 깍두기 반찬 하나 준비했는데 반찬 타박 하나 없이 마치 서민처럼 식사하고 가셨다”며 “남긴 음식 없이 싹 비우고 가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2005년 별세한 아버지 최창익씨의 뒤를 이어 3대째 청진옥을 운영하고 있는 최준용(47)씨도 당시 상황을 생생히 떠올렸다. 그 때는 대통령 방문 2~3일 전부터 업주의 신원조회를 하고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와 가게 앞의 맨홀 뚜껑이 열렸는지도 확인할 정도로 보안검사가 철저했다. 골목 전체를 자동차로 막은 채 가게 옥상을 비롯해 주변에서 총기를 소지한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엄호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김 전 대통령은 아버지와 직원들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줬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박춘금씨는 “오늘 점심 때도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다녀온 33분의 손님이 음식을 먹고 갔다”며 “대통령께서 가시는 날까지 우리를 둘러 보고 가시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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