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ㆍ경증질환 환자는
병원 찾을 필요 없이 재택 진료
모바일ㆍ사물인터넷 기술이
원격의료ㆍ건강서비스와 결합 땐
“보건의료 시장 폭발 성장” 전망
의료사고ㆍ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의료계ㆍ시민단체는 도입 반대
정부는 20대 국회 개원 한 달 여만인 6월 22일 의사와 환자간 원격의료를 가능케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18대 국회 때인 2010년부터 국회 임기마다 번번이 제출하고 있는 법안이다. 현행 원격의료가 의사와 의료인 간 자문만 허용하고 있는 ‘반쪽짜리’라는 이유에서다. 외따로 살거나 거동이 불편해 병원 이용이 어렵거나, 만성질환으로 상시 관리가 필요한 이들의 의료 편의를 돕고 응급 상황에 대처한다는 것이 원격의료의 취지지만 현행법은 간호사 등 의료진이 환자 곁에 없으면 원격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의사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제한적으로만 허용된 원격의료가 이번 국회에서 법 개정을 통해 본격 확대될 수 있을까. 그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성질환자 재택 관리 쉬워져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의 골자는 다른 의료인에 대한 의료지식 및 기술 지원에 한정하던 원격의료 범위를 환자의 건강 및 질병에 대한 지속적 관찰, 상담ㆍ교육, 진단 및 처방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미국, 일본, 호주, 독일, 영국 등 주요국의 선례를 따르자는 것이다. 개정안은 원격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를 ▦고혈압ㆍ당뇨병 등 만성질환자 ▦정신질환자 ▦수술 후 체내 의료기기 부착 등으로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환자 ▦섬ㆍ벽지 거주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 및 장애인 ▦재소자 및 군인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로 규정하는 한편 경증질환 환자도 대통령령을 통해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의료법이 정부안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의사와 환자의 대면진료 중심으로 구축된 현행 의료 제도에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법이 허용하는 만성질환이나 경증질환 환자라면 일일이 병원을 찾을 필요 없이 재택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현행 의료법에 이미 근거 조항이 있는 전자처방전 발급이 이뤄지고, 의약품 원격 조제 및 배송 허용을 요구하는 압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료기관들이 건강을 상시 관리하는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장은 “의사 환자 간 원격의료가 발달한 미국에선 경증질환에 대한 원격진료, 원격 모니터링, 수술이나 치료법 결정 시 선택지를 넓히기 위한 2차 소견 서비스에 주로 원격의료를 이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진단기기 소프트웨어 시장 확대될 듯
보건의료 시장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우선 재택 진료ㆍ모니터링 이용자가 카메라, 혈압계, 혈당계, 심전도계 등 자신의 생체정보를 측정해 의료기관에 보낼 장비를 구비할 것이어서 의료진단기기 시장이 호황을 맞고, 새로운 보건의료 장비나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점쳐진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을 포함한 여러 병원에서 스마트폰으로 원격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지만, 현행 의료법상 환자가 원격의료 주체에서 배제되다 보니 전혀 상용화를 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첨단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모바일,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원격의료나 건강관리 서비스와 결합하면 폭발적 시장 성장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예를 들어 화장실 변기에서 소변 성분을 측정하거나 손목에 차는 밴드로 맥박 등을 측정한 뒤 곧바로 인터넷망을 이용해 의료기관으로 전송하는 통합 기기, 집에서 측정한 혈당이나 혈압 수치를 날짜별 통계로 만들고 의료기관 등과 연계해 환자의 식단ㆍ운동량ㆍ약 복용 등을 조언하는 프로그램 등이 나올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및 웨어러블(착용 가능)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 및 서비스가 (의료법 개정을 통해) 전문 의료기관과 연계된다면 서비스의 신뢰를 높이고 차별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의료계는 동네의원 도산 우려
우려도 기대에 못지 않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오진 가능성, 개인 의료정보 유출, 서비스 경쟁에서 밀린 동네의원 도산 및 의료체계 붕괴 등을 거론하며 원격의료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의협) 대변인은 “원격의료 과정에서 장비 오작동, 환자의 지시 불이행 등 의사가 통제할 수 없는 오진이나 의료사고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이러한 문제가 현실화했을 때 의사가 전적으로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보안 관련 행사에서 당뇨 환자 체내에 심어진 인슐린 주입기기를 해킹해 인슐린 주입량을 치사량으로 조작하는 실험이 시연된 사례 등을 지적하며 원격의료에 따른 보안 문제를 경고했다. 국책연구기관인 보건산업진흥원도 2014년 말 보고서에서 환자 사용 장비, 의료정보 전송 네트워크, 질병정보가 저장된 병원 서버 등에 대한 해킹 공격 가능성을 지적하며 “가능한 모든 (공격)시나리오를 구상해 보안위협을 분석할 모의테스트를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상시 관리해 의료비용을 줄이겠다는 계획이지만 경증질환자가 병원을 찾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어지면서 오히려 너무 자주 진료를 받거나 처방전을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는 개정 법안에 의사 환자 간 원격의료 행위 대부분을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정해 허용하고, 환자 측 장비 결함이나 지시 불이행의 경우 의사 면책 조항을 두는 등 보완 장치를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정보 유출 우려에 대해서도 정보보호 규정을 강화하고 관리감독 체계를 신설해 대비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원격의료 시행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면 시범사업을 통한 안전성, 유효성 평가가 필수적인 만큼, 의협도 시범사업에 동참해 공론의 장에서 검증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양측의 불신의 골이 워낙 깊어 의료법 개정이 이번에도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김치원 서울와이즈재활요양병원 원장은 “정부가 원격의료 전면 도입 방침을 밀어붙이기보다는, 만성질환자의 원격 모니터링 기기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주는 등 현행법상 가능한 영역부터 선별적으로 시행한다면 논란을 줄이면서 국민 편익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전략 부재를 지적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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