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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촛불, 탄핵은 시작일 뿐이다.

입력
2016.12.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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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대통령의 파면으로 마무리된다면 역사는 촛불을 패자로 기록할 것이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런 촛불은 그저 지나가는 폭풍일 뿐이다. 폭풍은 아무리 거세도 잠시 몸을 낮추고 숨죽여 기다리면 지나간다. 폭풍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이전과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난한 노인은 몇천 원을 벌기 위해 굽은 허리와 불편한 다리로 폐지가 가득한 손수레를 끌고, 곧 닥칠 추운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운 좋게 돈과 힘 있는 부모를 만난 아이는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하고 좋은 직장을 얻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부모를 만난 아이는 숙명처럼 어렵게 공부를 마쳐도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한다. 아주 가끔, 백에 하나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99.9%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그저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 뿐 다른 선택은 없다.

기성 정치가 아닌 시민의 힘으로 패악 무도한 대통령을 탄핵했지만, 촛불이 대통령의 파면으로만 마무리된다면 이런 사회는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역사로 가득 차 있다. 멀게는 4ㆍ19혁명으로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장을 열었지만 보수 야당의 집권으로 이어졌고, 이마저도 헌법 질서를 유린한 군사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가깝게는 1987년 6월 시민이 주도한 민주항쟁으로 군부독재를 끝냈지만, 대통령에 눈이 먼 보수 야당은 분열했고, 5ㆍ18 광주학살을 주도한 원흉의 재집권으로 이어졌다.

시민은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린 주체였지만, 불의한 정권이 몰락한 이후 시민은 항상 배제되었다. 세상은 다시 기성 정치의 놀이터가 되었다. 2016년 12월 오늘, 시민의 촛불이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으로만 그친다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광장에서 시민이 촛불을 들고 있을 때 기회주의와 당리당략에 빠진 새누리당과 헛발질과 우유부단함을 반복했던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분명히 보았다. 시민은 이제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을 넘어 한국을 민주, 평화, 복지가 공존하는 사회로 개혁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

개혁의 목표는 분명하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든 모든 아이는 동등한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재벌과 노동자의 자녀가 동등한 교육과 취업기회를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일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해체하기 위해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고, 독립적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해야 한다. 더 나아가 검사장급 이상 직급에 대한 직선제를 도입해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시민이 대통령, 국회의원 등을 소환하고 파면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실질적 진전이 있어야 한다. 수출주도형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수가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김무성 의원이 우려했던 촛불 이후 민중혁명이 이런 것이라면 나는 민중혁명을 소망한다. 더욱이 총체적 개혁이 요구되는 이 절박한 시기에 국회가 권력 분점을 논의할 개헌특위를 구성하겠다는 것은 촛불에 대한 반역이다. 시민은 87년 개헌을 기억하고 있다. 개혁이 먼저이고 개헌은 그다음이다. 야권 또한 친문과 비문을 가르며 합종연횡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대선은 개혁적 실천의 결과이어야지 목적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차기 대통령은 촛불 혁명이 부여한 개혁의 역사적 사명을 성실히,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촛불 혁명이 부여한 개혁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대선후보 그 누구도 시민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 2017년 대선은 차악이 아니라 최선을 선택하는, 촛불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그날이 올 때, 촛불은 역사의 승자로 기록될 것이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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