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2년이 확정된 한명숙 전 총리가 오늘 수감된다. 전직 총리라도 불법한 돈을 받으면 죄값을 치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이라는 그의 말에 100% 공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 기자는 한 전 총리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친분도 없지만 한명숙 사건을 현장에서 지켜본 인연은 있다. 1차 수사가 시작된 2009년 11월부터 2차 수사로 두 번째 기소된 2010년 7월에 법조 현장에 있던 기자가 보기에 이 사건은 수사착수부터가 유감이다.
2009년 11월 어느 저녁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어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수사를 했고, 참여정부 실세들인 J, K, H에게 돈을 준 진술이 나왔다는 얘기였다. 여러 채널로 시도했지만 제보가 쉽게 확인될 리 만무했다. 한 인사는 말해 주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이라고 했다. 세 사람은 이전 정권의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핵심 요직을 거친 거물들이었다. 어려운 확인 과정을 거쳐 같은 달 13일 본지 1면에 J, K, H의 이니셜이 박힌 기사가 나갔다. 이후 ‘카더라 방송’이 난무하는 가운데 J와 가까운 의원은 밥을 사며, J는 검찰 진술에 빠졌다고 설득해왔다. 또 검찰 인사는 결국 H만 수사할 수밖에 없고, 그리 정리됐다는 얘기를 전했다. 아무래도 정치적 기반이 강한 J, K의 수사는 역풍이 강할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H는 쉬운 상대였다. 마침내 12월 초 보수언론에 H의 실명이 공개됐고 그렇게 1차 5만달러 수수사건은 본격화했다.
하지만 검찰 의지대로 사건이 전개되진 않았다. 돈 준 이에 대한 회유와 편법, 부실 수사가 언론에 폭로되고, 그의 법정 진술마저 오락가락했다. 궁지에 몰리던 검찰은 1심 무죄선고가 임박한 시점에 2차 카드, 이번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9억원 수수 사건을 꺼내들었다. 공교롭게 여당조차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한 전 총리를 돕는 수사란 비난을 쏟아냈다. 수사를 잠시 중단하며 이를 악문 검찰은 9억원 중 수표 1억원이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금으로 사용된 증거를 찾아내며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번에 대법원이 유죄 판단에 결정적인 직접 증거라고 평가한 부분이다.
그 해 6월 16일 이 사실이 본보에 보도되자 검찰 최고 수뇌부는 기자에게 비공개 면담을 요구했다. 취재원을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는데, 당시 비주류에 속한 그가 수사와 지휘라인을 믿기 힘들어 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검찰 내부에서 정치적 계산을 달리하는 이들이 수사정보를 쥐고 흔들던, 정치 검찰의 단면이기도 했다. 그는 몰랐겠지만 사실 1억원 수표의 피의사실은 이미 보수 언론에 흘러가 있었다. 이렇게 진행된 2차 수사는 기소까지 4개월이 걸렸고,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5년을 기다려야 했다.
사건에는 그 시대 텍스트가 투영되어 있다. 한명숙 사건에도 이 시대 검찰수사, 정치인 금품수수, 사법부 판단 같은 텍스트가 담겨 있다.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았을 지에 초점을 둔다면 그도 돈이 없는 정치인인 이상 어떤 돈을 받았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어떤 돈을 받았다고 해서 그가 유죄이냐는 별개 문제다. 유죄는 법정에서 위법 사실이 적법한 절차로 확인되고 법리적으로 인정되어야만 하는 사안인 때문이다. 한 전 총리의 유죄가 대법원에서 최종 선고되고도 뒤가 개운치 않은 것은 그런 데에, 특히 수사과정에 문제가 있는 탓이다. 한가지 이번 사건에서 얻은 교훈이라면 검찰의 타깃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한번 수사의 도마에 오르면 헤어나기 힘들고, 시간을 끌어도 통하지 않는 검찰의 힘을 이번 사건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검찰이 승자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그 힘의 정당성을 많이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태규 사회부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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