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진하 기자

등록 : 2018.05.28 04:40
수정 : 2018.05.29 12:39

외톨이 직장인 “나 홀로 점심 들킬까봐 화장실서 시간 때워요”

[오은영의 화해]

등록 : 2018.05.28 04:40
수정 : 2018.05.29 12:39

#어렵게 입사한 학교 행정직 1년 다녀

친한 동료가 다른 이와 점심 배신감

대답 건성인 선배에게도 상처받아

구내식당 안가고 사람들 피해 다녀

눈치 보느라 매일 두통에 소화 불량까지

평소 활발한데 회사만 가면 작아져

박구원 기자

입사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직장인입니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후 소화제를 달고 삽니다.두통도 생기고 어깨도 경직돼요.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그냥 회사에 오면 회사 사람들을 피하고 싶어요. 저에게 가벼운 인사 외에 말을 걸어오는 것도 싫어요. 점심시간은 화장실에서 보냅니다. 입사 이틀 만에 회사 분위기가 폐쇄적이고 수직적이라 퇴사를 고민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렵게 입사했기에 1년만 버티자고 마음 먹고 지금은 이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직한 후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아 도움을 요청합니다.

저는 학교의 행정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직무 특성상 팀원 모두가 도서관, 양호실 같이 행정실 외 장소에 흩어져서 일을 합니다. 입사 초기 입사 시기가 비슷한 또래 직원과 친하게 지냈어요. 점심도 같이 먹고, 회사 메신저로 연락도 자주 하면서요. 그러다 함께 점심을 먹는 4명의 그룹이 생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 처음에 친해졌던 동료 직원이 저에게는 연락도 없이, 다른 직원과 먼저 구내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있는 걸 발견했어요. 평소와 달리 제게는 연락을 하지 않았고요. 친하게 지냈던 동료는 저를 보고 당황한 눈치였어요. 저도 묘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이후에 4명이 모두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눠도, 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업무 이야기를 했고 제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걸로 느껴졌어요. 이유도 모른 채 이런 일들을 겪다 보니 저도 상처를 받고 사람들을 멀리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업무상 관계만 유지하고 있어요.

그 후로 점심은 저보다 선배인 대리님, 과장님들과 먹었어요. 그런데 한 대리님이 제가 말을 걸어도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대충 대답하시는 걸 느꼈습니다. 원래 그런 사람인가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더라고요. 물론 회사에 더 오래 다닌 분들끼리 하실 얘기가 있겠지만, 저는 묘한 분위기가 느껴져 이제는 식당에서 점심 먹는 걸 포기했어요. 가끔 언덕을 오르내리며 산책을 하는데, 이렇게 산책하는 직원이 저밖에 없어 경비아저씨들의 눈치가 보입니다. 사내에서 소문을 가장 잘 내는 걸로 알려져 있거든요. 점심시간에 갈 곳도 없고, 혼자 있는 모습을 들키기 싫다 보니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어요. 마음이 편하지도 않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매일 듭니다.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 대인기피증으로 변한 걸까요? 학창시절 좋아하던 남학생들에게 고백했을 때마다 거절 당한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부담스럽게 잘해주며 마음을 표현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대학입시 때도 사람들을 피했던 경험이 있어요. 외국어고를 졸업해서 대학에 대한 부모님과 저의 기준이 높았어요. 삼수까지 했습니다. 혼자 동네 독서실에서 공부했는데 생활이 엉망이었어요. 가족들 몰래 하루 종일 미국 드라마를 보고, 식탐이 커져만 갔어요. 당연히 성적은 더 떨어졌고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편입을 준비했습니다. 대학교 1~2학년 때는 스스로 벽을 만들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원하던 대학에 편입학 한 후에는 자신감을 회복해, 여러 동아리에도 참여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제가 결정을 혼자서 내리지 못하고, 가족들 특히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고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아버지의 결정을 따른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부모님은 저와 동생이 어릴 때부터 교육에 아끼지 않고 투자했어요.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오면, 점수보다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이야기하고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함께 의논했습니다. 중학 생 때 아버지는 제가 커서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하지만 아빠의 생각이지 강요하는 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는 짜증과 무시로 일관합니다. 매번 자식들 앞에서 아버지에게 무시당하고 명령하는 말투를 듣고 있는 어머니가 이러다가 우울증이나 화병이 나진 않으실지 정말 걱정이에요.

