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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학교 밖에서 스승 만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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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학교 밖에서 스승 만난 아이들

입력
2018.05.15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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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가정형 위센터 ‘경청과 환대’

학업중단 위기 학생들 기숙 생활

교사 8명, 학생 7명에 눈높이 수업

“통제 대신 대화…신뢰 쌓여 변화”

대전 가정형 위센터 '경청과 환대'의 학생들(앞줄)과 선생님들(뒷줄)이 14일 대전 판암풋살장에서 직접 맞춘 유니폼을 입고 수업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청과환대 제공.
대전 가정형 위센터 '경청과 환대'의 학생들(앞줄)과 선생님들(뒷줄)이 14일 대전 판암풋살장에서 직접 맞춘 유니폼을 입고 수업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청과환대 제공.

“그날은 정말 담배 안 피웠거든요. 그런데도 무조건 제 잘못이라고 하니 억울했죠.” 강현석(15ㆍ가명)군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사고뭉치’였다. 가출해서 길거리 생활을 하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훔치기를 여러 번.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골목이나 옥상에서 친구들과 담배를 피웠다. 선생님들은 ‘전적’이 화려한 그를 줄곧 의심했다. 올해 초 강군이 친구와 함께 점심시간에 학교를 빠져나갔을 때에도 교감선생님은 그가 담배를 피워놓곤 딱 잡아 뗀다며 몰아붙였다. “아무도 제 말을 안 들어주고 답답해서 자퇴하겠다니까 위(Wee)센터에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강군은 그렇게 지난달 대전의 가정형 위센터인 ‘경청과 환대’에 입소했다. 위센터는 학교폭력이나 학습부진, 부적응 등 다양한 이유로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학생들이 3~6개월 가량 함께 기숙 생활을 하는 곳이다. 현재 교사 8명이 남학생 7명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며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수업하고 상담한다. 14일 강군을 만난 캘리그래피 수업에서도 이명훈 센터장은 강군의 장난기 어린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쓰고 싶은 문장을 직접 고르도록 천천히 이끌었다.

센터 교사들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사람, 특히 어른을 믿고 좋은 관계를 나눌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감정표현이 서툰 아이들이라 권위적인 태도나 무심한 말에 쉽게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지난달 입소한 오준수(15ㆍ가명)군은 학교 담임교사가 자신만 싫어하고 청소를 몰아서 시킨다고 생각했고 결국 심한 말을 하며 대들다 센터에 오게 됐다. 안 좋은 기억에도 불구하고 오군은 센터 교사들만큼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고 말한다. “학교에선 이유도 모르고 혼났는데 여기서는 뭘 잘못했는지 설명해준다”는 이유다. 목공으로 나막신을 뚝딱 만들어내는 손재주도 이곳 선생님들 덕에 발견했다. 이건우 실장은 “센터 교사들도 사람이니까 아이들을 혼내기도 한다”며 “그러나 어른의 입장에서 무조건 학생을 통제하는 대신 마주앉아 대화하고 신뢰를 쌓는 게 학교와의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모난돌’들과 부딪치며 쌓인 정(情)은 교사들의 마음에도 알알이 박혔다. 사립고에서 일하다 온 이대화(35) 교사는 ‘연봉은 반토막이 났어도 보람은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예전엔 그저 가르치는 역할이었지만, 센터에서는 학생들이 기댈 마지막 기둥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학업 스트레스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던 현성(가명)이라는 중3 학생이 왔었습니다. 처음 본 모습은 영락없는 노숙자였죠. 아이에게 ‘너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고 끊임없이 말해줬고 결국 1년 만에 센터를 졸업해 씩씩한 고등학생이 됐습니다.” 웃으며 현성이와의 추억을 말하던 이 교사의 눈시울엔 금세 눈물이 고였다.

2010년 센터가 문을 연 뒤 매년 20여명의 학생들이 센터를 거쳐갔다. 열 명 중 일곱은 학교로 돌아갔고, 검정고시를 선택한 학생들도 있다. 어떤 길을 가든 센터 교사들은 언제나 그들에게 등불이다. 이 교사는 “졸업한 친구들이 스승의 날이라며 연락해 ‘선생님 덕분에 이만큼 컸다’고 말할 때가 가장 뿌듯하다”며 “학생들이 그저 평범하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전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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