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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대신 민어, 전복 어때요?

입력
2016.07.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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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보양식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은 삼계탕. 각종 한약재와 미삼이 들어가는 것이 표준적인 삼계탕이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각양각색의 제철 재료를 더한 업그레이드 삼계탕이 더 인기가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1970년대부터 보양식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은 삼계탕. 각종 한약재와 미삼이 들어가는 것이 표준적인 삼계탕이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각양각색의 제철 재료를 더한 업그레이드 삼계탕이 더 인기가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느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깬 그레고르는, 아니 나는 온 몸에 진땀을 흘리며 에어컨을 켰다. 새벽 여섯 시. 며칠째 같은 시간에 더위에 불타 잠이 깬다. 카프카가 ‘변신’에서 서두를 열었던 끔찍한 아침은 이 여름의 일상에도 별다를 바 없이 펼쳐지고 있다. 벌레가 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큼 신새벽의 더위 또한 숨이 멎는 경험이다. 매일 아침 ‘어휴, 몸이 축났나’ 생각하곤 한다. 뒤잇는 발상은 습관적이고도 관습적이다. ‘보양식을 좀 먹어야겠군. 음, 삼계탕?’

현대 도시인에게는 불필요한 보양식

복날 시즌이 시작됐다. 초복은 지난 일요일, 부지불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입맛도 없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 여름철, 기력이 쇠하다 보니 양기를 보충하자는 아이디어로 소화가 쉬운 단백질을 듬뿍 섭취하는 것이 말하자면 보양식의 전통적인 콘셉트다. 절기상 가장 더운 삼복에 시원한 물가를 찾아가 음식을 든든하게 챙겨먹는 것이 고전적인 복달임 풍습이었다. 봄부터 시작한 농사일에 더위까지 겹쳐 몸이 부실해지는 건 당연지사. 가장 더운 날 손 놓고 잘 먹고 잘 쉬는 농경민족의 여름 휴가쯤 됐던 것이다.

고래적부터 복달임을 대표하는 음식이 삼계탕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화가 잘되는 육류를 보양식 메뉴로 즐겨 찾았다. 소, 양, 염소, 개고기 등이었다. 삼계탕이 보양식으로 각광받은 것은 불과 1970년대부터의 일이다. 계육 대량생산, 그리고 냉장유통이 가능해진 후다. 그리고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을 치르는 동안 종전의 보양식 대표주자였던 ‘멍멍탕’에 대한 반감이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도 이유다. 최근에 들어서는 보건법망 밖에서 ‘생산’되는 견육의 비위생성과 일부 농장의 비인도적인 만행들이 알려지며 개고기가 보양식계에서 퇴출되는 추세다.

평상시 단백질 섭취가 부족했던 선조들에게야 보양식이 도움이 됐겠지만, 사실 어제도 삼겹살을 구워 먹었고 그저께는 ‘치맥’도 먹었을 것이 분명한 이 시대의 식생활에도 보양식이 진정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현대의 도시 생활자들은 농사는커녕, 도통 움직이질 않는다. 더위를 핑계로 활동량도 평상시보다 더 줄어든 시기다. 인과관계만 놓고 보자면 우리가 굳이 삼계탕 등 보양식을 복날마다 찾아 먹어야 할 타당성이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기꺼이 삼계탕집 앞에는 줄을 선다. 메카와 메디나를 찾는 순례자처럼 한세월 기다려 펄펄 끓는 닭의 복음을 받는 축제가 벌어진다. 왜냐하면 맛있으니까. 다 같이 먹는 음식이니까. 굳이 안 먹을 이유가 없으니 여전히 복날마다 꼭 먹는다. 닭의 복음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원기 회복에 도움을 주고 승천했는지, 뱃살에 더 많이 보태졌는지.

쉐라톤 그랜드 인천 호텔 중식당 유에가 선보인 삼계불도장. 맛과 향이 뛰어나 스님도 담을 넘게 했다는 불도장에 삼계탕을 곁들였다. 쉐라톤 그랜드 인천 제공
쉐라톤 그랜드 인천 호텔 중식당 유에가 선보인 삼계불도장. 맛과 향이 뛰어나 스님도 담을 넘게 했다는 불도장에 삼계탕을 곁들였다. 쉐라톤 그랜드 인천 제공

새로운 명절 ‘복날’… 진화하는 보양식

삼계탕뿐이 아니다. 보양식은 점차 그 범위가 다양화되고 있다. 그 닭에 그 미삼.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삼계탕은 견과류는 기본에 전복이나 낙지, 능이버섯을 아이언맨의 수트처럼 장착하고 업그레이드됐다. 스태미너의 상징으로 불리는 민물장어와 바다장어가 고루 활약 중이며, ‘양반의 생선’ 민어 또한 여름이 제철인 덕분에 대중들에게 보양식으로 인지됐다. 한때 호텔가 보양식을 평정했던 메뉴, 불도장은 게임 ‘슈퍼 마리오’로 치자면 ‘쿠파’, 곧 ‘끝판왕’이다. 말린 전복과 해삼, 상어 지느러미, 죽순, 인삼 등 귀하고 맛있고 비싼 재료를 다 부어 넣고 하루 넘도록 끓인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없던 힘도 나게 돼있다. 보양식의 기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올해 호텔가 보양식을 살펴보자면 한우, 오골계, 오리, 흑염소, 우럭, 은대구, 문어, 전복, 가리비, 송이버섯, 동충하초, 더덕, 마 등 산과 바다와 들로부터 온 별별 식재료들이 재료로 간택됐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한식당 온달의 온달 해신탕 코스 반상. 영계에 전복, 낙지를 올렸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제공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한식당 온달의 온달 해신탕 코스 반상. 영계에 전복, 낙지를 올렸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제공