저도 회사 밖에서는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히 요구할 것은 하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눈치 보지 않고 합니다. 이상하게 회사에만 가면 작아지고 긴장하고 눈치를 보게 됩니다. 심지어는 8년 만에 해외에 사는 이모를 만났는데, 저에게 마지막으로 “눈치 보지 말고 살아, 너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아”라고 말해 놀랐습니다. 이 회사의 분위기가 저를 좀먹는 건지 제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신지희(가명ㆍ28ㆍ회사원)

#거절당하기 전에 아웃사이더 자처

외부상황보단 스스로가 힘들게 해

아빠, 자녀에겐 자상하나 부인은 무시해

이상한 통제가 대인관계에 악영향 끼쳐

타인에 휘둘리지 않는 당당함 갖길

매일 ‘잘했어’ 스스로 확신 갖는 연습부터

지희씨,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함께 협동하고 의지하고 도와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함을 느끼기도 해요. 지희씨가 느끼는 괴로움이 인간관계에서 오기 때문에 그 고통은 정말 클 거예요. 매일 마주치는 회사 사람들이 어려워 위축이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어색함과 이질감으로 힘들어 하고 있어요. 눈을 떠서 잠에 들 때까지 힘든 그 심정을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지희씨는 심성이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인간관계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걸까요? 사람은 한 번 대인관계 방식을 습득하고 나면,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지 않는 한 외부 상황의 영향을 쉽게 받지 않고 습득된 대인관계 방식의 범주 내에서 갈등과 문제를 처리하지요. 자신이 습득한 나름대로의 방식을 비교적 일관되게 적용해 나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희씨의 대인관계 방식은 일관되기 보다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어요.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만들어 완전히 폐쇄적으로 지냅니다.

지희씨를 힘들 게 하는 건 외부상황이 아니라 지희씨의 내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지희씨를 힘들 게 하는 외부상황은 모호합니다. 지희씨도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지희씨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거나, 드러내놓고 업무상 불이익을 준 사람은 없었어요. 지희씨가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게 아니에요. 구체적인 사건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상대방에게 나한테 왜 그러냐고 따질 수도 없는 문제라는 의미예요. 그런데도 지희씨는 소화가 잘 되지 않을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어요. 지희씨 마음 속 내면의 문제를 명료화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이직을 해도 비슷하게 일어날 수 있어요.

지희씨는 거절 당하는 것을 특히나 힘들어 하는 사람 같아요. 친하게 지내던 회사 동료가 지희씨에게 미리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밥을 먹은 것을 거절이라고 느꼈어요. 직장 동료가 실제로 지희씨를 거절한 것이든, 지희씨 느낌 상 거절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든, 그 이후에는 사고의 모든 회로가 그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여요. 직장 동료가 자신을 따돌렸고, 직장 선배도 지희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바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결론으로 이어지는 동안 지희씨는 상대방에게 직접 사실 확인을 해보지 않았어요. 지희씨가 느끼는 거절은 실제 거절이 아니라 자신에게 덜 친절하게 대하거나, 적극적인 호의를 표하지 않을 때가 아니었는지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타인의 평가뿐 아니라 지희씨 스스로를 인정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희씨는 삼수를 하면서 생활습관이 많이 망가졌다고 했어요. 이때 받은 스트레스의 정도가 매우 크다는 뜻이에요. 누군가 대학입시를 이유로 지희씨를 비난한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한 거예요. 지금 이 상태의 나 자신이 꼴 보기 싫고 용납도 안 되는 것이지요. 대학교 1학년 때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된 건 왜 일까요? 단순히 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해요. 마음속 더 깊은 곳에 지희씨 스스로 느끼는 수치심이 있었어요. 편입을 한 후, 전에 다니던 학교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지희씨는 이 학교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싶어했습니다. 마치 가까이 지내면 내 자신이 그들에게 물이 들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요.

