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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에버릿 덕슨(1월 4일)

입력
2018.01.04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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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의 유연성이 확고부동한 소신이었다는 미국 정치인 에버릿 덕슨.
소신의 유연성이 확고부동한 소신이었다는 미국 정치인 에버릿 덕슨.

미국의 정치인 에버릿 덕슨(Everett M.D. Dirksen, 1896.1.4~1969.9.7)은 “확고부동한 나의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내 원칙이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삶은 고정된 무엇(static-thing)이 아니다. 마음이 바뀌지 않는 사람은 정신이 병들었거나 공동묘지에 누워 더 이상 마음을 바꿀 수 없는 이들뿐”이라고도 했다. 1950~60년대 11년 간 미 상원에서 주로 야당(공화당) 원내총무로 일하며 그는 자신의 저 소신에 따라 당내 반발을 무릅써 가며 64년의 시민권 법안 심사 등에서 민주당의 자유주의적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일리노이 주 페킨(Pekin)에서 농사를 짓던 독일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다니던 중 1차대전이 터지자 대학을 중퇴하고 포병 장교로 입대했다. 전후 전기세탁기 사업을 했고 빵집을 개업한 적도 있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작가가 돼보려고 단편소설도 썼다지만 책으로 엮인 건 없었다. 대신 그는 낙천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을 타고났고, 화술과 웅변에 능했다. 26년 선거에서 시의회 의원이 됐고,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32년 하원의원이 된 뒤 내리 7회 상하원 선거에 당선했다.

재임 중 그는 외교정책과 관련해 모두 62차례 입장을 바꿨고, 군사정책에서는 31차례, 농업 정책에서는 70차례 소신을 변경했다. 다소 과도한 면이 있지만 그는 늘 당당했다.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발의한 64년 민권법을 두고 상원의 남부지역 출신 민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감행하자, 상대당 원내총무였던 그가 조정안을 만들어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최종 표결 전 연설에서 그는 빅토르 위고가 일기에 썼다는 말- “도래할 새로운 사상은 어느 군대보다 강하다”-을 인용하며 “모두가 이 정부를 공유하고 교육과 고용의 기회를 평등하게 누리는 기회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시대는 늦춰질 수도 부정될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가 자서전 오디오북(Dreams from My Father)으로 2006년 그래미상 ‘최고낭독앨범상’을 수상했지만, 원조는 덕슨이었다. 그는 개척시대 미국인의 모험담을 담은 오디오북(Gallant Men)으로 1967년 저 상을 탔다. 워낙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아 의원실 명패를 떼어놔야 했을 정도였다는 말도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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