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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아이들이 살려달라 울부짖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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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아이들이 살려달라 울부짖는데…”

입력
2017.03.1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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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청소년보호소 화재로 37명 사망

보호소 내 폭력ㆍ강간 항의하다 불 낸 듯

유가족 “과테말라는 폭력뿐” 진상규명 요구

과테말라시티 산카를로스대학 학생들이 11일 청소년보호소의 부당 대우에 항의하다 화재로 숨진 청소년을 추모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과테말라시티=EPA 연합뉴스
과테말라시티 산카를로스대학 학생들이 11일 청소년보호소의 부당 대우에 항의하다 화재로 숨진 청소년을 추모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과테말라시티=EPA 연합뉴스

과테말라가 8일 발생한 공공 청소년보호소 화재 사건을 조사하는 가운데 11일 현재 확인된 사망자는 37명으로 늘었다. 일부 유가족과 여론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정부가 즉각 책임질 것을 주장했다.

10일(현지시간) 산후안데디오스병원 관계자 등을 인용한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8일 발생한 산호세피눌라 비르헨데라아순시온 청소년보호소 화재 사건으로 지금까지 19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18명이 치료 도중 숨졌다. 피해자는 모두 14세에서 17세 사이로 아직까지 10여 명이 치료를 받고 있지만 위독한 상태다.

이날 피해자 시오나 헤르난데스 가르시아(17)의 유가족은 시오나를 과테말라시티 묘지에 묻었다. 모친 마리아 가르시아는 “과테말라는 온통 폭력뿐이다. 사람들이 가난한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한다”며 흐느꼈다. 삼촌 세바스티안 가르시아는 “법이 책임 있는 자들에게 철퇴를 내리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노에미 테쿤 무노스(17)의 모친 클라우디아 테쿤은 딸이 치료받고 있는 루스벨트 병원 입구에서 AP통신 기자에게 “의사들이 딸이 살 가망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노에미는 전신 70%에 화상을 입은 채 치료 중이다.

아직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도 있다. 비안네이 클라레스 헤르난데스는 딸 애슐리(14)를 잃었지만 여전히 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소녀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문을 열지 않고 구조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수용된 여성 청소년 중 일부가 자신들의 감금조치에 항의해 매트리스에 불을 지른 것이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시설 내 청소년들은 열악한 음식 제공과 직원들의 부당한 대우, 강간 위협 등에 항의해 7일부터 시위를 벌였다. 8일 이 시위에 참여했다 감금된 청소년들이 방 안에서 문을 열어달라며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언론은 화재 발생 당시 16㎡짜리 교실에 청소년 52명이 감금된 상태였다고 전해 보호소의 열악한 상황을 증명했다.

게다가 경찰이 화재 신고를 받고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항의 시위를 벌인다고 판단, 감금된 청소년들의 구조 요청을 30분간 묵살했다는 목격자 증언도 나와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헤오바니 카스티요의 딸 킴벌리(15)는 사고 현장에서 탈출했지만 얼굴과 팔, 손에 화상을 입었다. 카스티요는 “화재 발생 당시 딸이 갇혀 있었다가 친구들이 문을 부수고 자신은 물에 젖은 수건을 몸에 두르고 나와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딸의 말로는 불을 지른 청소년들 일부가 강간을 당했다고 말했으며 부당한 처벌을 받은 데 항의의 표시로 불을 지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당국이 관리하는 과테말라의 청소년보호소는 청소년이 폭력ㆍ학대ㆍ빈곤 등 가정문제로 인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임시로 머무는 곳이다. 자녀를 부양하기 어려워진 가족이 직접 보내기도 하고 판사가 집 없는 청소년들의 수용 명령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비르헨데라아순시온 청소년보호소는 400명이 수용 가능한 공간에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인원이 수용되는 등 극도로 열악한 상황임이 드러났다.

과테말라 정부는 끔찍한 사고에 사흘 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지미 모랄레스 과테말라 대통령은 보호소장을 해고하겠다며 철저한 책임 규명과 청소년보호소 환경 개선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러나 여론은 이번 사고로 극도로 흉흉해진 상태다. 소셜미디어 등지에서는 모랄레스 대통령이 이번 ‘학살’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9일에는 대통령궁 앞에서 석탄 위에 인형을 놓는 퍼포먼스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는 과테말라 정부에 청소년 시설 수용 정책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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