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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역사를 올바로 배우는 방법

입력
2015.10.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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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친일교과서 국정화 반대' 당 지도부 피켓 시위를 하며 여고생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친일교과서 국정화 반대' 당 지도부 피켓 시위를 하며 여고생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확정 발표하자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역사왜곡 교과서 반대’라는 팻말을 들고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바로 옆에는 ‘친일 교과서 반대’라는 팻말도 있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은 다양할 수 있다.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쓰는 교과서라고 해서 ‘왜곡’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팩트가 틀린 것은 교정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직 쓰지도 않은 교과서를 두고 ‘친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에 대한 학계와 시민단체 그리고 역사학계의 입장에 나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감히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나도 역사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한다. 자연사(自然史)는 말 그대로 자연의 역사다. 그렇다면 도대체 자연의 역사란 무엇일까? 자연의 역사란 결국 멸종의 역사다. 사라져 버린 것들의 역사란 뜻이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웠던 종-속-과-목-강-문-계에서 문(門)은 생명의 설계도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지구에 등장했던 동물 문은 38가지다. 오파비니아도 그 가운데 하나다. 눈이 다섯 개나 있고 코끼리 코처럼 길게 나온 주둥이 끝에 집게 팔이 달려 있던 오파비니아가 후손을 남겼다면 지금 눈이 다섯 개 달리고 코끼리 코처럼 기다린 주둥이를 가진 생물들이 땅과 바다에 득실거릴지 모른다. 하지만 오파비니아는 어떤 후손도 남겨 놓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는 37가지 문이 남아있다.

오파비니아가 처음 생겼을 무렵 피카이아라는 바다 동물도 생겨났다. 만약에 오파비니아 대신 피카이아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등뼈 속에 신경이 흐르고 있는 동물, 그러니까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는 지구에 등장하지 못했다. 물론 인류도 지구에 없다. 피카이아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등뼈가 있는 모든 동물들이 함께 기뻐하며 감사해야 할 일이다.

물론 피카이아도 곧 멸종했다. 다만 다른 종류의 동물로 진화한 후손을 남겼을 뿐이다.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은 약 2,000만 종에서 1억 종 사이다. 엄청나게 많은 종류인 것 같지만 지금까지 지구에 등장했던 생물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99%는 이미 멸종했다.

모든 생물은 결국 멸종한다. 3억 년 동안이나 고생대 바다를 지배했던 삼엽충도 멸종했고, 1억 5,000만 년 동안이나 중생대 육상을 지배했던 공룡들도 소행성 단 한 방에 멸종하고 말았다. 자연사박물관은 이렇게 멸종한 생명을 전시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연사박물관을 세워서 멸종한 생명을 전시할까? 간단하다. 그들의 실패를 배우기 위해서다. 삼엽충과 공룡을 비롯한 온갖 생명들이 멸종한 이유를 배움으로써 우리 인류가 버텨낼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인류라고 영원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멸종하는 게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인류는 멸종으로 향해 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사람 정도 크기의 생명체라면 적어도 150만 년은 존재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지 겨우 20만 년밖에 안 되었는데 멸종을 걱정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빠르면 500년 길어야 1만 년이면 멸종하고 말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걱정인 것이다. 우리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하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자연사박물관을 세우고 자연사를 공부한다.

한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왜 공부할까? 단지 옛날 이야기가 궁금해서는 아닐 것이다. 제국과 왕국의 찬란한 문화에 흠뻑 빠져서 선조들을 찬양하면서 내가 이 민족 이 나라의 일원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위해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너무 단순하다. 자긍심과 자부심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진짜 이유는 자연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와 같다. 자연사가 멸종의 역사이듯이 한 민족의 역사는 망국의 역사다. 찬란했던 로마 제국은 망했다. 한나라와 청나라도 망했다. 엄청난 땅을 차지하고 다른 민족을 지배했던 모든 민족의 역사는 결국 망한 역사다. 우리 민족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는 고구려도 망했고 통일신라도 망했고 고려도 망했고 조선도 망했다. 찬란했지만 결국 망했다. 소련도 망했고 미국도 언젠가는 망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다.

자연사는 하나가 아니다. 자연사는 아주 긴 시간에 관한 역사이고 무수히 많은 생명의 역사이므로 충분히 다양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생명의 멸종을 바라보는 시각이 학자들마다 제각각이다. 공룡의 멸종에 대한 이론은 100가지가 넘는다. 다양한 이론이 자유롭게 논의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연사의 강점이다. 단 한 가지의 자연사만 있다면 우리 인류의 운명은 위태롭다.

한 민족과 나라의 역사는 자연사에 비하면 무척이나 짧다. 해석이 자연사보다 훨씬 더 분분할 수밖에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론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민족과 나라의 지속성에는 도움이 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배척하고 이론을 금지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민족과 나라의 생존을 위협하는 반민족적이며 반국가적인 행동이다. 자긍심만으로 서술한 단일한 역사 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김씨 일가의 무오류성과 영도를 찬양하는 단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는 북한의 지속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할지 친일교과서가 될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정교과서가 바로 북한식 교과서라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식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지속성을 위협할 것이다. 하필 북한식으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심사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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