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준호 기자

등록 : 2017.01.25 14:00

소수민족 500명ㆍ말 100필 출연… 차마고도가 한바탕 무대로

[실크로드 천일야화] 29. 설산을 배경 삼은 노천공연 ‘인상가무쇼’

등록 : 2017.01.25 14:00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리장 야외공연장에서 인상가무쇼가 펼쳐지고 있다.

“남편이 열 다섯이랍니다.” “그렇게 어려요?” “아니, 열 다섯 명이라구요.” “…….” 중국 윈난성 리장에서 말로만 듣던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의 ‘인상가무쇼’를 보면서 내 귀에 들어온 말은 이것 뿐이었다.

모계사회인 나시족 계통의 모쒀족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모쒀족 사회에서는 아비를 아비라 부를 수 없는 홍길동 천지였다. 눈 맞은 여인의 집은 담장을 넘어서만 들어갈 수 있고, 혼례를 치르고도 ‘삼촌’의 칭호로만 그 집에서 살 수 있었다. 여성들은 삼촌과 혼인의 의무를 지킬 이유가 없었고, 그 삼촌이라는 작자도 딴 여인이 생기면 집 나가면 그만이었다. 아기는 성년 때까지 할머니 재산이었다.

지구 끝까지 하루면 날아가는 21세기에도 모쒀족의 문화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일부일처제로 전환한 모쒀족도 많지만 지금도 다부일처제가 전혀 흠이 되지 않는 곳이 리장이었다. 하긴 중국 56개 민족 중 52개 민족이 자신의 문화를 지키며 사는 곳이 윈난성이니 별의별 풍속이 널려있는 것도 당연했다. 타이족은 물뿌리기와 대나무 축제, 이족은 횃불 축제로 알려져 있다.

2002년 중국 남부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창궐했을 때 누가 윈난성 마오(苗)족을 주범으로 지목한 적도 있었다. 소림 무당 화산 공룡 등과 함께 무림에서 독극물을 잘 사용했던 마오족으로부터 사스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얼토당토 않은 말이었지만 솔깃했다.

인상가무쇼는 차마고도의 주인 마방과 가족들의 얘기였다. 해발 3,100m 노천공연장에서 5,596m의 옥룡설산 만년설을 배경으로 펼쳐진 공연에는 10개 소수민족 500여 명의 배우와 100필의 말이 원형의 객석 뒷편까지 내달렸다.

한 명의 배우가 갈 지(之)자 형태의 무대에 올라도 꽉 찬 것 같고, 500명이 모두 함성을 질러도 한 점 바람같이 느껴지는 것은 이 공연장만의 매력이기도 했다.

“차(茶)는 피와 살, 생명이다”는 말은 적어도 윈난과 쓰촨, 티베트인에게는 농담이 아니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원의 칼바람을 맞으며 산소부족에 적응한 티베트인이지만 야채는 없이 야크 젖과 육식 위주의 식생활만 하다보니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를 한 방에 해결한 것이 차다. 토번으로 알려진 티베트는 그렇게 차를 갈구했다.

중국이 필요한 것은 말이었다. 이민족과 숱한 전쟁을 치러야 했던 중국에게는 안정적인 말 공급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윈난성과 쓰촨성의 차를 티베트로 보내 말과 교환하는 교역을 국가차원에서 실시했다. 북송 때는 한 해 1,000만 근의 차와 1만5,000필의 말이 교환되기도 했다.

몽골 대초원의 말을 들여온 원나라를 제외하고는 중국의 모든 왕조가 티베트 교역에 열을 올렸다. 사무역은 죽음의 형벌을 면치 못했지만 위험이 따르는 곳에 이익도 큰 법이었다. 그렇게 차마고도는 윈난과 쓰촨에서 티베트,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과 인도,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면서 실크로드와 하나가 됐다.

옥룡설산에 오른 여행객들이 해발 4,680m 지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차마고도 얘기를 빼면 인상가무쇼가 생겨날 수가 없는 곳이 리장이었다. 기왕 옥룡설산의 허리까지 왔으니 오를 수 있는 만큼 더 오르고 싶었다. 해발 3,356m에서 케이블카에 올랐다. 고산병에 걸린 고소미 과자 봉지가 곧 터져버릴 것 처럼 빵빵하다. 흰구름이 발아래 떠다니고, 바람을 맞은 만년설이 하얀 파편을 흩뿌린다. 케이블카는 빙천공원 4,506m 지점에 섰다. 이제부터 4,680m 전망대까지는 두 다리와 허파로 올라야 했다. 다리 힘이야 남아돌았지만 허파가 견뎌낼 지는 두고볼 일이었다. 여행객들이 산소통을 들고도 헥헥거린다.

누구는 히말라야도 무산소 등정했다는데, 쓸데없는 오기가 생겼다. 일단 발부터 뗐다. 고민하면 아예 주저앉지 싶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일행은 기념사진 한 번 찍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곳이었다. 올라가도 또 계단이 나타났다. 다 때려치우고 싶을 즈음 마지막 급경사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오르다보면 내가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똑바로 섰는 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계단 경사가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중심잃고 뒤로 넘어지는 상상 만으로도 아찔한 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하늘색 페인트로 ‘4680’이라고 적힌 돌비석이 여행객을 반긴다. 모두 이 표지석을 끌어안고 사진 찍느라 바쁘다.

여기다. 내가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이 올라간 지점은. 트레킹에 빠지지 않는 다음에야 더 높이 올라갈 일도 없지 싶다. 비록 두 발로만 등정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식으로 자축했다. “야~~~~호~~~~.”

리장고성 찻집에서 내려다 본 고성 전경은 기와 천국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장에서 고성을 빼면 시체다. 물레방아 도는 입구를 지나 골목길로 접어드니 훠궈, 꼬치전문, 윈난커피, 기념품, 전통복장, 비단, 북, 전통악기, 동파 종이점에 신용문객잔까지 시선을 붙들어 놓는다. 그러다 갑자기 광주리를 등짝에 맨 나시족 여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추 등 야채를 운반하기도 하고, 아기를 넣고 다니기도 했다. 들어가는 것은 모두 운반 대상이었다.

돌 계단을 올라 고지대 ‘동파경관대’라는 찻집에서 보이차 한 잔으로 한 숨 돌렸다. 천정에는 소원을 빈 나무조각이 종과 함께 내걸려 있었다. 창도 없이 뻥 뚫린 하늘 아래는 검정색 기와 물결이었다. 기와가 멋있는 줄은 경주에서도 느꼈지만 사방을 틀어막은 것 같은 스팡제의 기와도 특색 있었다.

중국 윈난성 리장고성에서 나시족 여인이 광주리를 이고 걷고 있다.

우물가에는 빨래하는 아낙들의 손이 바빴다. 골목길에는 유난히 흑백 명암이 상극이었다. 밝은 곳은 눈이 부시고, 어두운 곳은 침침했다.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리장고성은 1996년 리히터 규모 7의 강진에도 멀쩡하게 살아 남았다. 당시 리장의 3분의 1이 파괴됐다. 이런 똥배짱으로 고성은 무한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밤낮으로 여행객이 끊이지 않다보니 틈만 보이면 새로운 상점이 생겨나는 것이다.

도시의 원형을 지키지 않으면 세계문화유산 자리를 내놔야 한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데도 막무가내다. 차마고도 사무역 금지조치를 비웃었던 마방의 후예라서 그런가.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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