하여 복날은 새로 정의될 필요가 있다. 명절이다. 동지에는 팥죽을 먹고, 설날에는 떡국을 먹는 것과 같다. 복날 명절 음식으로는 삼계탕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복날은 밸런타인데이요, 빼빼로데이이기도 하다. 해마다 요식업계에서는 7월이 올 때마다 복달임 프로모션에 힘을 쏟는다. 모두가 좋아하고, 꼭 챙기는 명절 음식이기 때문이다. 해신탕, 연계탕 등 보양식 메뉴를 선보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한식당 온달은 보양식 판매량이 전년 동기간(7월 기준) 대비 40%가량이 늘었으며, 8월에도 비슷한 수준의 예약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한정식 전문점 비채나 역시 민어특선코스, 능이버섯삼계탕, 인삼닭고기솥밥 등 보양식 메뉴를 선보여 출시 2주 만에 예약이 밀리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굳이 식당에서 먹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복날 선물 세트도 인기가 좋다. 재작년부터 한정 수량의 복날 선물세트를 판매 중인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은 매해 300세트, 500세트, 700세트로 수량을 늘리고 있다. 올해 초복 1주 전 ‘산양삼계탕 세트’는 출시 열흘 만에 600세트 이상이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롯데호텔서울 한식당 무궁화의 서해 민어매운탕 상차림. 민어매운탕과 함께 문어 수란채, 언양 불고기 등이 곁들여진다. 롯데호텔서울 제공
롯데호텔서울 한식당 무궁화의 서해 민어매운탕 상차림. 민어매운탕과 함께 문어 수란채, 언양 불고기 등이 곁들여진다. 롯데호텔서울 제공

세상에 걸맞게 복날과 복달임의 의미도 변화한 것으로 봐야 한다. 두 가지 측면이다. 달아난 입맛을 붙들어 잡아올 구미 당기는 음식으로서의 의의가 있다. 쾌락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보양식이라는 말도 이제는 풍성한 제철음식을 만끽하는 핑계다. 새로 등장한 보양식들은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더 귀한 재료를 넣는 쪽으로 나아갔다. 어지간한 명절보다 호화롭고 다채롭다. 정해진 메뉴가 없다 보니 무엇이든 복달임이 된다. 차라리 맛있어서 먹는다고 할 정도로 복달임의 의미는 바랬다. 그러니까 복날에만은 솔직해 지자. 맛으로 먹고, 관습으로 먹는다. 무조건 복날마다 욱여 넣는 삼계탕이 결국은 뱃살에나 기여할 지라도, 이 얼마나 군침 도는 풍경인가.

내 몸에 맞는 진짜 보양식은?

또 하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할 뿐, 복달임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데 있다. 이번 주 내내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해가 다 달궈지기도 전, 아침나절부터 핸드폰마다 폭염을 경고하는 부질 없는 재난 경보가 울렸다. 분명 여름은 해마다 더욱더 불쾌해지고 있다. 더위에 탈탈 털린 입맛 덕분에 균형 잡힌 식사가 거추장스러워지고, 대충 때우는 식의 식단이 더 입에 받는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영양 불균형이 일어나고, 몸이 균형을 되찾으려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럴 때 부족한 영양소를 채울 필요는 분명 있다.

복날의 명절 잔치는 맛나게 즐길 뿐이다. 이제는 실제 여름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될 진짜 보양식을 찾을 차례다. 판교 한성주한의원 한성주 원장의 조언을 빌었다. 그는 한여름에도 게으를 수 없는 기숙학원 수험생들의 주치의이자, 한여름에도 주6일 전국방방곡곡에서 땀 흘리며 뛰는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의 건강 자문도 맡고 있다. 여름에 나타나는 신체적 고충에 따라 보양식을 추천 받았다. 사상체질, 혹은 팔체질로 나누는 방법이 흔하지만 실제로 한 가지 체질 유형에 100퍼센트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없기에 몸에 나타나는 증상에 따라 보양식을 고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남들이 더위에 고통스러워할 때도 비교적 더위를 덜 타는 편이라면, 또한 대변 보기가 힘들고 두통이나 어지러움이 자주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에 열이 많은 상태이므로 해물류나 오이, 수박 등 찬 성질의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반면에 조금만 더워도 열이 후끈후끈하게 오르며 설사가 잦은 체질이라면 열이 밖으로만 돌고 속은 차가운 상태로, 이런 경우엔 전통적인 보양식인 삼계탕이나 부추, 마늘 등이 맞을 확률이 높다.

땀을 많이 흘리는 경우는 두 가지다. 땀을 흘리면 기진맥진하고 어지러운 사람은 진액이 허손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한 제철과일이나 붉은 고기류를 먹는 것이 좋다. 진땀을 흘리며 새벽에 잠이 깨곤 하는 그레고르씨에게 맞는 보양식은 삼계탕이 아니라 지천에 깔린 여름 과일이었던 것. 땀을 흘린 후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체질이라면 보양식이 전혀 필요 없다. 활발한 순환을 통해 체외로 열을 내보내는 체질이므로, 조금 서운할 수 있겠지만 물을 많이 마시는 것만으로 여름을 잘 견딜 수 있다.

여름의 고통은 더위뿐이 아니다. 대개의 직장인들은 냉방병에 시달리곤 한다. 냉방병은 몸이 급격한 온도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나타나는 증상인데, 이때는 체내외 온도를 맞춰주는 음식이 도움된다. 깻잎, 대파, 쪽파, 콩나물은 체표를 열어주어 안팎의 뜨겁고 찬 공기가 통하게 만들어주는 식재료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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