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정 기자

등록 : 2017.05.20 09:00
수정 : 2017.05.23 07:43

[인물 360˚] “다시 태어나도 군인” 피우진 스토리

등록 : 2017.05.20 09:00
수정 : 2017.05.23 07:43

피우진 신임 국가보훈처장이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날 두 시간 밖에 못 자면서 가사를 열심히 외웠어요.” 18일 열린 37주년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피우진(61) 신임 국가보훈처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외우느라 밤을 지샜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박승훈 전 보훈처장의 반대로 제창되지 못했던 이 노래는 이날 예비역 중령 출신 신임 보훈처장의 씩씩한 목소리로 9년 만에 울려 퍼졌다.

‘1세대 여군 헬기조종사’인 피 처장은 30년 7개월간의 군 복무 동안 여군의 역사를 새로 써 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군 내부의 부조리에도 쉽게 눈 감지 않았던 그는 이제 신임 보훈처장으로서 또 다른 역사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계급 안에선 평등할 것이다’ 끊임없이 도전한 군인

피 처장은 1979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청주대 체육학과를 나와 교사로 일했던 그는 우연히 여군사관후보생도 모집 광고를 접했다. 광고에선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우대하고 특기를 발휘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써 있었다. 글귀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군대는 외모나 학벌ㆍ남녀차별 같은 것 없이 계급 아래에 평등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아버지의 대를 잇는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그 길로 피 처장은 서울여군훈련소에 입소했다.

군 생활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자’는 피 처장의 좌우명에 딱 맞았다. 헬기 조종술을 배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복무기간 동안 1,300시간 넘게 비행한 그는 ‘생애 처음으로 육중한 기체를 공중으로 떠올리던 순간의 감격과 흥분’이 늘 생생하다고 말했다.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고생하며 생기는 ‘일체감’ 역시 피 처장이 군 생활을 사랑한 이유였다. 그렇게 더 좋은 군인이 되고자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던 피 처장은 12항공단 205항공대대 중대장, 11항공단 본부 부단장, 항공학교 학생대장 등을 역임했다.

군 생활 당시 피우진 보훈처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당시 피 처장이 생각한 ‘계급 안의 평등’은 환상에 불과했다. 그가 군에 입대할 당시엔 ‘여군’ 훈련소가 따로 있는 것은 물론 여군단도 따로 있던 시절이다. 그가 입대한 뒤 10년 뒤인 1989년에야 기혼 여군의 출산이 허용됐고, 1985년까지는 여성 부사관의 결혼은 금지됐다.

이런 상황에서 피 처장은 언제나 ‘군인’이 아닌 ‘여자’를 보는 시선에 맞서야 했다. 피 처장이 사관후보생에 지원해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치마 정장이 없어 바지를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면접관 장교들은 “왜 치마를 입지 않았냐”고 나무라며 바지를 걷어보게 해 그의 다리 흉터와 각선미를 체크했다. 이후 훈련생이 되어선 ‘파마머리를 하고 내무반 밖에서 꼭 화장을 하라’는 요구도 뒤따랐다. ‘여군 사관 후보생들은 우아하게 보여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임관 뒤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신체 검사를 받을 때면 남군들은 “여군 조종사 중 누구 가슴이 더 크냐”며 수군거렸다. 여군단이 해체되던 1989년, 육군본부의 인사참모가 여군단 주요 간부들을 소집해 ‘여군병과 해체 후 여군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전하며 “앞으로는 치마 폭이나 눈물에 기대지 말고 초콜릿을 원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피 처장은 이 자리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한다. 그 동안 여군의 능력이 아닌 ‘치마’만 요구한 것은 군이었기 때문이다.

피 처장이 1988년 대위 시절 ‘여군 하사관을 술자리에 보내라’는 군사령관의 접대 명령에 맞선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도저히 부하를 술시중을 들게 하라는 명령을 따를 수 없었다. 예쁜 사복을 입혀 보내라는 요구도 용납하기 어려웠다. 피 처장은 고민 끝에 부하에게 전투복을 입게 한 뒤 ‘명령하신 병력을 준비했다’며 술자리에 보냈다. 그 일로 보직해임을 당했지만, 피 처장은 굴하지 않고 군에서 일어나는 성폭력과 차별에 맞섰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2006년 군 생활 동안 겪은 성차별ㆍ성폭력 실태를 폭로하는 자전적 에세이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펴내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남성 군인과 똑같이 가슴이 없다는 게 문제될 줄은 몰랐다”

피 처장은 성차별은 물론 군 인권 전반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상이군인의 권리와 명예에 큰 영향을 주는 변화도 일궈냈다. 유방암 병력을 이유로 강제전역 명령을 내린 군에 직접 맞서면서다.

