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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없는 공부야 놀자” 교과서 펴는 직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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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없는 공부야 놀자” 교과서 펴는 직장인들

입력
2016.12.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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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시험’ 벗어나자…

방정식 풀려고 中 교과서도 뒤져

지문 꼼꼼히 읽고 지식 쌓아 유익

“성적 부담이 없으니 몰입도 잘돼”

한국식 교육문화의 반성

공부를 경쟁 위한 도구로만 간주

“순수한 지식탐구 여건 마련된 것”

회사원 이현재(36)씨는 얼마 전부터 퇴근 후 귀가하면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는다. 두 달 전 중고로 구입한 ‘수학의정석1’을 펼친 뒤 연필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노트에 문제를 푼다. 그에겐 큰 즐거움이다. 논리적 사고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심심풀이로 시작했다가 수학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차방정식 한 문제를 풀기 위해 중학교 참고서까지 뒤지지만 정답을 찾았을 때 쾌감이 쏠쏠하다. 이씨는 26일 “학창시절엔 자타공인 ‘수포자(수학포기자)’였으나 뒤늦게 문제 풀이의 재미를 알았다”라며 “성적 걱정이 없어 몰입도 훨씬 잘 된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교과서를 다시 펴고 있다. ‘셀러던트(Salaried man+Student)’라는 신조어가 있을 만큼 학업에 매진하는 직장인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기존 공부가 승진과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한 자기계발 성격이 강했다면, 요즘에는 오직 삶의 만족도를 높이려 공부와 책에 탐닉한다.

‘공부=시험’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늦깎이 학생들은 학창시절 미처 몰랐던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고 있다. 고교 비문학 문제집을 취미로 풀고 있는 정유진(30)씨는 “시험이었다면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 풀기도 빠듯해 글의 주제도 기억 못했겠지만 이제는 지문을 꼼꼼히 읽으며 경제나 국제이슈 등 관련 지식까지 쌓게 돼 유익하다”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처럼 시사 이슈를 계기로 공부에 뛰어든 이들도 있다. 20여 년 전 고교 졸업 후 책과 담을 쌓았던 이모(48)씨는 하루 두 시간씩 한국사 공부에 열중한다. 교재는 대학생 딸이 추천한 교양서들이다. 이씨는 “왕 이름만 달달 외우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다 보니 역사 왜곡처럼 역사 너머의 역사에 둔감했다”고 전했다.

과거에 비해 알기 쉽게 풀어낸 학습 콘텐츠는 성인들의 만학을 돕고 있다. 천문학을 공부하는 차모(28)씨는 EBS 무료강의 사이트에 있는 고교 ‘5분 과학탐구’ 강좌를 애용한다. 처음엔 과학 교양서적이나 다큐멘터리로 천문학에 발을 들였으나 실업계 고교를 나와 기초가 부족한 그에겐 내용이 어렵기만 했다. 차씨는 “중고등학교 참고서는 수준별로 정리가 잘 돼 있고 기초과정을 다시 배워도 눈치 볼 필요가 없어 좋다”고 했다.

실제 올해 20, 30대의 중ㆍ고교 참고서 구매율은 29.4%로 10대(10.9%)를 압도한다. 40, 50대(59.7%)가 대부분 자녀의 참고서를 대신 구입하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비중이다. 역사분야 베스트셀러에도 ‘설민석의무도한국사특강’ 만화 ‘조선왕조실톡’ 시리즈 등 쉬운 역사공부를 지향하는 학습서가 다수 포진해 있다.

공부를 취미로 삼는 세태는 역설적으로 학업 성취를 성공의 잣대로 여겨 온 한국식 교육문화를 반성하는 분위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릴 때부터 입시를 성공한 인생의 1차 관문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강해 성인이 돼서도 공부를 경쟁에 필요한 ‘도구’로 간주하고 있다”라며 “남과 비교 당하지 않고 순수하게 지식을 탐구하면서 삶의 여유를 찾으려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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