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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백신 실패’ 아닌 ‘접종 실패’라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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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백신 실패’ 아닌 ‘접종 실패’라는 정부

입력
2017.02.0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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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접종후 10%만 추출 검사

‘항체 형성률 98%’ 과신 비판도

일부에선 수입 백신 효능에 의문

8일 0시까지 전국 우제류 가축 등의 이동이 일시 정지되는 ‘스탠드스틸’이 발령된 가운데 7일 오전 경북 포항 포항축협 전자경매 가축시장에서 축협 직원들이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 포항=뉴스1
8일 0시까지 전국 우제류 가축 등의 이동이 일시 정지되는 ‘스탠드스틸’이 발령된 가운데 7일 오전 경북 포항 포항축협 전자경매 가축시장에서 축협 직원들이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 포항=뉴스1

정부가 구제역 발생의 책임을 축산 농가로 돌리고 있다. ‘백신의 실패’가 아니라 농가에서 백신을 제대로 접종하지 않아 생긴 ‘접종의 실패’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그러나 국가적인 가축 전염병 방역 시스템에 구멍이 났는데도 농가에만 책임을 떠넘기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잖다.

김경규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7일 “구제역이 발생한 전북 정읍시 농가의 한우 49마리 중 20마리를 표본 검사한 결과 항체가 형성된 소가 1마리에 불과했다”며 “항체 형성률이 5% 밖에 안 된다는 것은 농가에서 백신 접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농식품부는 소의 전국 평균 항체 형성률(지난해 12월 기준)이 97.5%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6일 충북 보은군 젖소 농가의 항체 형성률이 20% 밖에 안 되는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전북 정읍시 농가의 항체 형성률도 5%에 불과한 것으로 나오자 농가로 화살을 돌린 것이다. 백신 효능에는 문제가 없는데 농가 단위에서 냉장 보관한 차가운 백신을 그대로 투약하는 등 접종을 잘못해 효과가 떨어졌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김 실장은 “역학조사 결과 충북 보은군과 전북 정읍시 농가 모두 백신 온도를 높이지 않은 채 그대로 접종한 게 확인됐고 농가도 이를 시인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축산 농가들 사이에 백신 접종을 꺼리는 일종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도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소 50마리, 돼지 1,000마리 이상 전업농의 경우 백신 구입 비용 절반을 농가가 부담해야 하는 만큼 금전적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농가에선 2010~2011년 최악의 구제역 후 갑자기 수입된 백신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지역에선 백신을 주기적으로 맞으면 젖소의 우유 생산량이 감소하고 한우의 유산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농가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정부가 항체 형성률을 지나치게 과신했다는 비판은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방역 당국은 2011년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후 구제역이 빈발했던 돼지는 전 농가를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이상 혈청 검사를 해 왔다. 그러나 소는 전체 농가 9만6,000곳 가운데 10%만 추출해 표본 검사를 했다. 10곳 중 9곳은 백신을 접종하고도 항체가 형성됐는지 확인조차 안 했다는 이야기다. 농가 당 표본이 된 소 숫자도 1마리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지난해는 7,000여 농가를 조사하는 것에 그쳤다.

현재 수입 중인 구제역 백신의 효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2014~2015년 구제역 역학조사에서도 백신을 접종한 농가에서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나와 ‘물백신’ 논란이 일었다.

솜방망이 처벌도 개선돼야 한다. 현재 정부는 1년에 한번 치르는 항체 형성률 표본 조사에서 80% 미만 시 최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백신의 함정에 빠진 방역 당국은 다시 한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선다. 8일부터 국내 재고량을 총동원해 전국 소 사육두수 314만마리 전부에 대해 53억원어치의 백신을 일제 접종하기로 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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