피 처장은 2002년 왼쪽 가슴에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 그는 병을 이겨내기 위해 수술을 받으면서 다른 한쪽 가슴까지 함께 절제했다. ‘여성의 상징’은 군인 피우진에게 늘 불편했기 때문이다. 늘 꽉 조이는 속옷을 입고 비행 전 가슴에 압박 붕대를 칭칭 감았던 걸 돌아보며, 그는 “유방을 절제하고 홀가분하게 남은 군 생활을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병을 극복한 뒤 그는 후 4년간 항공학교 학생대장직을 무리 없이 수행했다.

걸림돌은 2005년 부대장이 바뀌면서 또 다시 불거졌다. 새삼스럽게도 과거 수술 이력이 문제가 된 것. ‘암 병력 또는 유방절제술을 받으면 전역대상이 된다’는 군인사법상 ‘심신장애 전역기준’ 때문이었다. 체력검정결과 1급에 임무수행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의사 소견서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군은 규정을 따를 것을 요구했다. 평생 가슴 때문에 차별 받았던 그가 이젠 남성 군인들처럼 가슴이 없다는 이유로 전역 당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결국 2006년 11월 강제 전역을 당한 피 중령은 복직을 위한 싸움에 나섰다. 전투에서 점점 힘이 아닌 전술과 조직관리 등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신체 일부가 없다고 곧바로 전역해야 하는 규정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피 처장은 두 차례의 행정소송 끝에 2년 여 만에 복직할 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씨가 유방 절제술을 받았으나 경과가 양호하고 정기 체력검정에서 모두 합격 판정을 받아 현역 복무에 장애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렇게 2008년 군으로 돌아온 피 처장은 2009년 항공학교 교리발전처장을 끝으로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2009년 피우진 처장 전역식. 미디어몽구 유튜브

“저는 여전히 군을 사랑하고, 우리 군대를 믿습니다”

복직 판결이 내려진 뒤 피 처장은 “군대 내 인권침해를 고발하고, 여군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일들을 꾸준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복직을 위해 싸운 경험이 그에겐 군인 권리를 생각하는 큰 계기가 된 것이다. 여군 성차별 실태를 폭로하는 자전에세이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펴낸 것도, 복직 재판 중이던 2008년 진보신당에 입당해 총선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피 처장이 당시 출마를 결정한 것은 군생활 동안 군인의 의무는 강조해도 권리는 보장하지 않는 데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때마침 그는 국정감사에서 복직 문제를 다뤄준 인연으로 알게 된 노회찬 의원의 제안으로 공천을 받았다. 피 처장은 선거운동 당시 비행 때 두르던 ‘빨간 마후라(스카프)’를 둘렀다고 한다. 그의 행보가 “군이 문제를 함께 극복하는 조직이 되길 바라는” 애정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는 일화다. 최근까지도 그는 여군 인권향상을 위한 예비역 여군 모임인 ‘젊은여군포럼’ 대표로 활동해왔다.

그림 4 2008년 진보신당 비례대표로 출마했던 피우진 처장은 헬기 조종시 썼던 빨간 스카프를 늘 목에 걸고 나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전 정부에서 국가보훈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논란이 됐다. 전 보훈처장은 ‘임을위한행진곡’ 제창에 반대한 것은 물론, 한국전쟁 기념 시가행진에 광주민주화운동 진압부대를 참여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2015년에는 ‘나라사랑 교육과 건전한 국가관 확립’에 집중하는 ‘나라사랑 정신 계승발전 예산’으로 100억원을 받기도 했다. 국가유공자 및 제대군인의 보호라는 본업보다 다른 곳에 더 신경을 쓴 것이다.

그런 보훈처를 이어받는 피 처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 밖에 없다. 보훈처장으로 임명되면서 그는 “보훈이 곧 그 나라 안보의 과거이자 미래”라며 “보훈가족이 중심이 되는 따뜻한 보훈정책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보훈 가족이자 누구보다도 군 인권에 힘써온 신임 보훈 처장에게 국민들은 주목하고 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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