프로이트는 만 나이로 한 살 반에서 세 살 사이 아이들이 “내가 할 거야”라는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할 때 위험한 일이 아니면 그 자율성을 펼치게 해야 제대로 발달할 수 있다는 이론을 펼쳤어요. 이때부터 자율성을 제대로 발달시키지 못하면 수치심과 의심이 생깁니다. 정신성발달 이론이라고 불러요. 자신의 뜻대로 행동한 경험이 적은 사람은 자기 신뢰감과 자기 확신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지희씨는 비교적 화목한 가정에서 잘 자라왔지만, 이 부분이 부족합니다. 마치 내면에 굳건한 자기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원인을 지희씨 아버지의 과도한 통제가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지희씨가 당황스러울 거예요. 지희씨와 아버지는 가까웠고,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가 지희씨의 의견을 잘 들어줬다고 생각할 거예요. 지희씨 아버지는 친절하고 자상하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자녀들을 꼼짝 못하게 통제하는 분이었어요. 친절하지만 과도한 통제자였다고 생각돼요. 아버지는 대신 어머니에게는 공격적으로 과도하게 통제했지요. 아내와 딸을 대하는 방식이 반대인 것으로 보이지만 기본은 같아요. 상대방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입니다. 차라리 딸이 ‘아빠가 싫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아버지가 딸에게도 드러내놓고 통제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지희씨 감정은 혼란스럽지 않았을 거예요. 화라도 내고 동생과 같이 불평도 하고 험담도 하면서 감정도 해소하고 공감대도 이루었겠죠. 물론 지희씨 아버지의 양육방식도 사랑의 한 형태였을 겁니다. 아버지에게 화내거라 원망하라는 의미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지만, 공격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으나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아버지의 ‘친절하고도 과도한 통제’가 지금 지희씨가 겪는 대인관계에 뿌리깊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람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낸 자신만의 건강한 기준이 있어야 해요.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아도 ‘날 싫어할 이유가 있나?’ 되물을 정도의 당당함과 자기 확신이 지금 지희씨에겐 없는 것 같아요. 갑자기 아버지와의 갈등을 원인으로 짚는 것이 지희씨에게 혼란스러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지희씨의 인생을 격려하고 응원하기 때문에 지희씨가 앞으로 인생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는 지희씨가 현재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직해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운이 좋아서 무난하게 지낼 수도 있지만 그건 정말 운이 좋기 때문일 거예요. 지희씨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를 살펴봐야 해요. 물론 사람이 직장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지희씨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다면 그만두는 게 맞아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 지희씨가 자율성을 키우고 수치심을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지희씨의 어렸을 때부터 발달 단계를 봤을 때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문제는 아니에요. 한 시기의 빠진 계단을 채워 넣고 다음 계단에 발을 디딜 수 있으면 됩니다. 지희씨는 가치관이 삐뚤어진 사람도 아니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그러니 지희씨가 원하는 대로 해보세요. 어떤 결정을 내려도 전혀 문제될 게 없어요. 점심시간에 산책하고 싶으면 하세요. 다른 사람이 반겨주든 말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으면 먹으면 돼요. 누가 뭐라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지희씨는 거기서부터 시작 해야 해요. 그냥 해 보세요. 그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희씨 결정은 절대 이상할 리가 없어요. 그러니 용기를 내보세요.

그리고 매일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심어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만약 식당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민망하게 하더라도, ‘오지 말걸’ 후회하지 말고 ‘그래, 오늘은 내가 식당에 오고 싶어서 온 거야, 잘했어’라고 자신에게 확신을 줘야 해요. 의식적으로라도 이렇게 연습을 해야 합니다.

지희씨는 똑똑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인간관계에는 학교 공부와는 조금 다른 상식이 필요합니다. 지희씨는 이 점을 이해하고, 더 튼튼한 내면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조금씩 자신을 믿는 지희씨가 되길 바랍니다.

정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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