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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레인 "'복톡스' 맞아 아직 쌩쌩... 40년은 해야 장수 밴드"

입력
2016.11.3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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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밴드 노브레인이 최근 국정농단 사태 등 부패한 정치세력을 향해 야유하는 듯한 포즈를 짓고 있다. 최재명 인턴기자
록 밴드 노브레인이 최근 국정농단 사태 등 부패한 정치세력을 향해 야유하는 듯한 포즈를 짓고 있다. 최재명 인턴기자

“‘복톡스’를 맞아서 그런가 봐요. 복이 넘치고 행복해서 늙지 않는 복톡스.”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을 방송에서 처음 봤던 게 어림잡아도 10년은 넘었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녹음실에서 만난 그들에게 “그런데도 세월이 얼굴들을 비켜간 느낌”이라고 말하자 멤버 정민준(36ㆍ기타)의 대답이 이랬다. 평소 같았다면 피식 웃고 넘겼을 이 시답잖은 농담조차 예사롭지 않게 들렸던 건 당시 기자의 혼이 비정상인 탓이었을까 이 혼돈의 시국 때문이었을까.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5차 촛불집회 무대에 서게 된 배경부터 물었다. 이날 노브레인은 노래 도입부의 ‘야야~야야야야’를 ‘하야~하야하야’로 바꾼 ‘아리랑 목동’을 포함해 네 곡을 부르고 무대를 내려갔다.

당시 청와대 방향을 가리키며 “아름다운 우리들의 목소리를 저 뒤까지 들려주고 싶다”고 말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던 이성우(40ㆍ보컬)는 “원래 시민들의 마음을 챙겨주셔야 하는 분들이 못 챙기고 있으니 우리 같은 동네 껄렁껄렁한 애들이라도 나선 것”이라는 일침을 놓았다.

촛불집회 무대에 서고 싶어 한동안 소속사를 졸랐다며 정우용(34ㆍ베이스)이 옆에서 말을 보탰다. “그날 모인 시민들과 똑같은 마음이었죠. 가진 게 노래 밖에 없으니 노래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고요.” 차량을 주차한 서울시청에서 무대가 있던 광화문광장까지 걷는 내내 멤버들은 울컥하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혼났다. 정민준은 “서로에게 바라는 거 하나 없이 핫팩을 나눠주던 시민들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쏟아져 땅만 보고 걸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젊음을 응원하는 ‘청춘가’로 사랑 받아온 노브레인은 이후 거침 없이 사회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로도 주목 받았다. 2001년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며 일제의 상징인 욱일기를 찢었던 퍼포먼스는 이 밴드의 음악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사건으로 꼽힌다. “가진 게 없을 때 시작된 크고 작은 분노들이 사회적 영역에까지 치달았다”는 게 멤버들의 설명이다.

남자들이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머리카락을 빨갛게 물들였다는 이유로 불심검문을 피할 수 없었던 게 불과 10여 년 전이었다. 한때 ‘리틀 베이비’(2003)로 대표되는 낭만적인 사랑 노래로 ‘전향’해 팬들의 외면과 동료 록 밴드들의 비판을 받으며 위기를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사회 부조리에 대한 유쾌한 저항정신과 청춘 희망가는 포기할 수 없는 노브레인만의 록 스피릿이었다.

올해 결성 20주년을 맞은 노브레인은 “초기엔 사회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노래가 많았다”며 “나이가 들면서 같이 공격하자가 아니라 우리 같이 행복하자란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고 밴드의 음악을 설명했다. 최재명 인턴기자
올해 결성 20주년을 맞은 노브레인은 “초기엔 사회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노래가 많았다”며 “나이가 들면서 같이 공격하자가 아니라 우리 같이 행복하자란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고 밴드의 음악을 설명했다. 최재명 인턴기자

올 4월 발매한 7집 ‘BRAINLESS’에는 지난 2년 동안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과정들을 보며 느낀 멤버들의 좌절과 혼란도 담아냈다. 멤버들 중 유일한 아이 아빠 황현성(38ㆍ드럼)은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닌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고민하고 분노하는 것뿐 특별한 건 없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무대에 꾸준히 서 온 자신들을 향해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치켜세우는 목소리도 그래서 부담스럽다. “무슨 책임감을 갖고 하는 일이 아니거든요. 조금 더 말이 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을 노래로 하는 것뿐이에요.”

올해 결성 20주년을 맞기도 한 노브레인은 최근 기념앨범도 발매했다. 신곡 ‘이도 저도 아냐’를 포함해 ‘청춘 98’ ‘넌 내게 반했어’ ‘비와 당신’ 등 20년 노브레인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만 한 10곡을 담았다. 타이틀곡 ‘이도 저도 아냐’ 뮤직비디오에선 1990년대 후반 홍대 클럽 드럭에서 팬들과 뛰놀던 멤버들의 앳된 모습도 볼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 노브레인 공연을 보러 일주일에 5일 이상 이 작은 클럽을 찾았다가 원년멤버 차승우의 탈퇴 후 2004년 밴드의 멤버까지 된 정민준은 “학창시절 내 삶의 희망이자 살아가던 이유였던 노브레인의 20주년을 직접 맞으니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조선펑크의 포문을 연 1세대 인디밴드’란 거창한 수식어가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말 달리자’를 부른 가수라는 표현만 아니면 된다”며 웃는다. ‘말 달리자’는 노브레인과 같은 1세대 밴드로 꼽히는 크라잉넛의 대표 곡이다. 크라잉넛 멤버들에게도 노브레인이 우정 출연한 영화 ‘라디오스타’(2006)를 잘 봤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두 밴드를 여전히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이성우는 “크라잉넛 노래를 들으면서 자극을 많이 받는다.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노브레인은 내달 24일 열릴 20주년 콘서트 준비에 한창이다. 밴드의 목표에 대해선 네 사람 모두 “장수 밴드”라며 입을 모았다. 정우용은 “20주년도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40년은 해야 ‘우리 좀 했지?’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후 주변에선 “뉴스에 막 나와도 괜찮겠냐, 몸 좀 사려라”는 걱정이 쏟아진다. 그런데도 이 거침없는 록스타들은 “괜찮다. 우리 스스로에게 부끄럽기 싫다”며 맷집을 자랑한다. 노브레인 특유의 위트를 잊지 않으면서 이성우가 답했다. “이런 무대에 섰다는 이유로 우리한테 불이익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블랙리스트에 올려라, 이런 밴댕이 소갈머리들아!”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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