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혜 인턴 기자

등록 : 2017.03.20 17:59
수정 : 2017.03.20 17:59

“코트라 홈페이지 뒤져 칠레 진출 한국 기업에 이력서 보냈죠”

한국을 탈출한 청년 4인방에게 묻다

등록 : 2017.03.20 17:59
수정 : 2017.03.20 17:59

해외로 취직하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15년부터 국내 주류회사 영업 사원으로 근무했던 이태훈(29)씨는 미소 짓는 법을 잊고 말았다.

매일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에 몸과 마음은 지쳤고 기둥이 되어줄 선배 하나 없었기 때문. 그런 그의 눈에 한국 게임 업체의 페루 지사에 상주하며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할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문이 들어왔다. 스페인어를 전공한 이 씨는 “학창시절 남미를 여행하며 낙원 같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한국에서 탈출할 수 있단 생각에 덜컥 지원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8월 페루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는 입사 7개월 만에 지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이씨는 “한국처럼 경쟁이 심하지도 않고 누군가의 기준과 기대에 맞춰 살 필요가 없는 자유로움이 페루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씨처럼 한국 청년들이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해외로 취업한 청년의 수는 2014년 1,679명에서 2016년 4,811명으로 2년 만에 수직 상승했다.

해외 취업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만큼 감내해야 할 부분도 많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청년 4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페루에서 근무 중인 이태훈씨가 현지 매체에 등장해 인터뷰한 모습. 이태훈씨 제공

그들이 떠난 이유?… “절이 싫어서 중이 떠난 격”

“한국에서 취업 실패해서 해외로 도망친 거라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2014년 11월 한국을 떠나 칠레로 간 박용환(30∙가명)씨. 그는 “사회적 기대에 맞춰 사는 삶이 부담스러워 해외 취업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칠레를 선택한 이유는 평소 가고 싶었던 미국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쉽고 중남미 국가 중에서 치안이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는 코트라(KOTRA) 홈페이지에 있는 칠레 진출 한국기업에 일일이 접촉해 한 가전업체의 관리직으로 첫 취업했다.

박씨의 사례처럼 모든 청년이 취업난에 등 떠밀리듯 한국을 떠난 게 아니다. ‘청년 해외취업 성과 및 계획 발표’에 따르면 취업난, 청년층의 도전정신 증가, 정보제공 확대 등이 맞물려 해외 취업자 수가 증가했다. 사회∙경제적 상황과 개개인의 동기가 맞물려 고국을 떠나게 됐다는 분석이다.

보수적인 한국 기업의 채용 과정에 대한 실망이 청년을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김가영(27)씨는 졸업 후 1년 9개월 동안 인턴과 정규직으로 경력을 쌓은 후 IT 업계로 진로를 정했다. 꿈에 부푼 그의 발목을 잡은 건 면접 전형. 그는 “유관 경력이 있어도 관련 전공이 아니란 이유로 퇴짜맞은 적도 있고 여잔데 영업 할 수 있겠냐는 차별 발언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4월 김씨는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영어를 사용하고 비자 발급이 수월하다는 것이 싱가포르를 선택한 이유였다. 김씨는 처음 글로벌 IT 업체의 고객 관리직으로 입사했다가 최근엔 모바일 앱 시장 관련 데이터 제공 업체로 이직했다. 그는 “이직으로 연봉을 많이 올릴 수 있는 게 이곳의 장점”이라며 “이직으로 통상 10~30% 인상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나도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직장을 옮겼다”고 말했다.

권태로웠던 한국 직장 생활로부터 탈출을 꾀한 이도 있다. 김동현(28)씨는 한국에서 그는 잘나가는 대형 IT 업체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컸다. 그는 “우버(Uber)처럼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경쟁사와 유사한 서비스를 만드느라 철야 근무하는 게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1년 다닌 직장을 관두고 2015년 7월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대학 석사 과정을 밟게 됐다. 그는 “내 직군(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경우 미국과 한국의 대우가 많이 차이 나고 언어 장벽에 대한 부담이 적은 덕에 이미 나간 선배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는 김가영(맨 오른쪽)씨는 '해외취업=젊은 나이에 성공'이란 등식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가영씨 제공

산 넘어 산…이력서만 종류별로 20개나 준비하기도

큰 마음을 먹고 한국을 떠나도 극복해야 할 관문이 태산이다. 해외 취업은 개개인의 삶의 터전이 통째로 바뀌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봉착하는 문제는 초기 정착 비용이다. 비행기 값, 생활비, 주거비 등 타국에서 자리 잡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든다. 실제로 인터뷰이 4명 중 박씨를 제외한 3명 모두 해외에 자리 잡기 위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답했다. 간혹 기업에서 초기 정착금을 지원하거나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

일과 학업을 함께 하는 경우 생활비 압박이 심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컴퓨터 공학 석사 과정을 밟기 시작한 김동현씨는 “석사 과정에 장학금이 따로 있지 않아서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는 게 고역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학교 연구실에서 조교로 일하며 공부를 병행했다.

자리 잡을 때까지 악바리 정신도 필요하다. 칠레로 간 박씨는 기업∙직무 맞춤형 이력서를 20가지나 준비했다. 그가 뿌린 이력서만 100개가 넘는다. 그는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학력은 생소하니 경력으로 증명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악바리 정신을 발휘한 덕에 박씨는 영주권을 받고 현지에서 아파트도 구매했다.

해외로 가서도 이직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현지 지사에서 일을 시작했던 박씨는 “현지 직원처럼 대우하면서 한국인이란 이유로 상명하복 식 근태를 강요했다”며 “자괴감이 들어 외국계 회사로 옮겼다”며 “해외지사는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라 첫 직장으로 좋을 수도 있지만 해외 근무의 이점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취업=젊은 나이에 성공이란 공식에서 벗어났으면

이들이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철저한 사전 준비다. 김동현씨는 “학업을 마치고도 아무 것도 안 된다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연구와 공부에 몰두하느라 제대로 대비를 못했기에 그런 것 같다”며 “진로나 경력 계획을 세워야 방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불현듯 닥쳐오는 향수병을 극복 할 강한 마음이 중요하다”고, 김가영씨는 “해외취업=젊은 나이에 성공이란 공식에서 벗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은혜 인턴기자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전국지자체평가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