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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7.09.11 16:05

[김월회 칼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품어야 할 정신

등록 : 2017.09.11 16:05

노반이란 인물이 있었다. 춘추시대 사람으로 공수반이라고도 불렸다. 생전에 이미 절정의 과학기술자로서 명성이 대단했고, 사후엔 ‘과학기술계의 공자’로 추앙됐다.

후에는 ‘도구의 신’, 그러니까 근대적 용어를 빌리자면 ‘과학기술의 신’으로 신봉되기도 했다.

기발한 물건이나 건축물 등을 보면 으레 그가 만들었다는 전설이 생겨날 정도였다. 심지어 당시 과학기술 수준으로서는 오늘날의 SF에 해당되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9세기에 출판된 ‘유양잡조’에 실려 있는 ‘하늘을 나는 나무 솔개’ 이야기가 대표적 예다.

한번은 노반이 집을 떠나 꽤 먼 곳에서 장기간 공사를 하게 됐다. 이내 아내가 무척 보고 싶어지자 노반은 하늘을 빠른 속도로 나는 나무 솔개를 제조해서 밤이 되면 이를 타고 집으로 갔다가 날이 밝기 전에 현장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지금으로 치면 소음이 최소화된 최첨단 소형 비행기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가 나무 솔개를 타고 밤마다 원거리 출퇴근을 하고 있음을 알아챈 이는 없었다.

사달은 생각하지 못한 데서 일어났다.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됐고 이를 시아버지께 들켜 의심을 사게 된 것이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시아버지께 그간의 일을 이실직고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호기심에 휩싸인 시아버지는 아들이 날아오기를 몰래 기다렸다가, 그가 나무 솔개서 내려 며느리 방으로 들어가자 나무 솔개에 냉큼 올라탔다. 그러고는 되는 대로 기기를 조작해 그만 오군이라는 먼 지방까지 날아갔다. 그러자 오군 사람들은 요괴가 요물을 타고 왔다며 나무 솔개를 부수고 부친을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노반은 나무 솔개를 다시 만들어 타고 가서 부친 시신을 수습해 돌아왔다. 장례를 치른 후 그는 ‘나무 신선’을 제작, 손가락으로 오군을 가리키게 했다. 그러자 오군에는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요새 식으로 표현하자면, 먼 곳에서 원격으로 기후 통제가 가능한 기계를 만들어 부친을 죽인 이들에게 복수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허무맹랑한 허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외견상으로만 그러할 뿐, 절대 다수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이 얘기에도 제법 묵직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인간에게 과학기술은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는지를 일러주기에 그렇다. 이를테면 이 얘기에서는 인간이 문제적 상황에 봉착하자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이를 타파했다는 점, 과학기술은 무지한 상태에서 사용하면 불행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 등을 읽어낼 수 있다. 나아가 과학기술은 오용되거나 악용되면 돌이킬 수 없는 폐해가 야기되지만, 이의 수습이나 극복도 과학기술로 인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은 인간 삶과 사회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음이 환기되기도 한다.

실제로 문명 발생 과정에 대한 제자백가의 증언을 보면, 유파를 불문하고 그들 대다수는 과학기술이 고안되고 구사됨으로써 문명이 배태됐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가령 사람들이 짐승과 벌레를 당해내지 못했을 때, 훗날 ‘성인’이라 불린 문화영웅이 나타나 집 짓는 기술을 가르쳐주어 여러 해악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한다. 야채와 고기를 날 것으로 먹던 탓에 다수가 병을 앓았는데 성인이 나와 불 사용법을 일러주어 비로소 질병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고도 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약점이나 결핍 등을 과학기술로 극복하는 과정을 문명화의 첫 걸음으로 보았다. 이는 문명의 싹을 직접적으로 틔운 게 인문학 같은 정신적 가치가 아니었다는 통찰이기도 하다. 그건 그 다음 단계에서 발양한다고 그들은 보았다. 문제적 상황을 해결해주는 과학기술이 고안되고 적용됨으로써 인간 삶이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안정되고서야 정신문명이 싹 텄다는 것이다. 공자가 먹는 문제가 해결돼야 교화할 수 있다고 하고, 맹자가 ‘지속 가능한 수입(恒産ㆍ항산)’이 있어야 ‘지속 가능한 마음(恒心ㆍ항심)’이 있을 수 있다고 단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과학기술을 낮잡아 봤다고 알려진 공자와 맹자였지만, 그들도 내심으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생존과 생활을 가능케 해주어, 그 다음 경지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해주는 과학기술의 역량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음이다. 문명이 최초로 태동된 태곳적만 그랬던 게 아니기에 더더욱 그랬다. 비단 이들의 통찰이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의 역사가 보여주듯, 과학기술이 당대 현실을 개선하고 혁신함으로써 미래를 이지적이고 풍요롭게 구성해가는 데 필수 불가결한 역량이자 동력, 원천임은 부인될 수 없다.

청와대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인선을 둘러싼 과학기술계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이 이것이다. 과학기술은, 특히 근대 이후로는 인문사회 학술보다도 한층 광범위하고도 직접적으로 눈앞ㆍ미래의 문명을 좌우해왔다. 하여 한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에 주되게 간여하는 이라면, 신앙과 무관하게 문명사적 시야와 통찰을 그 정신에 실존으로 품고 있어야 한다. 인문학보다는 과학기술을 훨씬 신뢰하는 우리 사회이기에 더욱 더 그러하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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